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해 드려요 글포옹> 아홉 번째 이야기
지금, 당신의 마음은 안녕한가요? 유난히 버겁고 외로운 하루였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여기는, 그 어떤 고민도 걱정도 다 내려놓고 어깨를 툭 떨어트릴 수 있는 공간, ‘위로해 드려요, 글포옹’입니다.
글포옹 아홉 번째 사연이에요.
글포옹 님, 안녕하세요? 40대 워킹맘입니다. 아이들도 남편도 꿈나라로 가고 혼자 거실에 멍하게 앉아있다가 큰 마음먹고 이렇게 몇 자 적어봐요. 저의 답답함을 누군가에게 꼭 털어놓고 싶었답니다.
저는 아무래도 ‘분노 조절 장애’ 같아요. 불과 한 시간쯤 전에도 정말 미친 여자처럼 아이들에게 소리소리를 질러댔으니까요.
아이들이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이제 여섯 살, 여덟 살이니 조곤조곤 설명을 해 줘도 충분히 잘 알아들을 아이들인데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요.
화를 낸 이유요? 그것도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니었어요. 요즘 사춘기는 정말 일찍 온다더니 언제부턴가 큰 아이에게서 엄마를 무시하는 듯한 말투와 표정이 느껴졌고 그런 게 절 정말 못 참게 하는 포인트더라고요.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 걸까요?
그리고 제가 좀 결벽증, 정리 강박증 같은 게 있어서 아이들이나 남편이 집을 마구 어질러대는 걸 정말 못 봐주겠어요. 생각해 보니 주로 이 두 가지로 크게 화를 냈던 거 같네요.
저요..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진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저를 ‘김보살’이라고 부를 정도로 ‘좋은 게 좋은 거다’ ‘안되면 말고’를 외치며 사는 평화주의자였죠.
근데 결혼생활 10년 만에 거의 깡패가 다 돼 있는 저만 남아있더라고요. 저도 남편,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하고 상냥한 아내, 엄마이고 싶은데 왜 이렇게 화를 못 참을까요?
글포옹 님,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늘 화내고 짜증 내고 돌아서면 이렇게 후회하고 있는 못난 저... 이런 저도 글로 꼭 안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 이거 혹시 제가 쓴 사연인가요?^^ 구구절절 너무 격하게 공감이 돼서 제가 쓴 건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너무너무 잘 오셨어요. 매번 반복되는 그런 상황이 답답하고 누구보다 사연자분 자신에게 화가 나실 거예요.
제가 그렇거든요. 저희 딸은 이제 다섯 살인데요, 아이가 또래에 비해 좀 발달이 빠른 편이라 그런 건지 요즘 다섯 살들은 다 그런 건지 진짜 제 속을 벅벅 긁을 때가 많아요.
바로 어젯밤만 해도 그랬어요. 분명히 ‘요즘 너 너무 적게 먹고 너무 안 자는 것 같아~ 그럼 키도 안 크고 지금처럼 감기도 계속 달고 살게 돼’라고 몇 번이고 말을 해 줬는데도 자러 들어가서는 또 자려는 노력을 1도 안 하더라고요.
혼자 노래 불러대고 갑자기 혼자 상황극을 해대고...
잠이 안 오는 거야 아이의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쳐도 문제는 ‘태도’인 거 같거든요? 왜 빨리 자고 많이 자야 되는지 진짜 수도 없이, 귀에 딱지 앉도록 얘기해 줬고 그걸 충분히 알아들을 만큼 성장했는데도 자려는 노력을 1도 하지 않는다는 게 저의 화를 돋우는 요인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잠자리에서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아서 정말 좋은 말로 여러 번 달래도 보고 속으로 ‘그럼에도 기뻐하고 감사하자’ 하면서 제가 수시로 하고 있는 심호흡도 해 봤는데 한 시간이 넘게 그러니 결국 소리를 지르게 됐어요.
그리고 저도 원래부터 청소, 정리정돈을 좋아하긴 했지만 아기 낳고부턴 거의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무질서한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이 문제와 화를 참지 못 하는 문제 때문에 심리센터에도 가본 적이 있는데 정리 강박이 생긴 건 아이가 너무나 내 마음대로, 내가 통제하는 대로 되지 않는 만큼 그걸 공간에다 해소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리 정돈하는 건 충분히 내 의지대로 되는 거니까 말이죠. 내가 신경 써주는 만큼 공간은 더 많은 빛을 내니까요.
