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잠꼬대로 '내 거야' '안돼' '가져가지 마' 했던 걸로 봐서 그리 예쁜 꿈나라만은 아닌 것도 같지만.^^
며칠 전, 세상에 온 지 천일이 됐던 너. 네가 좋아하는 풍선에 뽀로로 케이크라도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요즘 개편 준비로 너무 정신없다 보니 그만 깜빡해 버렸지 뭐야... 이제야 말이지만 정말 축하해, 그리고 고마워.
엄마 아빠에게 한 번 찾아왔다가 길을 잃어서 7주 만에 하늘나라에 갔던 너. 하느님의 특훈을 받고 몇 배로 튼튼해져선 당당하게 엄마를 다시 찾아왔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먹먹해. 그리고 매일이 기적 같을 때도 아주 많아. 이렇게 천사 같은 아이를 정말 내가 낳았나 이렇게 많이 웃고 행복해도 될 만큼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살았나... 그저 벅찰 뿐이란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전에 없던 떼를 쓰며 '미운 네 살'의 서막을 알리긴 했지만 그 모습마저도 어쩜 그리 사랑스럽던지.
이제 겨우 세 돌도 안 된 너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걸 보면서 이 아이가 어떻게 자라면 좀 더 행복한 아이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자라면 내 삶이 정말 값지단 걸 알고 하루하루 많이 웃으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친구 다섯 명 밖에 없는 조그마한 가정 어린이집에 널 보내는 걸 보면서 엄마 지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봐. 네 살이면 교육 프로그램이 좀 다양하게 있는 국공립 또는 규모가 좀 큰 어린이집으로 옮겨야 되는 거 아니냐고.
네 살이란 나이에 최소한 이 정도는 배워야 한다, 엄마들의 세계에는 일종의 공식 같은 게 있더라고. 전집을 뭘 사줘야 한다, 영어도 이미 시작했어야 한다, 발레 정도는 기본이다...
글쎄.. 다양하게 배우는 게 좋은 면도 있겠지만 엄마는, 그리고 아빠도 아직은 네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뛰어놀았으면 해. 사시사철 바뀌는 계절을 온몸으로 다 느끼고 그 향기를 맡아가면서.
유독 책을 좋아하는 네가 너무 대견하긴 한데 집에서는 그렇게 책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이유야. '그냥 놀았으면' 좋겠어서.
아빠 몸에 착 붙어서 비행기도 타고 어부바도 하고 엄마 머리에 열두 가지 핀도 꽂아줘 가면서...
너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식성도 그렇고 노는 것도 순박한 시골 아기 같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을 때면
그래도 잘 키우고 있구나 생각을 한단다.
아직 굉장히 이른 얘기이긴 하겠지만 엄마는 네가 대안학교에 진학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 (물론 너의 동의는 필수) 아주 신나고 재밌고 알차게 놀 준비가 돼 있는 곳으로.
친구를 이기고 한 등수 올라가야지만 '좋은 학생'이라 말하는 지금의 제도권 교육 속에서 네가 과연 진정으로 하루하루 행복할 수 있을까? 너를 소중하게 여기고 친구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
엄마는 이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인 네가 얼마나 예쁜 사람인지 매일 알아차려 가면서 너 자신을 돌보고 친구도 귀하게 여기면서 그렇게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라는데 말이야.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갈 거고 좋은 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에 취직하겠지. 근데 뭐? 그러면 과연... 행복이 절로 따라올까?
또래 엄마들과는 전혀 다른 결의 이런 생각이 오히려 유난스러운 걸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엄마는
너를 입시지옥으로 밀어 넣을 생각이 추호도 없단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부터도 세상에 궁금한 게 더 이상 없고 '학교 학원 학교 학원' 하면서 1점 2점 올리는 데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그런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만은 엄마 아빠가 힘껏 막아줄게.
엄마처럼 너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일찍이 발견하길 바라고 그것이 뭐가 됐든 뛰어들어서 성취해 보길 바라.
꼭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사소한 즐거움에도 감사할 줄 알고.. 아이돌이든 남자 친구든 누구든 무엇에든 미친 듯이 빠져들어도 보고... 사랑도 많이 해 보고 시련에 많이 아파도 보고... 그럴 때마다 엄마가 손 꼭 잡아주고 꼭 안아줄게. 마음의 생채기에 온 마음으로 빨간약을 발라줄게.
세상을 항해하며 거친 파도를 만나면 언제든지 엄마 손 잡을 수 있게 엄마도 더 강한 사람이 될 거란다.
너는 네 자리에서 엄마는 엄마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 살아보자.
엄마의 두 번째 편지는 여기서 줄일게.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너로 인해 엄마가 매일 많이 행복하다는 거, 네가 태어남과 동시에 진정한 '어른 인생'을 시작하게 된 엄마가 아직 너무 많이 부족하긴 해도 노력하고 있다는 거, 네 피부가 너무 보드라워서 엄마의 거친 손을 갖다 대는 게 무척 미안할 때도 많을 정도로 너를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거꼭 알아줬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