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손 사이, 특별한 온기

누군가의 손을 땀날 정도로 오래 잡아본 적이 있었던가...

by 온작가


성인이 돼서 누군가와 손을 꼭 잡고

10분? 아니 5분 정도라도 있어 본 기억이 있다면

그건 아마 대개는 연인의 손일 거다.

이제 막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을 때나

뜨겁게 연애하고 있을 때

손과 손을 맞잡고 온기를 공유하면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세상이 다 아름다워지는 기분,

두 사람이 있는 곳만 다른 색인 것 같은 기분,

조금 더 과장하면

어딘가서 달콤한 향기까지 밀려오는 듯한 기분...

불타는 청춘을 보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보지 않았을까?




난 아직 결혼한 지 4년 밖에(?) 안돼 선지

가장 자주 잡는 손은 남편의 손이었는데

최근 가장 오래 잡는 손은 두 돌 된 아가의 손이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이것저것 해 보느라

늘 촉촉하게 젖어 있는 아가의 손.


재울 때 그 손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생뚱맞게도 울컥하는 감정이 들 때가 있다.


나이 든 엄마한테 한 번 왔다가

잠시 하느님 곁에 가서 더 튼튼해지는 특훈을 받고

다시 돌아온 우리 아기.

이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엄마를 다시 찾아오느라 참 고생했다 싶고,

누구보다 건강하게 태어나

매일매일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세상 모든 것들

다 잡아보고 느껴보느라 참 애쓰고 있다 싶고...


일하느라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엄마도 엄마라고

어디 아프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땐

내 손을 찾아 꼭 잡아 쥐는 그 느낌이

참 찡할 때가 있다.


그래 아가, 엄마가 지켜줄게.

다른 엄마들처럼 맛있는 거 해 주진 못 해도

다른 엄마들처럼 하루 종일 놀아주진 못 해도

늘 네 곁에 나무처럼 있어줄게.

크고 멋진 나무는 아니어도

예쁘고 싱싱한 나무는 아니어도

우리 아가 한 사람만큼은

비올 때 비를 피하고 눈 올 때 눈을 피할 수 있는

우직한 나무가 되어줄게.




그리고 '손잡기'하면 떠오르는,

어쩌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또 한 가지의 기억.


3-4달 전쯤 대구 친정에 갔었는데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갔더니

아빠가 식탁에서 책을 읽고 계시는 거다.


40년을 교직에 계셨던 아빠,

평생 책을 가장 좋은 벗으로 삼으셨으며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을 할 때마다

책을 여러 권 들고 들어가

'마음 수양' 하고 왔다고

멋지게 말했던 아빠...


아빠가 금테 안경을 끼고 책을 읽는 모습은

언제 봐도 참 근사했는데

환자가 되고도

그렇게까지 멋있을 건 뭐람^^


항암 하는 동안 빠졌던 머리카락들이

거의 다시 났지만

염색을 하지 못해 백발성성해진 아빠는

예전과는 또 다른 멋스러운 자태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는데

나도 모르게 아빠한테 가서

아빠 손을 덥석 잡고는

'아빠 힘내!!' 했다.


우리 아기 백일 즈음에

서울 올라오시려고

다 준비를 해 놓은 상태에서 암 선고를 받고

20여 차례 항암을 하고

그러는 동안 코로나가 터지고...

이래저래 이산가족이 됐던 아빠와 내가,

그렇게 손을 잡아본 게 얼마만이더라...


어릴 땐 매일같이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던 기억이 나는데

언제부턴가 '사랑해'라는 말은 자주 했어도

손을 잡아본 기억은

아예 나질 않을 정도.


내 손을 꼭 잡은 아빠는

마치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속에 있던 말들을 쏟아냈다.


아빠는 잘 이겨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이겨낼 거니까

절대 걱정하지 말라는 말,

아빠도 책을 통해 위기를 이겨왔듯

너희도 그리고 하온이(딸)도

책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

아빠는 평생을 너무 예민했던 것 같은데

너희는 좀 덜 예민해도 좋겠다

아니 좀 둔감한 게 더 좋겠다는 말,

하온이는 반드시

무얼 하든

행복한 아이로 키웠으면 좋겠다는 말...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아빠의 말들을 듣는 동안

손에서 땀이 좀 나는 것도 같고

'손 언제 놓지?' 고민하기도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그 온기가

앞으로의 나를 지탱해 줄

힘이 될 것 같단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아빠가 보고 싶을 때

아빠 손의 온기가 유독 더 그리울 때는

아기의 손을 잡고

그때의 느낌을 그 따뜻함을

고스란히 대물림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지금 당신은

누구의 손을... 잡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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