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해 드려요 글포옹> 여섯 번째 이야기
행복은 다소 느린 종류의
어떤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마음이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주체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추구할 때
행복은 살며시 곁을 내줄 겁니다
<사실은 내가 가장 듣고 싶던 말> 현준 저
지금, 당신의 마음은 안녕한가요? 유난히 버겁고 외로운 하루였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여기는, 그 어떤 고민도 걱정도 다 내려놓고 어깨를 툭 떨어트릴 수 있는 공간, ‘위로해 드려요, 글포옹’입니다.
글포옹 여섯 번째 사연이에요.
글포옹 언니 안녕하세요. 글포옹이라는 단어를 쓰기만 해도 벌써 괜히 눈물이 찔끔 나려고 하는 30대 극후반 여자입니다. 평소 언니가 전해주시는 위로의 말들, 정말 잘 듣고 있었어요.
이 글을 쓰는 시각은 새벽 4시 반이에요. 남편과 한바탕 하고 너무 속상한 마음에 언니에게 글을 쓰고 있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정리가 안 돼서 좀 횡설수설할 수 있는데 미리 양해 부탁드려요.
저희 부부는 둘 다 30대 후반에 결혼을 했어요. 제 일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결혼이 좀 늦었지요.
결혼을 준비하면서 남편이랑 아이를 갖는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얘기를 했는데요, 남편은 아이가 있어도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주변 친구들이나 형들이 아이로 인해 자신의 삶을 다 잃어버린 채 사는 모습들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더라며 딩크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얘기도 자주 했었고요.
저도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생기면 낳지 뭐’ 했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허니문베이비가 찾아왔던 거예요.
‘아니, 임신이 이렇게 쉽게 된다고?’ 좋거나 행복한 느낌보다는 어안이 벙벙하고 당황스러웠던 게 더 컸었는데요, 아기가 7주 되던 날 갔던 정기검진에서 아기 심장이 뛰지 않는단 얘길 들었고, 그 길로 아기를 보내주게 됐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무슨 집착증 환자처럼 임신에만 목을 매게 된 거 말이지요. 남편은 좀 더 제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난 뒤에 시도해 보자고 하는데 저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특히나 유산과 동시에 저희 부부 몸 상태도 다시 점검을 했었는데 둘 다 나이가 있다 보니 저 같은 경우는 난소 나이도 많았고 남편은 활동성이 뚝 떨어지는 등 문제가 꽤 발견됐거든요.
그래서 유산하고 한 달 뒤쯤부터 배란테스트기, 임신테스트기를 대량으로 구매해 놓고 병원에서 받은 날짜에 반드시 잠자리를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남편은 우리가 아이 만드는 공장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의무적인 관계는 너무 싫다면서 매번 굉장히 비협조적으로 나오더라고요.
누구는 임신에 좋다더라 하는 것들은 다 해 보려고 관계 전에 초콜릿도 먹어보고 사랑을 나눈 후에는 물구나무서기까지 해 보고 있는데 왜 본인만 천하태평이죠? 솔직히 자기 몸 상태가 더 안 좋은데 말이에요.
눈만 뜨면 배테기 임태기를 찾고 맘카페 ‘난임방’에서 거의 살고 있는 저와, 혼자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남편... 이런 우리가 엄마 아빠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글 쓸 시간에 난임병원에 가 보세요’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누군가에게 툭 털어놓고 이런 너도 괜찮다,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친정엄마한테도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못 한 말... 여기서 다 해 보고 싶었어요. 저도 글로 꼭 안아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너무 잘 오셨어요 두 손 꼭 잡고 ‘잘하고 있어’ ‘대견하다’ 말해드리고 싶고요, 따뜻하게 꼬옥 안아드리고 싶네요.
난임이라는 거... 정말 가까운 누군가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얘기이기에 더 외로운 여정을 가게 하는 거 같아요.
더욱이 가장 든든한, 또 유일한 내 편이 돼 줘야만 할 남편조차 내 편이 아닐 때 정말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고요.
오늘 사연자 분은 특별히 더 힘을 줘서 안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절대 혼자가 아니야, 곁에는 어떤 얘기든 온 마음을 다 해 들어주는 이 언니가 있어, 조금 더 안겨있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다 괜찮아... 얘기해 드리면서요.
당신의 사연을 읽고 저의 맘속 한편에 꼭꼭 저장해 두었던 난임 일기를 꺼내봤어요.
