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수조차 없는 '엄마'라는 사람들

오늘 하루 당신의 건강은, 안녕하셨나요

by 온작가


친애하는 육아 동지 여러분,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시작하셨나요? 오늘은 또 얼마나 버라이어티 한 순간들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 잘 버티고 잘 이겨내길 바랍니다.


저는 몇 주 전부터 명치 쪽에 커다란 벽돌 하나를 껴 놓은 것처럼 너무 답답하고 구역감도 느껴지고 하더니

2-3일 전부터는 입덧 때 마냥 입안에 쓴 맛이 올라오고 어젠 또 두통까지 심했더랬죠.


다음 주 건강검진이 예약돼 있지만 더 이상 안될 것 같아 회사 근처 내과에 갔었어요.

작년 11월에도 역류성 식도염 약을 처방받은 적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제 식단이나 생활 전반에 대해 유심히 들어주셨거든요. 그걸 잘 기록해 두셨는지 대번에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또 스트레스 많이 받았군요 일이 많거나 아기가 아프거나 그랬죠?"

"아기 감기 때문에 좀 고생하기도 했었고, 개편 때라 일이 너무 많기도 했었어요"

"그럴 거 같았어요. 식단에도 큰 문제가 없고 한 번씩 스트레스가 크게 다가올 때 이런 증상들이 생겼다가 또 상황이 정리되면 괜찮아지고 그럴 거예요."


5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의사는 '나도 그런 거 다 겪어봤지' 하는 듯 짠한 눈으로 잠시 내게 시선을 고정하더니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힘내요. 다 지나가요..."



역류성 식도염 약과 스트레스 조절 약을 처방받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면서 딱 하루만 쉬고 싶다,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지만 딱 하루는 고사하고 2-3시간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그 어떤 소음이나 방해 없이 쉴 수 있는 엄마가

몇이나 있을까... 참 그게 서럽기도 했어요. 아파도 아프면 안 되는 엄마라는 사람들...


어린이집 앞에서 아기를 기다리며 갑자기 두통과 구역감이 더 심해져 함께 간 남편에게 또 징징거렸는데요,

이젠 참 남편한테 아프단 얘길 하는 것도 민망할 정도예요.


거의 매일을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던 그이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마구마구 쏴 대고 있다는 생각은 제 마음을 늘 불편하게 만들거든요.


하지만 남편은 또 한 번 저를 꼭 안아주며 '오늘은 진짜 내가 다 할 테니 약 먹고 좀 자~'라고 해 줍니다. 그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괜히 눈물이 핑 돌더군요.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똥꼬 발랄 아기를 하원시키고 남편이 씻는 동안만 잠시 놀아줬는데요, 두통이 가시질 않아 힘들더라고요.


"엄마 오늘 아프니까 하온이가 좀 도와줘"

"어디가 아픈데?"

"머리"

까치발을 들어 머리통을 붙들고 호~ 해 주는 아기.


평소 같았음 안아주고 뽀뽀해 줬겠지만 그럴 힘조차 없더라고요.


씻고 나온 남편은 저를 방으로 떠밀었습니다. 무조건 엄마랑 씻고 엄마랑 놀겠다고 떼쓰는 아기에게 '내 여자 힘들게 하지 마' 장난 반 윽박지르면서요.


두어 시간 자고 나니 그나마 좀 살 거 같았습니다.




엄마로 살며 내가 아는 비루한 단어들의 조합으로는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는 기쁨과 감사함도 느끼지만 가장 고역일 때가 '내가 아플 때'인 거 같아요.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인데도 아기의 하루엔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일들 투성이니까 말이죠.


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친한 언니들이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아기들 보고 있으면 너무 자주 체해서 집에 콜라가 떨어지면 안 된다... 남들보다 좀 늦게 엄마가 된 우리는

가뜩이나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는 나이에 강철체력을 요하는 육아까지 하고 있으니 안 아픈 데를 찾기가 힘든 지경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아기 앞에서만큼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웃어주고 놀아주고 뒤돌아선 약을 한 움큼씩 먹거나

그마저도 할 여력이 안 돼서 쌩으로 참거나... 모두 그런 경험, 갖고 계시죠?


하지만 그래도 힘을 낼 수 있는 건 힘을 내야만 하는 건, 무조건 '엄마랑 할래' 고집부리는 아기를

씻기고 재우는 것까지 든든하게 맡아주며 저를 방으로 떠민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시국이 조금 잠잠해지면

건강하게 만나자' 했던 아빠와의 약속 때문입니다.


코 시국 이후 거의 이산가족이 된 채 지내고 있지만 영상통화로나마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며 다시 건강히 만날 날을 기약하고 있는 아빠와 나. 약속이나 한 듯 서로 세상에서 가장 밝고 편해 보이는 웃음을 지은 채 말이죠.


아기 백일쯤 췌장암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너무 다행히 잘 버텨주고 계시지만 끔찍이 아끼던 둘째 딸과, 딸이 낳은 금쪽같은 손녀를 작은 화면으로밖에 볼 수 없는 아빠... 아빠를 생각해서라도 전 반드시 건강해야만 합니다. 건강하게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꼭 지킬 거거든요. 아빠도 그 약속을 꼭 지켜줄 거거든요.




일곱 시가 다 돼 가네요. 이제 좀 있으면 또 아기가 귀여운 두 팔로 야무지게 기지개를 켜며 나오겠지요. 제 품에 안겨 쫑알쫑알 참 쉴 새도 없이 수다를 떨어대겠지요. 오늘은 좀 괜찮아졌으니 어제 못다 한 것까지 많이 안아주고 많이 웃어줘야겠어요.


진심으로 존경하는 세상 모든 엄마들, 우리 같이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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