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고만 있으니 예쁘기만 할 수 밖에
첫째를 낳기 몇 달 전부터, 친정어머니께서 도와주시러 캐나다에 미리 와주셨다. 아기는 예정일보다 1주일 정도 일찍 태어났다. 임신 중 어떠한 이슈도 없었고, 출산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 바로 옆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나서 이틀 정도 여러 기본 검사 때문에 병원에 머물렀고, 이상 소견이 없어 아기를 안고 바로 집에 걸어서 퇴원했다. 남편은 1주일 동안 연구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육아를 도왔다. (이때 애 아빠가 아기를 다루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남편에게 의외로(?) 부성애가 꽤 있는 것 같아서 신기했었다. 몸도 커다란 사람이 작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어설프고 귀여웠다) 당시의 친정어머니는 거의 슈퍼우먼이었는데, 산후조리원이 부재한 캐나다에서 친정엄마는 산후조리사의 역할을 넘치게 해주셨으니, 아기를 낳은 직후라 몸을 회복시켜야 하는 산모였던 내가 해야 할 일은 모유 수유, 분유 먹이기, 예뻐해 주는 것 뿐이었다.(나중에 말씀하시기를 그때 너무 힘드셨다고 했다) 아기는 사랑스러웠고, 굉장히 자그마했으며, 잘 나오지 않는 모유를 먹겠다며 애쓰고 빨아대는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 아기는 자주 자고, 똥도 많이 싸며, 종종 울었다. 아기가 보이는 행동과 표정 그리고 작게나마 내는 소리 등 모든 것이 신기했고,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아기를 안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때 찍은 동영상들을 보면, 아기는 너무 어려서 별다른 소리는 내지 않고 있는데, 아기가 이뻐 죽겠다는 내 목소리만 오디오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내가 엄마로서 미덥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출산하느라 고생했으니 푹 쉬길 바라셨던 친정어머니께서 내게 주신 역할은 아기를 먹이는 일뿐이어서, 나는 아기를 너무나 편하고 쉽게 돌보았다. (둘째 출산 후에는 역시 한국에 계신 시어머니께서 캐나다까지 오셔서 애쓰고 도와주셨는데, 그때는 아무래도 첫째와 둘째를 모두 챙겨야 하는지라, 여기저기 몸이 삐걱거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첫째 때 산후조리는 너무 잘했다) 내게 산후우울증이 찾아오지 않았던 이유는 아기를 내가 전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정 엄마가 차려주시는 미역국과 밥을 먹으며 (이전만큼은 아니어도 신생아의 엄마치고) 충분한 잠을 잘 수 있었던 아기 엄마에게 산후우울증은 오지 않았다.
2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친정어머니께서 한국에 돌아가셔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출산 후 2개월간 친정엄마의 밀착마크로 아기가 주는 어떠한 힘듬도 혼자 오롯이 겪지 않았던 나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글을 써오면서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엄청난 겁쟁이였다) 남편은 여전히 바빴고, 주말에도 연구하러 나가며, 집에는 늘 늦게 오는데 핏덩어리 같은 아기와 집에 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겁이 났다. 아기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아기의 이상증세를 혹시라도 둔해서 늦게 알아채면 어쩌나, 밤늦게 아기가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 육아의 육체적, 정신적 힘듬에 대한 걱정보다 부모로서 나의 자질과 응급 상황 대응에 관련된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섰다. 고민 끝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의 여권 사진을 급히 찍고, 어머니의 귀국길에 함께 떠날 준비를 했다. 2019년 3월 14일 나는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안 된 아기와 친정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도착했다.
출산과 동시에 시작된 친정 도움 받기는 캐나다에서 끝나지 않고 한국으로 배경을 옮겨, 그해 9월까지 7개월간 이어졌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손주였기 때문에, 아기는 예쁨을 정말 넘치게 받았다. 아기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았다. 배냇짓도 잘하고 잘 웃고, 옹알이도 잘했다. 시선도 잘 맞췄고, 때때로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그 얼굴이 너무 귀엽고 재밌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아기일 때의 기억은 정말 큰 선물 같다. 뭘 해도 예뻤고(똥을 싸도 예쁘다), 확실히 이전보다 친정어머니께서도 원래 엄마가 해야 할 육아의 많은 부분을 다시 내게 돌려주셨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살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보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우울하거나 힘든 점은 하나도 없었다.
아기의 존재 자체로 친정 가족들 분위기도 평소보다 더 화목했고, 이전에 못 하던 기술들(?)을 기존 행동에 익숙해질 만하면 하나씩 슬며시 꺼내 보여주는 아기의 재롱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기는 때맞춰 목을 잘 가누기 시작했고, 옹알이도 잘했고, 잘 기었고, 발장난도 잘 쳤으며, 의사 표현도 확실했다. 가끔 ‘엄마 엄마’하며 나를 부르는 듯 옹알이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시기를 내가 캐나다를 떠나옴으로써 아기 아빠는 영상이나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조금 미안했지만, 차라리 아내와 아기가 없는 시기에 연구에 더 집중하면 효율적인 면에서 더 낫지 않겠냐며 (남편의 동의 없이) 나 혼자 위안을 삼았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어느 정도 육아에 자신감이 붙은 나는 2019년 9월 26일, 캐나다로 향하는 비행기에 첫째와 몸을 실었다.
이번 회의 추천곡은 선우정아, <도망가자(Run With Me)> ,앨범 Serenade, 2019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