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내게 알려준 것들

지랄 맞았지만 따뜻했던 일주일의 이야기

by 온작가


기억 속 가장 끔찍했던 순간을 꼽는다면 어떤 순간이 떠오르나요.


사지를 축 늘어뜨린 채 의식을 잃었다.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는 아빠의 품에서 동공이 풀리고 입술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변해간다. 미친년처럼 괴성을 지르던 엄마가 119에 전화했지만 병원이 없다는 말만 거듭 들을 뿐이다.


이것은 네 살 난 제 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월 10일 목요일 야심한 시각,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갔는데 희미한 목소리가 저를 찾았습니다. "엄..마..."


보통 한 번 잠을 자면 아침까지 깨는 법이 없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그 시간까지 잠에 들지 못했던 듯한 목소리... 무언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감지하고 아이의 몸을 만져봤는데 불덩이였습니다. 39도대.


이틀 전 어린이집 친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었어요. 유독 친했고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친구긴 했지만 제 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에너지가 넘쳤고, 그래서 제 딸의 안위보다는 그 아이의 상태가 더 걱정됐던 이틀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아이에게서 시작된 바이러스는 온 가족을 휩쓸었다고 했어요. 말로만 들었던 '온 가족 확진'.


그런데 이틀 뒤 그야말로 갑자기 우리 아이도 고열이 나기 시작한 겁니다. 해열제를 먹이고 이마를 닦아주며

왜 엄마를 부르지 않았냐고 하니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엄마 부를 힘이 없었어요..."


10시 반쯤 잠든 걸 확인했고 제가 자러 들어간 게 그날따라 하필 새벽 두 시에 가까운 시각이었는데 그 사이 언제쯤부터 그렇게 아프기 시작했던 걸까요. 네 살 인생 통틀어 경험해 본 적 없는 고통인데 목소리도 나오질 않아서 엄마가 언제쯤이나 들어올까 굳게 닫힌 방문만 보고 있었을 아이.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혹시 몰라 자가 키트를 해보니 희미했지만 확실한 두 줄.


그리고 꼬박 하루는 많이 아파했습니다. 수시로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렸고 해열제를 교차 복용시켜도 고열은 계속됐습니다.


평소 아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내복의 곰돌이들이 왠지 그렇게 슬퍼 보였어요.


처음엔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던 우리 부부. 하지만 '엄마 아빠 무서워' '마스크 쓰지 마 미워'라며

울고불고하는 아이 앞에서 어느 순간부터 마스크와 함께 마음을 그냥 내려놓았습니다. 차라리 빨리 옮아라...


'격리 생활'이라는 게 애초에 불가능할 네 살 아기이기에 우리도 피해 갈 수 없을 거라 확신했고 최악 중 최악이라는 '가족 릴레이 감염' 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엄마 다 주고 그만 아파' 몇 번이고 그렇게 얘길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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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파했던 첫날, 조금은 나아졌던 둘째 날이 지나고 아기가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을 즈음 기어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나란히 자가 키트 두 줄을 확인한 우리 부부. 차라리 마음이 편했어요.


어린이집 발 바이러스임이 너무나 분명했고 아기에게 증상이 나타난 이후 일절 외출을 하지 않았으니

저희가 직장에 퍼트린 것도 다행히 없을 거였습니다.


그렇게 세 확진자의 일주일이 시작됐어요.


아기는 이제 어느 정도 회복해 아빠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좋기만 한 눈치인데 저희에겐 놀아줄 에너지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저는 몸만 집에 있다 뿐이지 하던 일을 그대로 해야만 했어요.


그러면서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아이 케어는 남편이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지만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넣었다 뺐다 반복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일요일에 확진 판정을 받고 목요일쯤까지는 꼬박 앓아야 했던 우리 부부. 그런데 그 버거웠던 매일 매 순간 사이에도 감사함이 스며들었어요. 코로나가 제게 일깨워 준 좋은 것들이, 분명히 있었지요.




내 사람들의 따뜻함


우리 부부에 이어 공교롭게도 시누이, 시아버지까지 나란히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식구들은 끊임없이 제 걱정을 해 주셨습니다.


독야청청 혼자 살아남으신 천하무적 우리 어머니, 남편에게 수시로 전화해 제 안부를 확인하셨고 '아기 케어는 꼭 네가 전담해라' 당부도 잊지 않으셨죠.


아버지도 연세가 있고 기저질환도 있어 당신이 더 힘드셨을 텐데 약해빠진 며느리 걱정을 많이 하셨었나 봐요

서로가 확진되고 며칠 뒤 통화를 했는데 '아이고 목소리 들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라며 환하게 웃으셨지요.


아기 어린이집 원장님도 매일 같이 전화로 세 식구의 안부를 물으셨고 '입맛이 너무 없다'는 내 얘기에 칼칼한 부대찌개와 핫도그,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몰래 집 앞에 두고 가 주셨습니다.


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언니들도 따뜻한 말과 함께 배달 음식 상품권, 고구마, 과자 선물세트 등으로 우리 가족을 위로해 주었어요.


후배 작가들도 거의 매일 '오늘은 어떠세요?' 물으며 랜선 주치의가 돼 줬고 단 한 번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글쓰기 모임의 '글 벗'들도 응원의 말들을 수시로 전해주었습니다. 참 따뜻했던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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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마지막일 세 식구만의 시간, 그 소중함


빨리 일터로 복귀해야 하는 엄마 때문에 백일 정도부터 어린이집에 맡겨졌던 우리 아이. 종일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건 늘 주말뿐이었는데 이번엔 무려 열흘이 넘게 완전체로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셋 다 건강한 상태에서 그런 시간을 보냈다면 더 알차고 더 신나는 순간들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모두가 아픈 상태에서 집콕을 하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남편은 아픈 와중에도 일을 해야 하는 저를 걱정했고 저는 아픈 와중에도 아기 케어를 전담해야 하는 남편을 걱정했고 아기는 그런 와중에도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지요.


아픈 아빠 엄마라도 종일 옆에 있는 게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이라는 걸 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겁니다.


격리 해제 후 첫 출근을 앞두고서 남편과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라고... 다시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고 그래서 더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세 식구, 참 잘 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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