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발달 센터에 관한 이야기 - 2

내가 먼저 작별을 고한 치료사 선생님들

by Eeun

나와 아이는 여덟 곳의 아동 발달 센터를 경험해 봤고, 언어, 인지, 감통, 미술, 놀이 치료를 두루두루 다 받아봤다. 치료 종결로 치료를 그만두게 된 적은 없고, 선생님이 센터를 그만두시거나 우리가 이사를 하게 되면서 종결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엄마인 내 판단으로 종결한 경우는 세 번이다. 한 센터에서 기존에 맡아주시던 선생님이 그만두시는 일로, 언어치료를 두 분의 선생님께 받아본 적도 있고 해서,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이와 내가 경험해 본 치료사 선생님은 놀랍게도 총 열다섯 분이나 된다. 가장 오래 함께 한 치료사 선생님은 4년 2개월간 진행한 언어치료사 선생님이셨고, 가장 짧았던 치료는 두 달간의 미술치료였다.


이렇게 센터를 전전하며 매번 상담도 받고 내 나름의 고민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안목이 생겼다.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도 센터를 다니지 않는 것은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까,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어떻게든 도움은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시간만 보내러 다닌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치료받지 않으면 안 될까요?"


첫 센터는 거의 타의로 다니기 시작했던 곳이었다. 아이가 느린 것 같은데, 내가 조금 늦은 것뿐이라며 센터를 알아보려 하지 않자, 형님(남편의 누나)께서 오래 알고 있던 치료사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다. 간판도 명칭도 없는 센터였고, 주택가에 자리 잡은 작은 공간이었다. 형님께 듣기로는 국내 내로라하는 대학 연계의 치료센터에서 오래 일하시다가 나와서 따로 치료실을 여셨다고 했다.


나는 치료 방식에 의문을 가졌다. 40분이 지나면, 아이는 한 페이지(많을 때는 두 페이지)에 해당하는 활동을 한 종합장을 들고나왔다. 종합장 제일 위쪽에는 알록달록하게 색연필로 날짜와 요일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주로 색종이가 오려 붙여져 있었다. 예를 들자면, 우산이 색종이로 오려 붙여져 있고,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 위에 붙어있고, 아래에는 "비가 와요."라는 글씨가 쓰여있거나 우산 옆에 "우산"이라고 쓰여있는 식이다. 색종이를 아이가 오렸다거나 글씨를 아이가 쓴 것도 아닌, 그 종합장 전체가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치료보다는 종합장을 꾸미는 것에 시간을 들이는 느낌이어서 내 머리로는 그 치료의 효과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워낙 형님의 추천이 강력했고(시조카도 그곳에 오래 다니는 중이었다), 남편도 형님의 정보력과 결정을 많이 신뢰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래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센터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사건은 어느 날, 치료실을 별문제 없이 다니던 아이가 치료실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공포스러워하며 거부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바로 전 타임 치료받은 아이가 나오고 나서(처음 보는 아이였다) 우리 아이가 들어갈 차례였다. 평소엔 치료실에 잘 들어가던 우리 아이가 문 앞에 멈춰서 갑자기 치료실 안의 벽 모서리 한쪽을 손가락질하면서 극도로 공포스러워했다. 무발화 상태였었는데도, 아이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최선을 다해 보여줬다. 나는 아이가 그 날 만큼은 치료실에서 뭔가를 본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오늘은 아닌 것 같다고 아이 거부가 심하니 치료받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내가 그렇게 말한 것에 언짢으신 듯했고, 이런 아이들은 종종 이렇게 수업을 듣기 싫어서 떼쓰기도 한다면서 거세게 반항하는 아이의 팔을 끌고 들어갔다. 아이는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자기의 몸을 방 안에 들여놓지 않기 위해 문틀을 두 손으로 잡고 울면서 버텼지만, 선생님의 힘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한참을 들렸다. 치료가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나는 문밖에서 내내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다음 치료 시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말씀드렸다. 이상하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안 들어가겠다고 했던 그날은 아이가 뭔가를 본 것 같다고. 그래서 공포스러워했던 것 같다고 다음에 또 이런 일은 없을 것이로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그날은 치료받지 않겠다고. 선생님은 나를 귀신 이야기라도 하는 거냐며 제정신 아닌 사람 보듯 했을 뿐이었다.


아이는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 어떤 센터의 치료도 안 들어가겠다며 거부한 적이 없고, 그날처럼 어딘가 특정한 곳을 손가락질하면서 공포스러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사건 이후 몇 주 뒤, 나는 그 치료사 선생님께 치료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남편의 반대가 있었다. 그 치료사 선생님이 실력이 정말 좋은 분이고 치료가 효과가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었다. 상관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날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날 나는 아이를 들여보내지 말아야 했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의사를 묵살하고, 아이를 강압적으로 대하는 치료사님은 그 치료가 얼마나 효과가 좋든 간에 치료사 자격이 없다.




"자폐예요. 자폐인 거 모르셨나 봐요?"


