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어려울 때 나는 시를 읽는다

by 은하수

북클럽문학동네에서 받은 자선 시집을 완독했다. 172 페이지에 달하는 얇은 책이지만 시는 삶과 언어가 고밀도로 응축된 문학인 만큼 한 번에 소화 가능한 분량이 정해져 있다. 더군다나 30명의 시인들이 직접 고른 시가 실려 있기 때문에 빛깔도, 맛도 다채로워서 천천히 음미해야 했다.


소화력이 약한지라 웬만해서 시는 하루에 6편을 넘기지 않는다. 그 이상 욕심냈다간 우유를 마신 직후 알약을 삼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분명 하얀 바탕에 쓰인 검은 글자를 읽었는데 도무지 단어가, 문장이 소화되지 않고 위장을 관통해 쑥 빠져나가 버린다. 작년 봄부터 읽기 시작한 시집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책 한 권을 끝냈다는 뿌듯함과 약간의 아쉬움이 밀려왔다.


시는 영혼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아서 읽다 보면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필터 없는 기본 카메라로 찍은 초근접 셀카를 마주할 때처럼 당혹스럽다. 남들 보기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포장지를 두른 채 상냥한 척, 멀쩡한 척, 때로는 무심한 척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벌거벗은 내면을 마주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인들은 삶, 사랑, 죽음, 존재처럼 대면하기 껄끄러운 것들의 순간과 영원을 끈질기게 포착하고 파고든다.


죽음은 강물 위 흐르는 안개를 타고 걷는 일
새벽 호수의 북단
어슴푸레 멀다

삶이란 모두 잠든 밤
삐걱대는 마루를 디디는 일


- 진수미, 「센세라는 이름의 고양이」 중에서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나의 부족한 문학적 지식과 감성으로는 불가해한 시들도 많지만 이렇듯 마음을 울리는 시를 마주치면 눈이 번쩍 뜨이고 전율이 돈다. 내가 느끼는 감각과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적확한 문장과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글 쓰는 사람에겐 평생 끝나지 않는 과업이자 염원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시를 읽고 나니 영혼이 조금 맑아진 기분이다. 흐릿하게 나를 비추던 거울이 또렷해졌지만 더 이상 거울 속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시를 통한 사색은 소설, 에세이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다음엔 어떤 시집을 읽어볼지, 또 어떤 시인의 세상을 만나게 될지 설렌다.




손에 쥔 것 없이 맞이하는 새해가 껄끄러워서 한 번도 차려본 적 없던 떡국을 끓였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듯이. 어려운 손님에게 더욱 깍듯하듯이. 마음의 준비가 채 되지 않았지만 얼떨결에 맞이한 손님을 내칠 수 없어서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느지막이 뒷산에 올랐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노을이 드리웠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왼편으로는 해가 지고 있었고, 오른편엔 둥근달이 높이 떠 있었다.


철 지난 패딩에 붙은 타인의 손바닥이랄까, 뒤늦게 합류한 테이블 위 침묵에 묻은 침방울이랄까, 없던 걸로 하자는 말끝에 박힌 잇자국이랄까

깨끗하게 끝내지 않은

어제의 뒤끝을 잡고 오늘을 시작하는

쓰디쓴

쇄신의 맛, 그거예요


- 서귀옥, 「리프레시」 중에서


얼굴이 시렸지만 잔뜩 껴 입은 탓에 몸은 더워져서 두툼한 외투를 벗어 팔에 걸쳤다. 해돋이공원에 오르니 멀리 남산타워와 여의도 파크원 빌딩까지 내다 보였다. 애인과 함께 두 얼굴로 가득 찬 사진 몇 장 기념으로 남기고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언젠가 타임머신이 개발된다고 해도 비싼 이용료를 감당할 수 없을 거다. 그러니 원치 않더라도 '어제의 뒤끝을 잡고 오늘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새해를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인생도 둘레길처럼 길목마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면 좋을 텐데. 종착지도, 정답도 없는 길이 수십 갈래로 뻗어져 있어서 오늘도 서성이며 헤맨다. 어쩌면 삶이 어려워서 자꾸만 시를 읽는지도 모른다. 뾰족하게 벼린 시에 손이 베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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