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간다면, 최선을 다해 너에게 말을 걸 거야.
아기를 갖고 나면 예쁜 태명을 지어주고, 태교를 열심히 해보려고 다짐했는데, 나는 걱정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막상 아이가 찾아오니, 내가 끝까지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아이에게 예쁜 태명을 지어주고 정성스럽게 말을 걸다가 혹시라도 아이가 잘못되면 내가 받을 상처가 너무 클 것 같았다. 온라인 카페가 문제였다. 아니, 카페가 문제가 아니라, 그곳에서 너무 많은 슬픈 게시글들을 굳이 눌러서 읽어본 내가 어리석었다. 임신한 지 몇 주가 되었는데 아이가 떠났다던가, 정말 출산이 임박했는데 열 달을 소중히 품고 있던 아이가 떠났다든가 하는 글들을 읽다 보니 이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았다.
태명을 내가 짓겠다고 생각했던 시기보다 아주 늦게 지어줬다. 태명을 지으면서도 고민이 참 많았다. 인간극장이라던가 어릴 때 보았던 다큐멘터리 방송에 출연했던 출연자들의 숱한 이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희망차거나 예쁜 태명을 지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이름을 밝게 지으면 오히려 삶이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느껴서였다. 그래서 나는 희망이나 축복이와 같은 태명은 짓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이가 밝고 예쁘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나는 우리 아이 태명을 ‘햇님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햇님아~”하고 아이를 불러준 것은 기형아 검사가 끝난 뒤였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아기야~‘라고 부르며 가끔 말을 걸었을 뿐이었다. 이름을 자꾸 부르다 보면, 말을 자꾸 걸다 보면, 너무 정이 많이 들어버릴까 봐. 나는 참 쓸데없는 것을 걱정하고, 아이보다 사실 나 자신을 지나치게 보호하려고 애썼다.
우리 햇님이는 참 순한 아기였다.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나는 단 한 번의 헛구역질밖에 하지 않았다. 그것도 빈속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임산부 비타민을 먹고 바로 바나나를 먹어서 그랬던 것이지, 그 바나나만 아니었다면 그조차도 안 했을 것이었다.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져서 누워있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둘째는 머리가 너무 커서 17주부터 엄마를 너무 불편하게 했고, 예정일 한 달이 되기 전부터 나는 짧아질 대로 짧아진 경부 길이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했다. 그리고 경산인데도, 둘째 출산이 첫째보다 더 힘들었다.) 아무래도 한국 책을 구하기 어려운 외국에서의 삶이라, 나는 다음(Daum) 포털의 한국 커뮤니티에 종종 들어가, 중고로 나온 태교 도서가 있는지를 검색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태교 서적과 육아서적을 부지런히 구하러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책을 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뱃속의 아이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해주고 내가 몸과 마음이 편하게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태교 도서를 구하면 뭐 하나. ‘아빠가 들려주는 태교 동화’를 읽어줘야 할 아빠는 바빴고, 배에다 대고 말을 건다거나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자상함을 찾아보기 어렵던 아빠였다. 남편은 배가 불러온 아내를 위해준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을 다하여 설거지나 집안의 힘든 일을 해주기는 했지만, 말로 아내를 살뜰히 챙기는 것에는 어색했다. 그것은 뱃속의 아기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엄마라도 태교를 열심히 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사실 엄마도 아빠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뱃속의 아기에게 말을 걸어준다거나 노래를 불러준다거나 하는 것은 어색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대신에 생각했다. 우리는 이어져 있으니까,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아기도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알아줄 것이라고.
임신 전부터나 임신 중에 나는 흡연이나 음주를 전혀 하지 않았고(원래가 비흡연자다), 남편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아이가 열 달 무사히 채워주고 건강하게 나오기를 바라며, 부모가 될 날을 기다렸다. 우리 부부의 첫아기는 부모의 바람에 부응하듯 2019년 1월 19일, 건강한 모습으로 순탄하게 세상에 나와주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전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한 어떠한 이슈도 없었다.
우리 아이가 ‘느린 아이‘가 된 원인은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이의 발달 장애를 부정하고만 싶었던 지난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아이와 내가 겪어온 무수히 많은 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곤 했다. 막 걸음마를 떼고 집에서 뛰어다니던 시절, 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혹이 크게 올라왔던 것이 문제일까. 아니면 열성 경련을 한 차례 겪었던 것이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면 출산할 당시에 내가 괜히 자연분만한다고 해서, 아기를 너무 힘들게 했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임신 중에 종종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문제일까. 온갖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태교 동화를 제대로 여러 번 읽어줄걸! 하고 후회는 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뱃속의 아기에게 내 목소리를 더 많이 들려주고, 더 많은 자연의 소리와 음악을 들려주리라는 것. 오지 않을 쓸데없는 일(아기와 못 본 채로 영영 이별한다든지 하는 일)을 걱정한다고 아기를 사랑하는 것을 겁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기를 1년이 넘게 기다렸어도, 아기를 열 달을 품고 있었어도, 나는 사실 엄마가 될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이번 회의 추천곡은 스탠딩 에그 < Little Star> (카카오엔터테인먼트, 2011)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