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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작가 Dec 21. 2023

'그놈 목소리'에
치가 떨릴 지경이라면

당장 때려치우세요


어느 금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

'드르릉' 진동 소리와 함께 카카오톡 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이 시간에 누구야?"


광고인가, 하고 확인해 보니 소름 끼치는 '그놈'이 보낸 몇 글자가 뻔뻔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어요.

'연예인 누구누구누구 연락처 좀'

끝.


참 여전하다, 당신이란 인간.

어쩜 이렇게도 변함없이 빠짐없이 무례할 수 있는지.

그는, 지난 10년 동안 저를 지옥에서 살게 했던 데스크였어요.




10년 동안 매일 저를 옥죄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새벽이고 늦은 밤이고 주말이고 명절 연휴고 가릴 것 없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시청률이 안 나온 건 무조건 너 때문이다' 탓하는 카톡, 전화를 끊임없이 해댔어요. 회의 시간마다 성심성의껏 준비해 간 아이템들을 볼펜으로 '굳이 굳이' 찍찍 그어가며, 제작국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핀잔을 주고 비아냥대곤 했지요. 


'아빠가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라는 말을 하자마자 '괜찮아. 돌아가셔도 아버지 연금 반은 어머니 앞으로 나와'라는, 정말 면상을 한 대 갈기고 싶게 하는 미친 소리를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던 그. 


아이 낳고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바로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자기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작가료주기 아까웠는지) '네가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내가 안 봤으니 알 수 없지'...


그래서 전 10년간 수시로 오열했고 타들어가는 듯한 가슴을 부여잡은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여러 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증상을 호소할 때도 꽤 있었어요. 


회의를 하기 위해 제작국 문을 열 때면 저~~ 멀리로 봉긋 솟아있는 그의 머리통이 혐오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휴대전화에 그의 이름 첫 글자가 뜨는 것조차 소름 끼칠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이제야 돌이켜보며 그때의 저에게 너무너무 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할 정도의 상황 속에서 미련스럽게 방치됐던 저에게 말이지요.




'이름의 앞글자를 듣는 것만으로,
그의 정수리를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은 사람이 있다면
과감히 때려치우세요'

후배 직장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한쪽의 문이 닫히면 분명 다른 쪽의 문이 열린다고 했는데 저는 왜 양쪽 문을 스스로 부여잡고 있었던 건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지난 10년. 그때의 미련함이 제게 남긴 건, 불면증 약들과 악화된 건강뿐이더라고요.


내가 나를 돌봐주지 않고 귀하게 여겨주지 않는데 누가 그렇게 해 줄까요?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만큼 귀한 존재는 없습니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가족도 챙길 수 있고, 내가 몸담은 사회까지도 돌아볼 수 있는 거예요.


당장 나갈 카드값이 걱정되시죠? 당장 내야 할 월세도 막막할 겁니다. 그것들에 대한 부담감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고 있다면 딱 다음 달 치 정도만 마련을 해 두고 결단을 내리세요. 


"그런데 어딜 가나 그런 또라이들은 반드시 한 명쯤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물으실 수 있는데요, 맞아요. 어디든 다 있지요. 하지만 '선'이라는 게 있잖아요. 내가 소화를 시킬 수 있을만한 '선'. 


나랑 좀 안 맞다 싶은 정도가 아닌,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이대로는 내가 죽겠다' 싶은... 내 참을성의 임계점을 훌쩍 넘어버린 그 상태.


그렇다면 하루빨리 그 말도 안 되는 수렁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세요. 그 좁은 동굴 안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길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것도 아주 여러 갈레의 길들이 말이지요.  


때려치우세요. 제발 그렇게까지 꾸역꾸역 참지 마세요. 당신은 누구보다 귀한 사람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연재했던 '맘맘쓰담 라디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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