나를 알아가는 시기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이 달라진다.
직접 만나기도 하고, 책을 통해 만나기도 하고,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점점 내 주변에 오래 함께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나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이 아니고, 심하게 표현하면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 내게 유튜브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책과 관련이 많은 사람들이다.
유튜브에서 매일 보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기도 했는데, 바로 ‘애리님’이다.
먼 곳으로 강연을 다니며 지루한 차 안에서
나에게 활력을 심어주고 울고 웃게 해 준 선생님 같은 분이다.
우연히 코엑스 ‘자라 생활용품 매장’에서 만나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개그맨이었지만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고명환 님의 책을 읽으며
‘와, 이 사람 정말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라이브까지 챙겨 듣던 어느 날,
오프라인 강연이 열린다는 소식에 먼 거리인 목동까지 가서 강의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작가’라는 호칭을 얻었고,
그 일을 계기로 작가로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과 벌써 3년째 독서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듯 내 인생에 남는 사람들은 책과 많은 관련이 있었다.
요리하는 애리님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분의 인생 이야기가 그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읽어온 책들이 녹아
우리에게 부드럽고 먹기 좋게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 이야기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소설 속 이야기든
그분의 입을 통하면 인생이 되고 철학이 된다.
아마도 나에게 남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책과 글로 이어진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래서 기쁘고, 든든하다.
나에게 책은 읽어야 하는 일이기보다
나를 찾기 위한 보물찾기 과정과 같다.
내 마음을 나도 몰라 심리서도 읽고, 철학서도 읽고, 소설도 읽어보지만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내가 나인 것을 아는 것 자체가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에서
저자 나티코는 우리 몸, 육신을 ‘우주복’에 비유한다.
사는 동안 신에게 선물 받은 우주복을 입고
조금씩 고쳐가며 사용하다가
결국에는 닳아 벗어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나티코는 불치병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덜 튼튼한 우주복을 받아
조금 일찍 세상과 이별하게 되었다고 죽음에 대해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어떤 우주복을 받았을까?
50이 넘자 이곳저곳이 낡아 자주 아프고,
심지어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지
혈관에도 잔고장이 시작됐다.
혈당과 콜레스테롤이라는 혈관 문제는
이제 내게도 우주복 점검 기간이 왔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제는 튼튼한 육체가 아니라
고쳐 쓰는 육체임을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다.
갱년기로 호르몬이 부족해지며
혈액이 흐르는 것조차 힘겨워진 내 몸.
그래도 53년 동안 이렇게 나를 지탱해 주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고맙고, 기특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수려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우주복을 입을 수 있도록
나를 세상에 내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의 마음이 든다.
이제는 나보다 훨씬 더 낡은 우주복으로 살아가시는
엄마와 시부모님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때가
바로 지금인 것 같다.
50은 더 많이 사랑해야 하는 시기다.
노쇠해 가는 부모님의 건강과 마음을 돌봐드려야 하고,
성인이 된 것 같아도 여전히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여 줘야 하는 시기다.
부모의 자리와 자녀의 자리가
한데 교차하는 자리.
50이란,
그런 나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