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 엄마가 꾼 꿈 이야기
나는 원래 Dreamer다. 그리 모험적이거나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나도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은 Dreamer였던 적이 있다. 한창 인기 있었던 MBTI 결과가 결혼 전에는 공상가, 이상주의 쪽으로 나왔던 기억이 있다(어떤 유형이었는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 이후 나의 MBTI 유형은 완전히 바뀌었는데, 그것은 ISTJ(현실주의자)이다. 여러 번 다시 해봐도 ISTJ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다른 의미의 Dreamer로 살고 있다. 나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잠이 들었다 하면 꿈을 많이 꾼다. 그래서 늘 나는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다. 온갖 종류의 꿈을 다 꿔보았는데, 보통은 꿈에서 체력적,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피곤한 일들을 겪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다. 늘 꾸면서도 꿈이라는 것은 알지만, 왜인지 꿈속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어정쩡한 느낌으로 깨는 것은 싫어해서, 나는 한참을 꿈속에서 헤매다가 깨곤 했다. (사실은 그건 핑계고 그냥 더 자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꿈의 양상도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데, 내 아이를 낳게 된 이후에는 이전에 꾼 적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꿈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꿈들은 꽤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내게 찾아왔다.
아이가 말을 했다.
나의 간절한 염원이 만들어 낸 나의 꿈. 매우 희망적이지만, 깨고 나면 나를 다시 실망하게 하곤 하던 꿈은 꿈속에서 아이가 정상 발달 아이와 거의 동일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60개월(만 5세)까지 무발화에 가까웠다. ‘주세요’도 ‘우에요’, 그 당시에 매일 찾던 색종이도 발음을 못 해서, ‘때또이‘라고 했고, 우유, 아빠, 밥 정도만 겨우 했다. 내 기록에 따르면, 44개월에도 우리 아이는 자기 이름도 말 못 하고, 엄마, 아빠, 우유만 할 줄 알았다. (지금 47개월인 둘째가 웬만한 소통이 다 되고, 온갖 말을 다 하는데, 엄청난 차이다) 아이의 발달 지연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면서부터는(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언제가 되어야 아이가 말 다운 말을 할까?'가 가장 중요한 문제 같았다. 상황에 맞는 말이 아니더라도, 단어 한 개라도 제대로 말해줬으면, 그리고 조금의 욕심으로 단어 두 개 정도를 붙여서 말해줬으면 하고 바라던 시기가 있었다. 느린 아이들도 그 정도가 천차만별이라, 간혹 이미 우리 아이가 겪고 있는 시기를 지난 아이의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게 될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 엄마가, 아이가 엄마를 부르지 않을 때가 편하고 좋을 때라며, 나중에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게 될 거라고, 지금을 즐기라고 했다. 하지만, 느린 아이 엄마 중 어느 엄마가 그 조언(?)을 넓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 시끄러워도 좋고, 말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무슨 말이라도 조금 더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해줬으면 하고 매일 바랐다.
그래서인지 꿈에서 우리 아이가 ‘엄마‘하고 부른 뒤에 재잘거리는 꿈을 꾸었을 때, 나는 기쁨에 차올라, 크게 소리를 질렀다. 너무 행복했다. 내가 살면서 꾸었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꿈 중에 가장 행복했던 꿈이다. 꿈에서 행복에 겨워 있을 때, 불현듯 ‘아, 이건 꿈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아침에 잠에서 깬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00아, 너 엄마 꿈에 나왔는데, 말을 되게 잘하더라. 말 좀 해볼래?“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엄마가 이게 무슨 이상한 말을 하나 싶어 하는 눈치였고, 역시나 아이의 입은 굳게 닫혀있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외계어만 뱉을 뿐이어서, 내 입에서는 탄식이 나왔다. 그런 꿈을 꿀 때는 꿈인 것을 알면서도 잠깐이나마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가 갑자기 또래처럼 말하며 내게 말을 걸던 행복한 꿈도, 그나마 내가 곧 아이가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을 때나 꿀 수 있었고, 그런 꿈을 반복적으로 꾼 이후로도 실제로는 여전히 입이 무겁던 내 아이는 어느 날인가부터 내 꿈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이가 사라졌다.
