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계속되는 기다림이었다.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내게) 와주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며

by Eeun

캐나다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남편은 오랫동안 바빴다. (정확하게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이후로도 계속 바빴다) 태어나 첫 해외여행이 ‘신혼여행’이었던 내가 무턱대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살다 오겠다며 비행기에 이민 가방 몇 개만 들고 오른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용감하고 무모했다. 심지어 내가 손 붙잡고 비행기에 같이 타는 남자는 불과 7개월 전 만 해도 생면부지의 사람이었다. 남편은 눈썹이 진하고 눈도 부리부리하며 중저음의 잔잔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책임감이 강할 것 같고 신뢰가 가는 인상의 소유자이다. 퇴사의 기쁨에 더하여 확신의 내 편(?)과 함께 할 내 인생 2막의 시작이 가져다주는 설렘 때문인지 신혼의 단꿈 때문이었는지 나는 캐나다행을 매우 낙관적으로 생각했고, 2년 정도면 연구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남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해외여행조차 한 번을 안 가본 내가 외국에서 살아보게 된다니. 2년이라면 해볼 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때만 해도 나는 영어권 환경이 내 영어 실력을 일취월장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캐나다에서의 삶은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캐나다 거주 경험은 영어 실력 향상 말고 부당함에 대들 수 있는 용기,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도 어쨌든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는 철판, 그리고 뼛속까지 I(내향형)인 내가 E(외향형)처럼 보일 수 있는 변신술 정도를 선물해 줬다)


결혼 전에 내게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것이 있는데, 결혼이라는 것은 계속된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당분간 일을 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매일 저녁 남편을 위한 저녁밥을 차려놓고 남편을 기다렸는데, 남편의 연구란 참 바빴고 남편 본인도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에 집중하는 동안 남편은 연락 두절이었다. 남편은 저녁 늦게 돌아와 차린 지 한 시간도 더 지난 식은 밥을 먹기가 일쑤였다. 나는 남편에게 계속 몇 시에 오냐며 전화를 걸고 그의 연구 흐름을 계속 끊어댔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늘 ’모르겠다.’ 였고, 나는 매일 반복되는 기다림에 지쳐갔다. 주말에도 남편은 부지런히 연구실에 나갔다. 조금이라도 남편과 함께 있고 싶었던 나는 읽을거리와 공부할 것을 챙겨서 남편을 따라갔다. 오전에 남편과 20분을 걸어서 연구실에 갔다가(차는 없었다. 월세 $1700을 내고 한 달간 숨만 쉰 것 같은데, 월급이 늘 남지 않았다), 남편이 목표한 그날의 연구가 끝나면 늦은 밤 함께 돌아오던 내 유일한 즐거움은 길가의 카페에 들러서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는 것이었다. 주말에도 따로 데이트도 하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나와 시간을 보내줄 수 없었기에, 나는 지역 대학의 영어 학습 코스를 한 달 동안 다녔고, 외국인 친구들과 하는 Language exchange 모임도 찾아다니고, 한인 커뮤니티에 자원봉사도 나가보고, 그림을 배우러 가기도 했고, 한국 사람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마음은 늘 헛헛했다.




결혼 이전의 나는, 인생에서 일반적으로 ~시기에는 ~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빨리 갖기를 원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은 내가 살면서 해나가야 할 대표적이고 중대한 과업 중의 하나였다. 나는 이왕이면 결혼도 뭘 모를 때 빨리 하는 것이고, 아이도 건강하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낳아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결혼과 자녀 양육에 관한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아이를 갖기를 원했는데, 남편의 입장은 달랐다. 남편은 바쁜 시기를 좀 지나게 될, 1년 후에 아이를 갖기를 원했다. 그래야 육아를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돌아보니, 남편은 계속 바쁠 것이었고 육아는 어차피 내 일이 될 것이었는데 헛된 기대로 출산과 양육을 괜히 미뤘다.


신혼을 즐기기는커녕 남편의 부재로 외로운 날들만 계속되었다. (물론 외박은 하지 않았고, 부지런히 집에는 돌아왔다) 남편과 피임을 약속했던 1년이 지나고 나서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갖고자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피임만 하지 않으면 금방 찾아와 줄 것이라고 믿었던 아이는 생각처럼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임신테스트기만 구매하다가 나중엔 배란 테스트기까지 구매해 가며 열심히 체크했거늘, 두 줄 보는 것이 그리도 힘들 줄 몰랐다. 주변에서 지인들의 임신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를 늦게 갖고 싶어 했는데 오히려 덜컥 아이가 찾아와 준 사례는 내 마음을 더 울적하게 했다. 이러다 아이를 못 가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이를 많이 예뻐하는 편도 아니었음에도, '(우리) 가족의 완성'을 위해서는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여간 불안하고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들려오는 임신 소식에 축하인사를 하면서도, 더 일찍 결혼했음에도 내게는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 슬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 걱정하면서 괴로웠다. 아이를 기다리는 기간 동안 나의 목표는 단 하나, ‘임신’이었다.


기다림은 길어졌고, 거의 1년을 기다렸는데 아이가 찾아오지 않자, 나는 앞으로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을 것을 가정하고 내 삶을 다시 계획하고자 했다. 되돌아보니, 나는 신혼도 즐기지 못했고 몸이 피곤하면 임신에 안 좋다는 핑계로 2년째 어영부영 살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자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산후우울증이라는 단어도 우습게 들렸다. 누구는 아이가 안 와서 이렇게 걱정인데, 산후우울증이라니 배부른 소리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남편과 상의도 없이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기도 했다. “나, 한국에 가서 좀 쉬다 올게.” 남편은 많이 당황했지만, 오죽하면 저렇겠나 싶었는지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고, 나는 그렇게 혼자 한국에 돌아가 친정에서 두 달간 신세를 지고 돌아왔다. 포기했더니 마음이 편했다. 한국에 다녀오고 얼마 뒤, 첫째 아이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을 알았다. 임신을 기다린 지 1년 하고도 2개월 만이었다. 아이를 나보다 오래 기다리셨을 부모님들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이토록 누군가를 오랫동안 열망하며 기다려 본 경험은 없었다. 자연임신을 포기하고, 난임센터에 대기를 걸어 놓은 상태에서 아이가 생긴 것은 정말 다행이었고, 나는 육아카페에 나름의 임신하는 소소한 팁이라며 기쁨에 차서 글을 올렸다. 내가 생각한 팁을 다 올리고 나서 글의 마무리는, "(…) 모두에게 이쁜 아기 찾아올 거예요!!! 파이팅이요!!! :) 기다리던 아기라서, 갖고 나서도 시간이 너무너무 안 가요."였다.




오늘은 가수 최유리 님의 <숲>(엔에이치엔벅스, 2022)을 추천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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