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에너지 넘치게 뛰어다니며 이곳저곳 탐험하고 수많은 새 언어들을 마음속 작은 꾸러미에 저장하느라 바빴던 28개월 아기.
역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분 좋게 잠들었는데 밤늦게부터 조금씩 기침을 하는 겁니다.
첫 돌을 조금 지났을 무렵 41도 넘는 고열에 시달리다 결국 입원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흘려 들었을 수 있었을 그 간헐적인 기침 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가슴에 꽂히기 시작했어요.
몇 번의 기침 소리를 더 들은 후 아기가 자고 있는 방에 뛰어들어가 본능적으로 체온계를 갖다 댔더니 역시나 38.5도. 고열이었습니다.
아기를 깨워 해열제를 먹이며 마치 무슨 기도문을 외듯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지요.
"아픈 거 다 엄마 주고 얼른 낫자, 응?"
"내일 아침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 잘 잤다~~' 하면서 일어나자, 알았지?"
자다 깨서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약을 받아먹으면서도 칭얼거림 한 번 없던 아기는 이내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쯤이 지났을까, 몸속에 '자동 알람 기능'이 탑재되기라도 한 듯 눈을 번쩍 떴는데 여전히 아기의 몸은 불덩이... 39도를 넘긴 상태였어요.
스프링처럼 튀어나가 다른 계열의 해열제를 갖고 와서 아기를 깨웠는데 그 뜨거운 몸을 겨우 일으키고는 한다는 말이 "아~~ 잘 잤다"...
설마 아까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요?
아기의 몸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확 올라왔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어설픈 엄마여도 너 하나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줄 수 있다! 그런 든든함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가 일어나면 안 돼. 약 또 먹고 얼른 코 하자"
"아~~ 잘 잤는데"
"아니야, 더 잘 자야 해. 얼른 자자"
토닥토닥 몇 번 해 주니 금세 또 잠이 든 아기. 아기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벅찬 뭉클함과 깊은 걱정이 함께였던 그 새벽.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체온계만 들었다 놨다 하며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아무래도 병원에 데려가야 될 거 같아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기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와서는 폭 안겼습니다.
"하온이 어때? 아야 해?"
그런데 갑자기 눈을 반짝 뜨고는 하는 말,
"안 아파요 괜찮아요"
고열로 얼굴이 시뻘건데도, 코가 꽉 막혀 코맹맹이 소리밖에 안 나오는데도 누가 꼭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 세뇌시키기라도 한 듯 다 큰 애처럼 "안 아파요 괜찮아요"... 겨우 28개월짜리 꼬꼬마가...
늘 피곤에 절어있는 엄마가 못내 안쓰러워 보였던 걸까요. 그런 엄마를 대신해 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두 배로 놀아 준 아빠에게도 '안심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던 걸까요.
아기의 마음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새도 없이 우리는 병원으로 회사로 집으로 또 병원으로... 정신없이 동동거리며 사흘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몇 번 더 열이 오르긴 했지만 아기는 그때마다 해열제를 꼴깍꼴깍 잘 받아먹으며 그 작은 세상에 찾아온 위기들을 넘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일도 없는 듯 밝고 명랑하게 지냈어요. 좀 아프다고 징징대도 되는데 아니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건데 너무 태연한 28개월 아기의 그 얼굴이 또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는 겁니다.
또래 아기들보다 유독 말이 빨리 트인 우리 아기. 하루가 다르게 어휘력이 쌓이며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는 기본, "엄마 고마워요 내가 엄마 지켜줄게요"라는 예쁜 말들로 우리 부부를 녹이고 있는데 처음엔 감탄만 하고 있었지만 열감기로 힘들었던 요 며칠을 겪으면서는 왜 저 예쁜 입으로 "아파요" "힘들어요"라고 단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아기의 머릿속, 마음속엔 어떤 단어들이 가득 차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본 것 같습니다.
혹시, 늘 너무 바쁜 일상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나를 토닥토닥 위로해 주기 위해 찾아온 천사인 건 아닐까, 엉뚱하게 그런 생각까지도요.
어쨌든, 잘 싸웠습니다.
늘 대견하고 기특한 우리 아기, 끝내는 승리 했고 이제 얼마나 또 훌쩍 성장할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