아이가 말하는 꿈이 나의 간절한 염원에서 발현된 무의식의 표출이라면, 말하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은 나를 또 다른 꿈으로 내몰았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이었다. 당시에 아이는 40개월이 넘어서도 본인 이름도, 나이도 말하지 못하는 무발화 상태였다. 당연히 집 주소, 엄마 아빠 이름, 전화번호 같은 것들을 외우거나 말할 수 없었다. 경찰서에 지문 등록도 해놓고, 혹시 몰라 아이가 외출할 때면, 종종 미아 방지 팔찌를 채워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불편한지 자꾸 팔찌를 풀곤 해서 의미가 없었다. 꿈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나는 매번 꿈속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아이에게 못 해준 것들만 생각났다.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은 아이가 말하게 되는 꿈 보다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여러 번 이런 꿈을 꿨는데, 꿈꿀 때마다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늦게 알아챘고, 나는 ’이건 꿈이어야만 해‘ 하는 의식을 꿈속에서도 했고 깨어나려고 애썼다. 한 번은 꿈인 것을 알면서도 꿈속에서 펑펑 운 적이 있다. 의식적으로 깨어나려고 했으면, 깰 수 있었을 것인데 어째서인지 나는 깨지 않고 계속 울었다. 꿈속에서 만이라도 내 안의 모든 울분과 슬픔을 눈물로 씻어내 보려고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날 이후로는 신기하게도 첫째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은 다시는 꾸지 않았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이번에는 꿈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하게 된 이유도 내가 며칠 전 꾸게 된 꿈 때문이다. 이번엔 꿈에서 둘째를 잃어버렸다. 첫째가 어릴 때는 수도 없이 꾸던 아이 잃어버리는 꿈을 둘째는 47개월이나 되었는데 처음으로 꾸다니, 신기했다. 꿈에 둘째가 없어졌는데, 나는 울지 않았고, 바로 꿈인 것을 알았다)
말이 트이길 기다리며 36개월까지 가정 보육을 했지만, 결국엔 말이 트이지 않던 아이를 나는 더 이상 가정 보육을 할 수가 없어(아직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어리기만 한 둘째와 함께 보는 일은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다)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 엄마의 편의를 위해서 나는 말 못 하는 아이를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 내의 일반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된 그해 9월에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과 ’상상 나라’로 소풍을 간다고 했다.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혹시라도 동행하신 선생님들이 다른 아이들을 챙기다가 다른 곳에 한눈팔고 있는 우리 아이를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다. 그래서 고민 끝에 여쭤봤다. ”제가… 아이를 잃어버릴까 봐 너무 걱정되어 그러는데… 멀리서라도 따라다닐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요. 선생님들 불편하지 않으시도록, 없는 사람처럼 잘 안 보이게 멀리서 있겠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내 부탁에 적잖이 당황하셨고, 한 번도 부모님이 근처에 따라와서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없었다 했다. 고민 끝에, 아이와 선생님들을 믿고 첫 소풍을 보냈다. 따라가지 않는 대신(?) 당시 담임 선생님께, 번거로우시겠지만, 아이가 잘 있는지에 대한 간단한 문자 정도만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이는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즐겁게 잘 다녀왔고, 나 역시 처음의 걱정과 우려를 극복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지 그 이후부터는 아이의 외부 현장학습을 걱정 없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생생했던 여러 번의 꿈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지금도 여전히 늘 아이를 잃어버릴까 불안하다. 7세(80개월, 만 6세)가 된 지금은 그래도 가족 이름, 집 주소, 엄마 전화번호까지는 외우고 있고, 자기 이름은 확실히 글씨로 쓸 수 있으며, 엄마 아빠 이름도 대충 쓸 수 있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이 코앞인 이 시점에 또래 아이들은 집 근처 학원도 혼자 다니고 놀이터도 친구와 가곤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엄청나게 불안해진다.
80개월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꿈이 아닌 실제로 ‘아이를 잃어버렸구나’ 싶어서 가슴이 내려앉았던 적이 두어 번 있다. 재작년 여의도 ’더현대‘의 크리스마스 팝업 빌리지에서 조금 전까지 옆에 잘 있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우리 부부는 둘 다 말을 잃고 없어진 첫째를 찾아 그 많은 사람을 헤집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다행히도 크게 원 모양으로 그 공간을 돌고 있던 아이는 금세 꼬리를 잡혔고, 잃어버린 지 약 5분 만에 찾긴 했으나, 그 5분은 체감상 5분은 분명 아니었다. 그리고 올해 여름, 킥보드를 타던 아이가 속도가 너무 빨라, 남편이 아이를 따라가다가 동네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한 적이 있다. 아파트가 평지이긴 하지만, 오래전에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지상으로 차가 다니기 때문에 안전한 느낌은 아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 가득한 험한 말(?)을 하며 아파트 단지를, 아이를 찾으며 뛰어다니다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혹시나‘하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집으로 올라오면서 112에 아이 실종신고 전화를 했다. “어머님, 진정하시고요. 아이의 이름이랑 나이 그리고 키라던가 인상착의를 좀 알려주시겠어요?“, 11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휴대폰을 붙잡고 있던 내 눈앞에는 킥보드를 탄 채로, 해맑게 “엄마, 아빠는 어디 있어요? ”라고 묻는 땀에 전 아이가 서 있었다.
이번 회의 추천 곡은, 이하이, <한숨>, 앨범 SEOULITE, 2016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