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감이라는 것은… 없는 것인가?
엄마의 감이라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내가 크면서 엄마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오신 날, 아직 신생아에 가까웠던 나를 베개인 줄 알고 아빠가 베려고 누우시려는 순간 이미 잠에 드셨던 엄마가 이상한 기분에 눈이 떠져서, 그러한 모습의 아빠를 발견하고 아빠 머리를 손으로 받쳐서 아기였던 나를 구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때 엄마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지 못하셨다면, 나는 술에 만취된 아빠의 머리에 깔려서 아마 유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와 다른 성향의 사람이다. 엄마는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꼼꼼하며 까다로우신 편이다. 나는 아빠를 닮았는데,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모를’ 정도의 눈치 없음과 둔함을 가졌다. 착하긴 한데, 어디인가 좀 답답하고, 눈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눈치가 없는 편이다. 여자로서, 아내로서의 감은 몰라도, 다행스럽게도 엄마로서의 감은 나쁘지 않았던 것일까.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온 지는 올해 11월이면 1년이 된다. 얼추 짐이 정리되자마자 내가 했던 일은, 집안 곳곳 창문에 아이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위쪽으로 잠금장치를 하나씩 더 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집에서도 곧 그 집을 떠날 것임에도 했던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세입자이긴 하지만, 지금 거주하는 집은 곧 재건축이 될 노후화된 아파트이기도 하고, ‘편히 지내셨으면 좋겠다’라는 좋은 집주인분을 만나서 가능한 일이었다. 동네 구둣방 사장님께서 그 수고스러움을 맡아주셨는데,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은 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굳이 왜 잠금장치가 하나씩 달려있는데, 돈을 들여서 더 다는지 이해를 못 하시기에, 굳이 잠금장치를 더 다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아이, 그래도 애가 이렇게 큰데, 설마요~” 하셨다(아이들은 지금 만 6세, 만 4세이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보다는 아이가 크긴 했지만, 안전에 관한 일은 더 신경 쓰고 조심해 봐야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끔 아파트에서 어린아이가 추락하는 안타까운 사고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는 한다. 보호자가 잠든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보호자가 잠시 집을 비웠을 때도 일어나긴 하지만, 보호자가 집에 함께 있는데도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한다. 하마터면 우리 집 역시 그런 비극을 겪을 뻔했기도 하다. 처음 한 번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내가 무엇을 하는 중이었는지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가 조용하길래 방에 들어가 봤는데, 방에 딸린 베란다 문이 열려있고, 그 커다란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린 채로 (사고가 나는 상황이라면 아무런 힘을 받지 못할 거라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괜한 약간의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줄 만한 방충망조차도 없다) 나를 보며 아이가 아이 몸만큼 열린 창문 바로 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바로 달려가 아이를 내려놓았었던 적이 있다. 보통은 내가 아이만 따로 두지 않기에, 그 상황 이후로는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없도록 밀착 마크를 했다. 밟고 올라갈 만한 물건들도 나중엔 다 치웠다. 창문이 가벼운 편은 아닌데, 아이가 무슨 힘으로 열었나 싶지만, 창문을 열다가 떨어지는 비극은 없었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인 내가 늘 첫째 아이에게만 붙어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가끔 남편이 집에 있을 때면, 첫째 아이든 둘째 아이든 맡겨두고 내가 해야 할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
약 3년 전의 여느 날과 크게 다를 것은 없는 주말이었다. 이직 준비로 늘 바빴던 남편이 오래간만에 주말에 집에 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둘째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남편이 아이 방(작은 베란다가 딸려있던 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그 방을 아이 방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한참 설거지를 하던 나는, 얼마 전에 그러한 일도 있고 해서 남편에게도 ”잘 봐야 돼. 전에 창문을 열고 애가 창문 앞에 서 있더라. 진짜 큰일 날 뻔했어.“라고 여러 번 말해뒀었는데, 설거지를 하다 말고 갑자기 불안해졌다. 장갑을 얼른 벗고 방 앞에 가봤더니, 열려있어야 할 방문이 닫혀있었다. 그래서 조용했나 싶었다. 설마 애 아빠가 애랑 방에 같이 있는데, 아무 일도 없겠지,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벌컥 문을 연 내 눈에 보인 것은 … 아이 방바닥에서 숙면 중인 남편과, 이미 열려있는 베란다 문, 그리고 거의 다 열려있는 뻥 뚫린 창문 앞에 전보다 더 위태롭게 서서 나를 보면서 웃고 있는 아이였다. 아빠의 감이라는 것은… 없는 것일까. 남편은 내가 아이를 내려놓고 상황을 수습(?)한 뒤에 남편에게 여러 번 화내며 소리를 지른 후에야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가 정상 발달이든 발달 속도가 느리든 간에 아이의 방은 반드시 베란다는 딸려있지 않은 방으로 하시기를 꼭 바란다. 그리고 창문 바로 아래에는 어떠한 것도 놓으면 안 된다. 밟고 올라갈 것이 없더라도 아이는 발을 디딜 물건을 끌고 가기도 하고, ‘이걸 밟고 올라갔다고?‘ 싶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판 삼아 창문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사고 기사들을 접한 적은 있기에 나 역시 혹시 모를 상황에 항상 긴장하고는 있었는데, 어째서 그런 사건이 두 번이나 발생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고는 정말 순식간이고, 나의 경우 운 좋게도 평소에는 눈치 없고, 둔한 사람임에도, 순간 엄마의 감으로 빠르게 움직여 사고를 피할 수 있었지만, 내가 방에 들어가서 아이를 창문에서 떨어뜨려 놓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아이가 11층 아래의 세상에 좀 더 호기심을 가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너무나 아찔하고 끔찍하다.
이번 회의 추천곡은 YB(윤도현 밴드), <흰수염고래>, 앨범 흰수염고래, 2011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