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이별

4장 가재미마을

by 플러스발상

우리 외갓집은 가재미마을에 있었다.

어렸을 적, 엄마와 시외버스를 타고 전주에 도착하면 다시 택시를 타고 아중리까지 갔다. 마을 입구에 내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파란 대문집이 나왔는데 그곳이 바로 우리 외갓집이었다. 양쪽 대문 중 하나는 늘 열려 있었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안을 들여다보면 양옆에 묶여 있던 개 두 마리가 거의 동시에 벌떡 일어나 짖어댔다. 그 시절엔 어느 집이나 개 한 마리씩은 키웠기에 골목길을 지나가면 동네가 온통 개 짖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그렇게 '인호 씨 댁 큰딸이 왔다'는 소식을 동네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아이고, 우리 손자들 왔냐' 하며 고무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오셨다. 나와 내 동생이 개들 때문에 겁이 나 밖에서 머뭇거리면 할머니는 개들을 때리는 시늉을 하며 쫓아내셨고 그제야 우리는 맘 편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면 가운데 본채가 있고 오른쪽엔 푸세식 화장실이 그 아래엔 씻을 수 있는 작은 목욕터가 있었다. 용변을 보려면 꼭 집 밖으로 나와야 해서 외할머니는 우리가 오면 머리맡에 요강을 놔주셨다.

그날도 마당 한쪽 아궁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고기를 삶고 계신 듯했다. 우리는 시골 마당을 신기하게 구경하며 엄마와 외할머니의 대화를 들었다.

'아부지는 어디 갔어?'

'과수원에 갔지. 아침 일찍 갔어. 비닐하우스에서 덥지도 않응가 하루죙일 거기서 라디오만 듣는가 오지를 않어'

'저녁 잡수러는 오시겄지'

'오늘 곗날이라 이따 나갔다 온다 했는데.. 우리 손주들, 복숭아밭 한번 가볼래?'

우리 외갓집은 복숭아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여름에 외갓집에 가면 항상 마루 위에 복숭아가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복숭아가 놓여 있았다.

새하얗고 핑크빛을 살짝 띤 말랑말랑한 복숭아들. 한쪽에 멍든 것들이 많았지만 그중 제일 맛있어 보이는 하나를 골라 할머니가 건네셨다.

오자마자 나와 동생은 복숭아 한입을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달고 향기로운 즙이 고였고 상큼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배도 고프고 갈증도 난 터라 우리는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나는 과일 중에서도 복숭아를 제일 좋아했기에 외갓집에 가면 복숭아를 실컷 먹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엄마는 반대였다. 복숭아를 제일 싫어하셨다. 이 맛있는걸 왜 싫어하냐고 물으면 어릴 적에 너무 많이 먹어서 질리다고 했는데 그 말이 당시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는 복숭아밭에 뱀이 나온다며 우린 집에 있으라 하셨다. 그래서 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마당을 돌아다녔다. 한쪽 작은 밭에서 달팽이를 구경하고 정체 모를 꽃과 풀들을 실컷 구경한 뒤 집 뒤편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뒤편에는 대나무 밭이 있었는데 바람에 잎이 스치는 소리가 참 좋았다. 여름 바람이 지나가며 대나무잎들이 부딪혀 나는 소리를 한참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동생과 한참을 돌아다니다 손을 씻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외갓집은 앞에 작고 긴 마루가 있었고 그 뒤로 거실 같은 큰방.. 양옆으로는 두 개의 방이 있었다. 왼쪽 방은 주방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주방은 방보다 지대가 낮아 신발을 신고 오가야 했다. 우리는 가운데 큰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큰 tv가 있기도 했고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다락방도 있었기 때문이다.

문고리에 창호지가 덧발라 있는 문을 열면 작은 계단이 있었고 그 안에는 외할아버지가 사다 놓은 과자들이 가득했다. 우린 그 과자를 좋아했다. 튀밥을 뭉쳐만든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옛날 과자, 유과. 사랑방 캔디까지... 우리는 몇 개 집어 먹고 티 나지 않게 잘 정리해 두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삼촌들이었다. 엄마는 여섯 남매 중 첫째였고 아래로 삼촌 넷과 이모 한 명이 있었다. 엄마가 오랜만에 온다 하니 삼촌들이 일찌감치 모인 것이다.

"영민이는 아직 안 왔어?"

"좀 늦는디야. 먼저 밥 먹을까나?"

막내삼촌이 말했다

"나 배고파. 뭐 먹을 거 없나? 아궁이에 고구마 좀 구울까?'

난 그 말을 듣고 너무 반가웠다. 아궁이에 구운 고구마는 정말 맛있었기 때문이다. 삼촌들은 창고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호일에 대충 싸더니 아궁이에 던져놓고 부지깽이로 골고루 익게 가지런히 놓았다.

그때 외할머니가 아궁이 위에 커다란 솥뚜껑을 열어 고기가 익었는지 살펴보셨다. 그러고는 곧 부엌에서 도마와 칼, 접시를 가져와 한 켠에 두고, 솥 안의 고깃덩어리를 꺼내어 한 김 식힌 뒤 먹기 좋게 썰기 시작하셨다.

엄마와 삼촌들이 식사 준비로 분주해지자, 나와 동생은 손을 씻고 아궁이 옆 마루에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외갓집에 있었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은 우리 외갓집이 있던 마을은 재개발이 되어 골목도 파란 대문도 대나무밭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외갓집 자리엔 초등학교가 생겼고 복숭아밭이 있던 곳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어릴 적 동생과 뛰어다니던 마당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아직도 그 마당의 흙냄새와 아궁이 불 지피는 냄새와 대나무 밭에서 나던 바람 소리를 기억한다.

가끔 아중리를 지나갈 때면 습관처럼 고개를 돌려 외갓집이 있던 곳을 바라보게 된다. 눈앞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외할머니가 고무신을 신고 나오시며 반갑게 우릴 맞아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돌아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쉽고 쓸쓸하지만 그곳에서의 시간들은 내 마음 한켠에 남아 여전히 따뜻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비록 이제는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그곳은 여전히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소중한 추억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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