저 역시 30대 후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거의 바로 아기 천사가 찾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아기가 6주 정도 됐을 때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진단을 내리고 ‘이만 보내줘야 할 것 같은데요?’라며 애석해하는 의사의 눈을 그저 멍하게 바라봐야만 했지요.
그전까지 특별히 힘든 일들을 겪을 일이 없어서였을까요, 당시 제가 38세였던 것 같은데 38 평생 그런 아픔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냥 거짓말 같기만 했어요. 지독하게 나쁜 꿈을 꾸는 것만 같았죠.
하필 늘 함께 했던 남편이 그날따라 일 때문에 제 곁에 없었고 대기실의 많은 인파를 피해 비상구로 향하는 문을 여는 순간부터 어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요.
남편 목소리 들을 자신이 없어서 ‘우리 아기, 보내줘야 한대...’ 카톡을 쓰는데 손이 덜덜 덜덜 제 멋대로 춤을 추고... 더 이상 서 있을 힘조차 없던 전 그만 주저앉아버렸었어요.
놀란 남편이 일하다 말고 병원으로 달려왔는데요, ‘괜찮아?’ 하며 제 어깨를 안는 그의 눈이 새빨갰습니다.
수술 예약을 하고 집에 돌아가서 둘이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왜 하필 그곳이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는 냉장고 앞에 주저앉아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했지요.
그렇게 작은 점 만했던 아이를 보내고 다시 올 날을 기다리며 저도 어느 순간 임신 집착녀가 돼 있더군요. 배란테스트기, 임신테스트기는 지금도 쳐다보기조차 싫을 정도랍니다.
임신에 좋다는 영양제며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아무도 몰래 눈물을 토해내며 한 8개월을 보내다가 저는 난임병원으로 갔어요.
특별한 이상은 없었지만 나이도 있고 해서 당연히 시험관 시술로 직행할 예정이었는데요, 과배란 약에 대한 반응도 미리 한 번 볼 겸 시험관 시술의 워밍업 정도로 인공수정을 딱 한 번만 해 보자... 정말 가볍게 마음먹고 단 1의 기대감도 없이 시술을 받았는데... 지금 안방에서 코코낸내 자고 있는 장난꾸러기 네 살 아이가 바로 그때 생겼지요, 정말 거짓말처럼...
생각해 보면 인공수정에 성공했던 그때가 제가 임신을 시도하며 유일하게 마음을 내려놓았던 때였습니다.
근데요, 내려놓으란 말이 얼마나 안 와닿는 말일지 저도 너무 잘 알아요. 어찌 보면 참 잔인하기까지 한 말이라는 걸요.
내려놓으면 좋은 거 누가 모르나요,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는 법을 알지 못할 뿐이잖아요. 내려놓자 내려놓자 백만 번 마음먹고 배란테스트기, 임신테스트기 다 갖다 버리는 초강수를 두어도 어느 순간 또 난임 카페를 기웃거리고 배테기, 임테기를 결제하고 있는 그 상황을, 그 심정을 저는 정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답니다. 참..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할지..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집착할 땐 마음껏 집착해 보고요, 그러다 한 번씩 또 마음을 쉬게 해 줘야겠다 결심하게 되는 때가 분명 오거든요? 그럴 땐 한두 달 편안하게도 있어 보고요.
근데 그전에 당신이 꼭 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난임병원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는 거예요. 지금 내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집착했다가 놔줬다가 또 집착했다가 놔줬다가 하는 건 나한테 너무 가혹한 거잖아요.
당신은 정말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기에 그렇게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거 저는 정말 원하지 않아요.
난임병원을 향한 첫걸음이 조금 힘들 뿐이지 그곳도 별다를 것 없는 병원 중 한 곳일 뿐이랍니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나 이비인후과를 찾아 약을 처방받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갈 수 있는 곳 말이죠.
그리고 필요하다면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 등도 권해드립니다. 절대 혼자 끙끙대지 마세요. 당신을 꼭 아껴주세요.
당신은 곧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인 엄마가 될 사람이니 그 몸, 그 마음 어여쁘게 잘 지켜주세요.
눈물을 닦고 그 팍팍했던 마음에 조금만 빈틈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 틈 사이로 제가 진심 어린 응원, 긍정의 기운 팍팍 채워드릴게요.
글포옹,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고요, 전문상담사 같은 명쾌한 결론은 못 내려드릴지언정 늘 여러분의 걱정과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거,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거... 기억해 주세요. 오늘 하루도 정말 애쓰셨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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