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빠가 사라진 후...
수십 년 함께 한 사람이 사라졌고, 우리는 평화를 찾았다. 그것은 매우 슬프지만 진실.
꽤나 진행된 '치매'로 인해 갑작스럽게 돌변한 아빠가 엄마와 언니의 생존마저 위협하고서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 우리 세 여자는 '아무 일 없는 일상'의 감사함을 그야말로 뼈저리게 느꼈다. 가족끼리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오늘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아주 보통의 시간들'은 알고 보니 너무 큰 선물이었던 거다.
특히 엄마가 되찾은 평화는 한시적인 것일지언정 우리를 깊이 안도하게 했다. 근 50년을 아빠와 사는 동안 그 예민한 성격과 칼날 같은 말들에 마음 다쳐왔던 엄마가, 몸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건 기적 그 이상이었다. 18년간 괴팍한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고 그 후엔 친정엄마에 남편 병수발까지... 언니와 자주 하는 말로 '전생에 우주를 팔아먹었나' 싶은 엄마는 '사는 것'보다는 '견디는 것'에 가깝게 흘러왔다. 무쇠 같은 책임감 그것 하나로.
엄마는 아빠에게서 벗어난 뒤 마음 수양을 위한 이런저런 루틴들로 하루를 채웠다. 어떨 땐 근처에 사시는 사돈어른과 바람 쐬러 부산에 다녀오기도 하셨고 문화센터에 가보기도 하셨다. 그러면서도 자주 "이래도 되나 싶다" 하셨는데, 남편 요양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도 되는 걸까 그런 마음이셨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엄마니까, 정말 전생에 우주를 팔아먹었나 싶게 가시밭길 인생을 산 우리 엄마니까 무조건 그래도 된다.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도 된다.
그런데 한편으론 한 사람이 사라짐으로써 남은 가족들이 이렇게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게 말할 수 없이 슬프기도 했다. 아빠는 왜 그렇게밖에 못 살았을까. 왜 그렇게 엄마를 인생의 반려자가 아닌, 당신 입맛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비서가 되길 바랐고 왜 그렇게 툭하면 고함을 질러 어린 나를 책상 밑에서 벌벌 떨게 했던 걸까...
길고 긴 물음표만 남겨둔 아빠는 요즘 요양병원에서 그동안 암 때문에 못 드셨던 컵라면, 치킨, 믹스커피도 간간이 드시고 바둑 친구도 만들었다고 한다. 참 끝까지 이기적인 아빠지만 그렇게나마 아빠는 아빠 식으로 엄마는 엄마 식으로 우리는 또 우리 식으로 평화를 찾은 요즘이 정말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