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선생님이 매일 학교에서 일기장을 확인했다. 일기장이라는 공책이 있었고 매일 쓰면서 선생님께 검사를 받았다. 방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방학일기라며 전교생에게 똑같은 노트를 나눠주며 매일 일기를 쓰라고 선생님이 말했다.
어렸을 때는 매일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이 힘들었다. 숙제라고 생각해서일까.. 너무 쓰기 싫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1주일쯤 지났을 때 한꺼번에 몰아서 썼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머리를 쥐어짜며 혹여나 같은 날에 쓴걸 선생님이 알아챌까 봐 글씨체를 살짝 바꿔 쓰는 디테일까지... 일기를 쓰다 보니 늘어난 건 잔꾀와 좀 봐줄 만한 내 글씨체였다. 악필도 계속 쓰다 보면 글씨가 예뻐질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해 보았다. 일기를 왜 쓰는지 모르겠던 난 그래도 내 인생에 도움은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때 강제적으로 하루하루 글쓰기를 하던 것이 중학교 때 열쇠가 있는 일기장을 직접 사면서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쓰던 버릇이 지금 45년째 이어지고 있다.
뭐든 하려면 처음엔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았다. 내가 경험자였으니까.
어쨌든 그때부터 지금까지 쓴 기록 일기장을 포함하여 나중엔 독후감형식으로 쓰기도 하고 좋은 글귀나 명언 같은 걸 적기도 하고 잡다한 이야기를 끄적거리며 적은 다이어리들이 아직 우리 집에 있다.
초등 1학년때 쓰던 것부터 지금까지 다이어리가 박스 안에 한 가득이다.
엄마한테 고마운 게 많은데 그중 하나가 내 일기장이랑 어렸을 때 받았던 편지까지 모두 버리지 않고 모아두신 걸 내가 결혼할 때 주신 거였다.
지금도 아이들과 가끔 꺼내보는데 그 당시에 있었던 내가 잊고 있었던 일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한참을 보며 아이들과 낄낄댔다. 내가 봐도 순수했던 내 어린 시절.. 선생님이 매일 보든지 말든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는 게 너무 웃겼다. 내가 이런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구나 싶은 게 학년학년 올라갈수록 내 일기장은 성숙해졌다. 슬픈 이야기가 나오면 아이들도 울상을 지었다. 공감이 되었는지 어쨌는지 아이들이 엄마 어렸을 때 글을 잘 썼다고 칭찬도 해줘서 교내 글짓기대회 나갔을 때 받았던 상들을 박스를 뒤적거려 찾아 보여주었다. 꺼낸 김에 너네들 상장옆에 놓자 하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길래 다시 고이 박스에 넣어두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어른이 되고부터는 매일매일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펜을 들었다. 어쩔 때는 노트에 세줄적을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쓰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루를 기록한다는 것은 나에게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안 혀 주는 일이었다.
쓰는 시간은 일정하진 않았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을 때 썼다. 그날그날에 있었던 일을 쓸 때도 있었고 책을 읽고 나서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적어놓고 내 생각을 적은 적도 있었다. 쓰는 시간, 내용은 자유로웠지만 하나는 확실히 했다. 매일 기록하는 것... 이런 단순한 루틴 덕분에 나는 흔들리지 않고 내 중심을 잡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기록을 남긴다 왜일까?
아마도 지나간 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고 싶어서 그리고 거기서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나에게 글쓰기는 소소한 일상 중에 하나이지만 도중에 소중한 의식 같은 일이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나를 뒤돌아보고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하루를 되짚으며 글을 쓰다 보면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좋았던 때도 있었고 슬펐던 때도 있었고, 속상하던 순간도 있었다. 매일매일 행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부처님이 아니고서는 그런 마음을 항상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쓰는 동안만큼은 마음이 가벼워지고 나 스스로 위로받는 느낌이다. 글은 나를 다독여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