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의 남편으로 사는 법

"이런 남편 또 없습니다..."

by 온작가

처음에도 그랬고 결혼식 때도 그랬고 신혼 때도 그랬지만 요즘 들어 유독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많이 느끼곤 한다.


아마도 아기 때문이리라.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것... 그 길은 정말 그 누구나 걷는, 너무도 흔하고 뻔한 삶의 한 과정 정도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 길 위에 서고 보니 '흔하고 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조차 미안해질 정도로 아기의 순간순간은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기 일쑤였고 때로 우리의 일상은 마치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것 그 이상이기도 했다.


특히 나처럼 아이에 관심도 없었고 육아의 기본조차 없었던 '육 알못' 들에게는 반드시 정상적인 육아 동지가 있어야 그나마 사람 꼴을 유지할 수 있는 걸 텐데 '정상적'인걸 넘어서 너무도 '훌륭한' 육아 동지가 무려 24시간을 함께 해 주고 있으니... 그는 바로 남편.

'좋은 아빠 학교' 같은 데를 수석 졸업이라도 한 듯, 눈으로 말로 몸으로 아기를 마구마구 기쁘게 해 주는 데 선수인 남편은, 아기뿐 아니라 아내인 나를 기쁘게 해 주고 감동시키는 데도 탁월한 재능을 보유했다.


방송작가... 특히 매일 매 순간 긴장해야 하는 '연예뉴스'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작가를 아내로 둔 죄(?)로,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아내의 시청률 성적에 함께 시달려야 했고 마구 예민해져 있는 그녀의 화와 짜증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그뿐이랴, 밥을 먹다가도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다가도... 수시로 크고 작은 결정을 바라는 피디, 작가들의 톡이 오면 그대로 '얼음'이 된 채 갑자기 '일 모드'로 변신해 버리는 아내 앞에서, 그도 함께 '얼음'이 돼야 했고 매일 잠을 못 자 여기저기 아프다를 달고 사는 아내의 푸념도 고스란히 들어줘야만 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사람이다. 단 한 번 짜증을 낸 적이 없다. 앞으로 앞으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짜증 내는 모습뿐 아니라 그 비슷한 것조차 보여준 적이 없다. 오죽했으면 내가 돈을 조금 더 잘 벌어서 그러나? 이러다 프로그램 막이 내려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다면 그때부터 돌변할 건가? 싶을 정도로... 그 정도로 약간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남편.


그래서 대놓고 물어봤다. '여보는 원래 좀 욱하는 성격이었잖아. 근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고치고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이 없어?' 그랬더니 또 감동을 주는 그. '그만큼 네가 좋으니까'... 연애시절, 평생을 욱 했던 아빠 모습에 질려서 욱하는 남자 너무 싫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성격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렸단다. 그만큼 좋았단다, 이 모자라고 바보 같은 내가.


나이도 많고 객관적으로 예쁘지도 않고 엄청 유명한 프로그램을 하는 작가인 것도 아닌데 입만 열면 '예쁘다' '귀여워 죽겠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네 최초의 팬이자 영원한 팬이 될 거다'라는 남편. 방송에 유도선수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나도 유도했었어' 이러기에 '응?' 하니 '니 사랑을 유도했었잖아' ㅋㅋㅋ


그때도 바빴고 어제도 바빴고 오늘도 바빴던 아내 대신, 아기와 기꺼이 베프가 돼 주고 있는 남편. 결혼 전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무척이나 중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다면 이젠 이 착한 남자 덕분에 '함께'의 진정한 맛도 알아가고 있으니, 사람 자체를 바꾼 건 내가 아니라 바로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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