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베이비(Corona Baby)

입을 막아버린 것은 정말 마스크였을까?

by Eeun

사실 첫째는 엄밀히 말하면 코로나 베이비는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 태어난 2019년 1월 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마스크 필수 착용이라는 제한 아래 우리 가족 또한 외출을 쉽게 하지 못했고, 아이의 엄마인 나는 매우 겁에 질려있어서 아이는 그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2021년 10월생인 둘째 아이가 코로나 베이비 혹은 락다운 베이비(Lockdown Baby)이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기를 위해 백신을 맞을 것인지 맞지 않을 것인지로 고민하게 했던 둘째는 태어나고 두 달 만에, (백신을 맞지 않은 엄마가 박싱데이(Boxing Day_매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큰 폭으로 대규모 에누리를 한다)에 들뜬 마음으로 외출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몸에 붙이고 돌아와서) 코로나에 걸렸다.




캐나다에서 외벌이로 살고 있었기도 하고(맞벌이가 아니면 아이를 데이케어(Daycare)에 보내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맞벌이하거나, 한 부모 가정이라면, 나라와 회사에서 보조를 해주지만, 그런 경제적 보조가 없으면 비용이 상당히 비싼 편이며 아이를 종일 맡겨둔다고 했을 때 드는 비용은 한 달 월세와 거의 동일하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데이케어 비용을 낼 수 없었던 상황이어서 나는 2019년 9월 말, 한국에서 돌아온 뒤로 아이와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우리는 화장실 하나, 방 하나, 거실 하나로 이루어진 원베드(One Bed)라는 주거형태에 살고 있었는데, 창문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높은 높이의 통창을 갖고 있는 그럴싸해 보이는 집이었으나, 문이 열리는 창은 하나뿐이었는데 위험하므로 아주 조금만 열렸고, 매우 답답했다. 환기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도 밖에서는 바람이 들어오지 않고,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공사 중인 건물들과 집 옆의 대학 병원뿐인 다소 삭막한 도시에서의 삶. 캐나다에 오면 자연 속에서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내 기대와 달리, 우리는 건물 숲이 우거진 중심가 한복판에 살았고 생활은 편리한 대신, 사는 것은 퍽퍽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와 공원이라도 가려고 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멀리 나가야 했고, 캐나다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아기와 다니는 아기 엄마에게 상냥했고 흔쾌히 친절을 베풀어주었지만, 매번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유모차를 끌며 멀리 외출하는 것은 몸도 마음도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 근처 마트에 장을 보러 가거나 집 옆 쇼핑몰에 윈도쇼핑을 하러 가는 것으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었다.



2019년 말, 코로나19가 터졌다. 한국에서 돌아온 지 5개월 만에, 나와 아이는 집에 갇혔다. 이듬해 1월 말, 친하게 지내던 언니와 언니의 아이를 만나 점심을 함께한 것이 외출다운 마지막 외출이었고, 이후로 한동안 아이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2020년 3월 팬데믹 선언은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나가면 죽을 것이니, 나가지 말아라.’ 정도의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온갖 종류의 괴담들이 돌아다니던 그 시기, 캐나다에서는 한국에서는 줄을 서면 운 좋게라도 구할 수 있다는 마스크 한 장 조차도 구할 수가 없었다. 나의 생존 본능은 '마스크'를 구해야 한다는 임무를 누군가 내린 것처럼 내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이게 했다. 동네 약국에서는 마스크를 구할 수 없었고, 나는 이베이(eBay)에서 마스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쓰지도 않을 N95 마스크를 비싼 값에 사들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심해질지 모르니, 공사 현장에서나 쓸법한 N95 마스크라도 갖고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고, 나중에는 병원에서 쓰는 얇은 수술용 일회용 마스크까지 100장이 들은 한 상자에 $50가 넘는 금액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지금 가격은 어떤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아서 찾아본 적은 없다) 차단 효과를 믿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중국산 마스크도 가끔 올라오면 만약을 대비해서 구매했다. 캐나다에 살면서 우리 부부는 늘 돈이 없었는데(남편이 한국에서 모은 돈을 끌어와서 캐나다에서의 생활비를 충당했고, 남편이 젊은 시절 모아 왔던 돈은 한국에 돌아갈 시점이 되니 남아있지 않았다), 마스크는 사야 할 것 같아서 마스크 구입비만 약 백만 원 가량을 쓴 것을 보면 보면, 나는 엄청난 공포와 생존 욕구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어느 정도 규제가 풀리고 상황이 나아졌을 때, 우리 집에 방문했던 지인이, 내가 수집한(?) 마스크들을 보고, 코로나 시대의 ’찐(진짜) 부자‘라며 웃었다)


대체 이걸 언제 다 쓰려고 이렇게나 많이 샀단 말인가. 다행스럽게도(?) 상자로 여러개 사들였던 의료용 수술용 마스크는 거의 다 소진했다. (집 어딘가에 남아있긴 하다)


마스크를 열심히 사들이며 집에서 칩거 생활을 하던 나는 2020년 5월 초, 나는 첫째 아이만 데리고 캐나다를 떠나 한국으로 들어왔다. 캐나다보다 한국이 더 안전해 보였다. 캐나다에 돌아온 지 고작 8개월 만이었다. 문제는, 캐나다를 떠나기 직전의 3개월 동안 아이와 무엇을 했는지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나도 첫 아이 때는 아이의 여러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곤 했는데, 2020년 2월부터 4월 말까지 3개월 동안의 아이 사진이 많지 않다. 나는 이 시기에 무엇을 했던 것일까. 분명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고 하는 일련의 필수적인 활동은 했었겠지만, 내 기억에 더 많이 나는 장면은 이베이를 자꾸 들락날락하며 마스크 구매 버튼을 누르던 내 모습이다.


아이가 느리다 하면, 코로나를 겪어서 그렇다든가 마스크를 써서 그렇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아이가 어릴 때 많이 들었다. 그때는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고, 불필요한 대화는 하지 않았으며, 아이들도 정말 어린 아기들을 제외하는 예외 없이 착용해야 했으니, 코로나를 겪은 아이들이 언어의 발달적인 측면에서 더 어려움을 겪었을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아이와 집에 오래 있었는데, 집 안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 아이가 내 입 모양을 보려면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는데, 마스크 착용에만 원인을 돌릴 수 없는 것 같다. 아이의 늦은 언어 발달의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두려움에 휩싸여있던 3개월이 언어 발달을 늦추는 것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에게 하루가 어린 아기에게는 1주일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3개월을 허비한 것이니, 우리 아이는 계산해 보면, 1.72년 정도 동안 필요한 자극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 세상은 코로나바이러스로 흉흉했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보았으며, 수백만 명이 유명을 달리했고, 모두가 걱정을 안고 살던 시기였다. 누구나 힘들고, 누구나 두려웠다. 나는 엄마로서 더 강인하고 현명하게 행동할 수 없었던 것일까 하는 후회만이 남았다.




이번 회의 추천곡은 권진아, <위로>, 앨범 멜로가 체질 OST Part 1, 2019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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