하지만 화에 대한 부분은 저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는데요, (난임 시술까지 해서 낳은 귀한 아이인데 왜 화를 내냐..라고만 하시더라고요^^;)
그 후부터 저는 ‘화’라는 감정에 대해서, 특히 ‘엄마들의 화’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게 되었답니다.
결론은 화가 난다는 게 절대 이상하거나 나쁜 게 아니란 거예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런데 그 감정을 그때그때 적절하게 풀고 지나가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의 건강에 굉장히 해로울 수 있다는 거, 이건 확실할 거예요.
작은 화들이 쌓이고 쌓여 나중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고 그로 인해 나의 소중한 아이들의 정서, 그리고 가족 간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되죠.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점점 죽여가게 된다는 건데요. 그런 엄마들을 위해 만든 것이 ‘맘맘 치유 글쓰기’라는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이었고 거기서 소개한 ‘글로 화 풀기’, 한 번 말씀드려 볼게요!
자, 우선 나를 화나게 하는 대상에 대해 두 부류로 나눠보세요.
첫 번째는 지속 가능성이 적거나 없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오늘 아침 에어컨을 청소하러 왔다가 내 심기를 건드린 청소업체 사람이라든가 아이 등원 길에 골목에서 과속을 해 위험한 상황을 연출한 택시 기사라든가 덩치 큰 반려견에 목줄도 안 하고 나온 무개념 아줌마라든가...
이렇게 잠깐 나를 화나게 하긴 했지만 앞으로 특별히 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여기 해당되는데요, 그런 대상에 대한 화라면 마음에 담아두고 화를 풀어낼 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기엔 당신의 시간과 감정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잖아요? 그냥 ‘똥 밟았다, 너는 더 큰 똥 밟을 거다’ 하고 툴툴 털어버리세요.
중요한 건, 지속 가능성이 매우 많은, 혹은 무조건 지속해야 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내일 아침에도 나를 계속 긁어댈 게 불을 보듯 뻔한... 주로 아이, 남편, 시가 식구들, 직장 상사 등이 해당되겠죠?
그들을 향한 화는 비슷한 형태로 매우 자주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에 그 화를 잘 풀고 넘어가는 게 중요하답니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요.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라면 집에 전지 몇 장쯤은 갖고 계시죠? 전지가 좋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스케치북, 도화지라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인펜이나 크레파스도 분명 갖고 계실 텐데요, 그중 가장 속이 시원해질 거 같은 색을 고르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빨간색을 추천해 드리는데요, 전지나 스케치북, 도화지 등에 사인펜, 크레파스로 마구 쓰세요. 나를 화나게 한 사람들과 화나게 한 상황들에 대해서 그 어떤 제한도 없이 그냥 막 쓰는 겁니다.
이렇게 쓰는데 무슨 어순, 어법이 필요할까요? 그냥 거의 ‘갈기다’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두서없이 막 쓰세요. 화나게 한 사람 이름만 50번 100번 계속 적어도 좋습니다.
당신을 화나게 한 대상에 관해 다 썼다면 이젠 뭘 해야 할까요? 전지를 더 추천해 드린 이유, 여기 있는데요! 나를 화나게 한 사람과 상황들이 적힌 그 종이를 북북북 한 번 찢어보세요. 정말 갈기갈기 가루가 될 때까지 말이죠.
이쯤만 해도 화의 대부분이 가라앉을 거고 스트레스의 많은 부분이 해소될 거예요. 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은 아닐 텐데요. 이제는 이성적인 글쓰기로 접근해 볼 때입니다.
현재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상황인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 뻔한 그 상황에 대해 한 가지만 꼽아보세요. 그리고 그 상황을 차분하게 한 번 들여다보는 겁니다.
나는 왜 화가 난 것인지, 그는 나를 왜 화나게 한 것인지, 지금까지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그럼에도 개선이 되지 않은 이유는 뭘지, 지금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면 어떤 게 있을지 생각을 해 보고요, 하나씩 하나씩 차분히 써 보자고요.
