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엄마를 바라보는 딸 02
어느 날 갑자기 선물처럼 날아온 컴백 날짜는 덕후 엄마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엄마 인스타 봤어? 컴백한대. 당연히 봤지. 이때부터 엄마의 입은 귀에 걸려서 내려오지 않았다. 본격적인 컴백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하루에 하나씩 정보를 공개한다. 사진과 노래, 영상, 트랙리스트 등 감칠맛 나게 조금씩 보여준다. 그리고 덕후 엄마는 애가 탄다. 하루종일 쳐다보고, 유추하고, 기대한다.
하루는 앨범에 수록될 노래들을 짤막하게 이어 붙인 영상이 공개됐다. (그 영상을 '하이라이트 메들리'라고 부른다) 2분 20초 정도 되는 영상에 5곡이 감칠맛 나게 실려있다. 노래의 일부분만 올려서 궁금증과 기대감을 극대화시켰다. 덕후 엄마는 그 짧은 영상만으로 가슴 벅차했다. 엄마는 짧은 영상을 계속 돌려보고, 노래들을 금세 외운 건지 흥얼거렸다. 돌콩아 노래 들어봤어? 노래가 벌써 나왔어? 아니 유튜브에 하라메 떴어. 하라메가 뭔데? 하이라이트 메들리, 줄임말. 아~... 어쩔 땐 엄마가 나보다 신세대인 것 같다.
길고 길었던, 감칠맛 나는 기다림 끝에 덕후 엄마는 현재 행복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출근이 즐거운 시간이었던가. 덕후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거실이 울리도록 노래를 튼다. 덕분에 나도 이른 아침 눈을 뜬다. 나에겐 모닝콜이다. 엄마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출근 준비를 하다가, 핸드폰으로 틈틈이 덕질한다. 오늘은 어떤 소식이 있을지에 대한 기대로, 상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덕질로 시작하는 하루, 그것이 덕후 엄마의 생활의 원동력이다.
생전 본 적도 없던 음악방송을 틀었다. 나는 원래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데, 그날은 엄마 옆에 앉아서 음악 방송을 함께 시청했다. 나왔다, 나왔다! 웅장함으로 등장한 그분들은 카리스마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덕후들만 알 수 있는 킬링 포인트를 포착하며 집중했다. 덕후 엄마는 텔레비전 보면서 덕친(덕질 친구들)들과 카톡 하느라 정신없었다. 3분이 넘는 시간 동안 휘몰아쳤던 무대는 엄마에게 강한 여운을 줬고, 무대가 끝난 후에도 다시 보기 영상으로 그 여운을 느꼈다. 초 단위로 캡처하고, 다시 보고 싶은 구간을 반복했다. 여러 번 보면 질리지도 않나? 생각하지만 엄마는 아닌가 보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보고 또 본다.
핸드폰을 보면서 씨익 웃기도 하고, 그분들의 멋짐에 감명받아 입을 틀어막기까지 하는 엄마, 나노 단위로 열심히 덕질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서 행복함을 발견했다. 덕질이 엄마의 행복이자 삶의 원동력이라면 말릴 이유가 없다.
어덕행덕!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도록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