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은 우리의 행복이었다

연예뉴스 작가의 무례했던 과거사

by 온작가


코로나 재확산으로

연예가도 뭔가 일시 정지된 느낌인 요즘,

늦게까지 기사들을 서치하며

방송 아이템을 찾다가

생뚱맞게도 문득 떠오른 장면 하나가 있었다.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


당시 tvN에서 연예뉴스를 하고 있었는데

새벽 5-6시쯤

메인 피디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었다.


뭔가 엄청난 사건이 터졌구나

직감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당대 최고의 톱스타였던

최진실 님의 사망 소식을 전했던 그.



난 그에게

이 시간에 전화해서 웬 헛소리냐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방송에서 밝은 모습을 보여줬던 사람인데

거짓말도 적당히 하란 식의

반응을 보였던 거 같다.


'거짓말을 할 게 따로 있지 뉴스 봐봐'

그때부터 소름이 끼치기 시작...


그의 말은 사실이었고

이른 아침부터

전 요일 팀들이 다 함께 모여서

작전(?)을 짜게 됐다.


그녀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게 됐는지,

그런 마지막을 택하기 직전

어떤 생각을 했을지,

남은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지는

우리에게 그닥 중요하지 않았던 것.


이미 오래전부터

'시청률의 노예'였던 우리는,

뭔가 굉장한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월요일 팀은 자택 촬영하고

화요일 팀은 빈소 촬영하고

수요일 팀은

사망 전의 모습들로

다큐멘터리 느낌의 영상을 제작하고...

뭐 이런 식의 회의를 하면서

희한하게도 우리 모두는

아주 들떠있었던 거 같다.


그때, 연예뉴스로는 최초로

중계차까지 현장에 내보냈던

기억도 나고.


예정된 수순이었던 건지

시청률은 평소의 4-5배?

어마어마한 수치가 나왔고,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방송 후 시원한 맥주를 나눠 마시며

장례식장 가서 연예인 누구도 찍었다,

누구는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정말 고생했다...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를

가졌던 것 같다.


그 후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동생 최진영 님에,

친한 친구의 남편인 안재환 님까지...

모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그때마다 우리는

더 이상 열정적일 수 없게

더 이상 화기애애할 수 없게

또 일사불란 그 자체의

팀워크를 보였었다.


아마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받아보게 됐던 것도 그즈음.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 결과라고

팀 방 앞에 시청률을 써 붙여놓으며

거의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던 우리.


그때 바로 옆방에서

회의를 하고 있던 한 연예인이

우리 방에 들어왔다.


고인이 된 분들과

친분이 두텁기로 유명한 그는

매우 격양된 얼굴이었는데,

팀 방 앞에 붙어있던

시청률 관련 문구가

그의 심기를 건드렸던 모양.


이런 뉴스로 최고 시청률 찍었단 게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요?


그의 한 마디에

팀 방은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가 나간 후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왜 저래?' '어이가 없네'

비아냥거리는 반응들이

대부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연예인들의 불행은

우리의 행복(?)이었다.


누군가의 사건 사고,

불미스러운 가정사,

갑작스러운 투병 소식,

끔찍한 사고 소식,

사망 소식까지...

안 좋은 일들이 보도될 때마다

쾌재를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그 시절의 우리.

일말의 죄책감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고도

10년이 넘게

연예뉴스 작가로 살고 있는 나.


마흔이 넘고 좀 사람이 된 건지,

아기 낳고서야

일말의 양심이란 게 생긴 건지,

까다로운 방통위가

매의 눈을 뜨고

'방송 윤리'에

엄하디 엄한 잣대를 들이댄 후부터

전혀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은

'착한 방송'을 만들고 있는

분위기 때문인 건지...


스타들과 관련된 비보가 들리면

눈물까지 흘리지는 못할지언정

예전 같은 마음으로

비보를 접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한 번씩은

최진실, 최진영 님 남매와

친분이 두터웠던

그 연예인의 한 마디가

참으로 매섭게 마음을 때릴 때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십수 년을 살아온 벌을

어떻게 다 받을까,

무서워질 때도 있다면 오버일까.


최근엔 스타들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데,

마음으로나마

그들과 주위 사람들의

안위를 빌고 있다.





시청률... 방송인에겐 정말 중요한 지표.

어찌 보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하지만 그놈의 숫자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더 중요하고

숫자 그까짓 거, 나중에 돌아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

이제야 해 보고 있다.


이제 두 돌 된 딸이

조금 더 자라

'우리 엄마가 방송작가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때,

'엄마는 어떤 걸 쓰는 작가야?'

묻는다면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이거야' 할 수 있도록

착한 방송인, 괜찮은 작가가 돼야겠단 생각이

정말 많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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