‘내 화 사용 설명서’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마지막에는 또 똑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식으로 화를 가라앉힐지도 써 보면 좋을 거 같아요.
깊게 심호흡을 열 번 한다든가 거울을 보면서 열 번 크게 웃어본다든가 지금은 너무 미운 그 사람이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 한 가지를 떠올라본다든가... 말 그래도 ‘내 화 사용 설명서’인 건데요,
그럼 분명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이 메모를 보며 자신을 좀 객관화할 수 있을 거고요, 화라는 감정이 극단까지 치닫지는 않고 예전보다는 빨리 사그라들 겁니다.
제 지인들은 ‘전지 글쓰기’가 더 효과적이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두 가지를 병행해 보시길 추천드리고요!
이런 걸 다 알고 있음에도 어제의 저처럼 한 번씩 터지는 날이 온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막말을 하는 등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그냥 자리를 뜨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나마 현재로서는 나보다 훨씬 온화한 상태일 남편에게 배턴터치를 하는 겁니다. 최악의 모습까지는 최대한 적게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저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온라인 글쓰기 모임 ‘내 글에서 빛이 나요’ 문우님들께서 귀한 의견으로 함께 포옹해 주셨는데요, 잠시 만나 보실까요?
지나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뭐가 그리 중하다고 아들에게 화내고 짜증을 부리고, 나쁘게 말했는지... 다 제 욕심이더라고요. 아이를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면 그렇게 못하는데 말이죠. 조금 더 넓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어른이다 생각하고, 옆집 어르신이다 생각하고 존중하면,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하면 어떨까 말씀드려 봅니다. (일과 삶 님)
사람인지라 너무 지치고 화가 나실 때 아이들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받아들여 주시면서 그런 아이들에게 조금은 마음을 내려두고 잘 알려주신다고 생각하고 대해주시면 어떨까요? 정말 세상에 아프고 힘든 아이들도 있는데 건강하게 앞에 있어주는 것도 어떨 땐 정말 크게 감사하고 행복한 일 같아요~ 너무 힘드시겠지만..ㅠㅠ 명상과 호흡을 통한 나를 돌보는 일도 함께 추천드립니다! (seong hee 님)
글 쓰신 분의 화 안에는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심리학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안내하는 '치료적 나침반'이라고 합니다. 화의 이면에 어떤 좌절된 욕구가 있을지 궁금해요. (모모 님)
조금 지저분해도 된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집을 아무렇게나 내팽겨 치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요. 청소하고 정리하는데 에너지를 다 사용하고 나면 다른 곳에 쓸 에너지가 약해지거나 없어져 버리죠. 그 에너지 적당히 조절하고 자신을 위해 잠시 쉰다거나 아이들이랑 놀이터로 나가 논다거나 하는 건 어떨까요? 지저분한 게 눈에 보이면 자꾸 신경 쓰이니까요. 집안이 좀 지저분한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가꾸는 게 더 우선이 되면 어떨까요? (단디 님)
정리 강박증과 결벽증은 제 고민이기도 했어요. 저도 그 증세가 심해서 집안이 어질러져 있는 꼴을 못 봤어요. 그러다 이렇게 살면 주위사람들이 너무 피곤하고 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실천한 게 있는데요. 운동과 식물을 키우는 거였어요. 운동을 하면서 많이 느긋해졌고 식물을 키우다 보니 성격이 조금 바뀌어 있더라고요. 상담자분도 뭔가 몰두할 수 있는 취미생활과 운동을 해보신다면 조금 치유가 될 듯합니다. (해피가드너 님)
쉽지 않겠지만 아이들과 약속을 하나 정하시면 어떨까요.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아이들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해 주기 "엄마, 잠깐만 엄마 3초만" 그리고 각자 3초 동안 모든 동작과 말을 멈추는 거예요. 아이들과의 약속인 만큼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이고, 일종의 놀이치료 형식이라 변화도 금방금방 나타날 거 같아요. (삼분카레 님)
역시 현명하고 따뜻하게 글포옹 해 주신 ‘내 글에서 빛이 나요’ 문우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도 많이 배웠다는 이야기,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글포옹,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고요, 전문상담사 같은 명쾌한 결론은 못 내려드릴지언정 늘 여러분의 걱정과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거,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거... 기억해 주세요. 오늘 하루도 정말 애쓰셨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