형님의 추천으로 다니던 센터를 백 프로 내 고집으로 그만두고 나서, 우리 부부는 아이가 다닐 다른 발달 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두 곳의 센터에 상담을 예약했다. 한 곳은 센터장이 본인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름까지 걸었으니, 실력이 있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도착해서 아이는 약 50분간 치료사인 원장님과 테스트를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대기실에서 아이의 발달 상황에 대한 상세한 질문이 적힌 여러 장의 서류의 빈칸을 채우느라 바빴다.


테스트가 끝나고, 센터에 등록시키기 위한 목적의 부모 상담이 시작됐다. 나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치료사 선생님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폐예요."

"아.... 아직 아닐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게 심각한가요?" 눈빛이 흔들리며 되묻는 애 엄마를 보며, 30대로 보였던 그 치료사님이 살짝 입가에 웃음기를 띄고 말했다.

"자폐인 거 모르셨나 봐요. 그럼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치료사이자 원장이던 그 센터장은 아이는 치료를 꾸준히 받더라도 우리 아이는 정상 발달 아이처럼은 될 수 없을 거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진행하는 수업의 비용은 일반 치료사보다 시간은 더 짧지만 비용은 더 비싸다고 했다. 얼마인지도 모르고 진행했던 테스트의 비용은 10만 원이라고 했다. 10만 원을 내고 나왔다. 상담받는 동안 남편의 표정을 한번 살폈다. 늘 단단해만 보였던 남편 눈가가 촉촉했다. 나 또한 나와서 울었다. 자폐인 거 몰랐냐며 웃음기를 띈 그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에서 그 센터장님의 이름을 찾아봤다. 교회를 다니는 분이었고, 미혼인 줄 알았는데, 우리 아이만 한 딸을 키우는 엄마였다는 것은 반전이었다. 기사 속 그분은 사랑을 나누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바로 휴대전화를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오늘 상담했던 000 엄마입니다. 오늘 첫 상담이었는데, 바로 '자폐예요. 모르셨어요?" 하시길래, 아이 엄마가 아니신 줄 알았습니다. 치료하는 일을 하시면서, 그렇게 첫 만남부터 부모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씀을 하실 수가 있나요? 앞으로 다른 분들과 상담하실 때는 부모 마음을 헤아리고 말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그럼, 어머님 말씀은 제가 진단한 진단명이 있는데, 그러면 어머님께 거짓말로 진단 결과를 얘기하라는 말씀인가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의 포인트도 못 잡고, 자녀가 있는 사람이라는 치료사가 저 정도의 답장밖에 못 한다니 기가 막힌 일이었다. 내가 본 살짝 미소 띤 그 표정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센터장의 이름을 걸고 하던 그 센터는 당연히 등록하지 않았고, 그다음에 상담을 걸어뒀던 센터에서 상담받은 뒤, 그곳에서 언어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따뜻하고 좋으신 분이었다. 이사로 센터와 거리가 멀어졌을 때도, 남편이 차로 왕복 두 시간을 할애하며 평일에 한 번씩 센터 일정을 소화해 줬다. 올해 초까지도 다녔던 그 센터를 아이는 4년을 넘게 다녔다. 계속 그곳에서 치료를 진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오고 가는 길이 늘 막혀서 온 가족이 주말마다 다니다가 체력적으로 지치는 바람에 아쉽게도 종결하게 되었다.


내가 종결시킨 다른 치료들


내가 먼저 작별을 고한 치료는 총 세 번이고, 한 가지는 앞에 적었으니 다른 두 번의 치료에 대해 간단히 적어본다.

아이의 언어 치료사 선생님의 발음이 부정확했던 경우가 있다.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했던 초반에도 선생님의 발음을 살짝 걱정했으나 내가 예민한가 싶어서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상담 때마다 역시나 치료사 선생님의 발음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치료를 종결하기로 했다. 나도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든데, 언어가 느린 아이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올해 유치원 여름 방학 전후로 미술치료를 두 달간 진행했다가 종결했다. 치료실이 너무 열악했다. 아무래도 놀이 치료와 경계가 모호한 미술 치료였기에 아이는 언어나 인지치료보다는 편안해서 좋아하는 듯했다. 하지만 좁고 추운 치료실에서 세탁이 시급한 인형들을 보는 것도 불편했고, 아이가 낡고 더러워 보이는 좁은 매트에 앉아서 굳이 집에서도 자주 하는 듀플로 블록을 하는 모습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치료를 중단할지 망설이던 내게 중단에 대한 확신을 준 것은 어느 날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아이가 당연히 할 줄 알던 것을, 선생님이 "00 이가 전에는 ~하는 것을 못 했는데, 저랑 수업을 진행하면서는 ~ 을 하게 되었어요." 하고 아이 능력과 기능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그다음 회기에 나는 치료 종결을 말씀드렸다.




센터에 관한 이야기는 2회에 걸쳐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나와 아이의 일상과 밀접한 이야기이고, 이 소재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내용 길이의 문제로 여기서 나눠서 3회까지 써야 할 것 같다. 이어질 <아동 발달 센터에 관한 이야기 -3>에서는 그래서 결론적으로 어떤 방식의 치료가 좋은 치료라 생각하는지, 어떤 치료사 선생님의 방식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적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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