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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작가 Dec 28. 2023

2023년 끝자락에 허무하게 떠나보낸 '나의 아저씨'

2023년, 미안했고 고마웠어



믿을 수 없는 기사가 떴다. 몇 번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숨진 채 발견'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모든 기사에 있었다. 황망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나의 전쟁은 시작됐다. 


나는 데일리 연예뉴스의 작가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라 새벽부터 서둘러 방송 준비를 끝내놨다. 오후에는 나만의 일들을 하기 위해. 그리고 침대에 누워 더없이 평온하게 휴대전화를 들었던 참이었다. 0.1초. 몸을 다시 일으키는 데까지 필요했던 시간. 


후다닥 노트북을 펴고 기사들을 서치 했다. '세상에...' '왜일까...' '이렇게 아까운 사람이...' 



그러나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은 1분도 없었다. 메인피디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 당일 방송 아이템을 다 바꿔야 하고 취재를 보낼 동선도 짜야했다. 카톡 알림음도 쉴 새 없이 울린다. 오늘 방송에 꼭 담았으면 하는 내용들과, 주의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육성 지원'이 되는 듯 선명했던 CP의 카톡.


작가들 단톡방에서 오늘 아이템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 설명하고 절대 써서는 안 될 표현들에 대해 재차 강조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경우, '자살' '극단적 선택'등의 단어는 사용하면 안 된다. 한층 까다로워진 방송 심의 규정과 국민적 정서 때문에 그렇다. 제목에도 '충격' 등의 자극적인 표현은 삼가고 내용도 최대한 드라이하게 써야 해서 쉽지 않은 작업이다) 취재를 보낼 부분들에 대해 정리하고 내가 써야 할 '핫뉴스'의 대본도 급히 수정했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기사들은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우리의 전화 회의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어찌어찌 당일 방송 준비는 마쳤지만 우리 프로그램은 '데일리 뉴스'라는 게 함정. 내일 방송, 모레 방송, 다음 주 방송 아이템까지 이 대형 사건에 맞춰 다 수정해야 했다. 


전날 잠을 설친 탓에 너무 피곤해서 잠시 누워도 길어야 5분 컷. 피디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오거나, 머리는 깨지겠는데 잠이 아예 안 든 탓. 


'앗차 점심도 못 먹었구나' 하며 컵라면에 물을 부어놓고서 딱 하나만 더 정리하고 먹어야겠다 하는 사이 라면 면발은 우동의 그것이 돼 있던 웃픈 현실.


나의 2023년 끝자락은 그렇게 요란했다.




나의 2023년아, 주인을 잘못(?) 만나 끝까지 이렇게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느라 정말 많이 애썼다.


2월경부터 인스타그램을 키워보겠다고 (그때 목적은 따로 있었지만ㅋ) 하루 100명 가까이 선팔을 하고 '이런 메시지 보내지 말라'는 DM도 받아보고... 팔로워 수가 어느 정도 됐을 때 '맘맘쓰담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육아맘들과 진심 다 해 교류도 하고 '엄마 성장 학교 - 그로잉마미'라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브런치작가에 도전하려는 분들에게 컨설팅도 해드리고...  '모임으로 브랜딩 하자'는 내용의 전자책도 써 보고... 맘맘쓰담 글쓰기 강의 영상의 대본들로 전자책 펀딩에 도전했다가 실패도 해 보고, 하루 정도 좌절했지만 바로 다시 일어나 새벽의 줌 독서실을 열어도 보고 '성장하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기까지! 단 10분의 자투리 시간마저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 '프로 자기 계발러' 주인 덕에, 참 벅차기도 했을 나의 '2023년 님'.


그래도 그 어떤 해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뿌듯함을 가슴 가득 끌어안을 수 있었고 너무나 좋은 사람들의 예쁜 말로 자주 눈물이 날 것도 같았던 나의 한 해. 그 한 해가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저물어간다.


정말 고생 많았어. 정말 잘했어. 이 말들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니 값비싼 셀프 선물이라도 준비해 볼까?^^ 


나흘 남은 2023년아, 이젠 더 이상 세차게 일렁이지 말고 그대로 고요히 평온히 잘 가렴. 너를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2024년이라는 또 다른 친구와 따뜻하게 포옹하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 볼게. 


너는 그렇게 푹 쉬고 있으렴. 간간이 일기장에서 혹은 내가 결국 세상에 내놓을 책들에서 너의 이름을 크게 불러줄게. 찬란했던 나의 2023년아, 잘 지내고 있니?라고. 


함께 해서...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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