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발달 센터에 관한 이야기 - 3

치료는 치료사가, 엄마는 사랑을

by Eeun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는 치료사 선생님

센터를 알아보던 초기에는 모두 집 근처로 알아봤었다. 하지만, 거주 지역의 변경으로, 센터와 집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 선생님에 대한 아쉬움으로 아이가 이사하기 전 지역에서 받던 치료를 종결시키지 못했다. 지난 화에서 적었던 최장기간(4년 2개월) 다녔던 센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센터를 처음 알아보았을 때, 센터와 집의 거리는 대중교통으로 20분이었다. 사실 그 가까운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살던 곳 근처에 센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센터는 강남 쪽이었고, 나는 아이와 친정인 경기도에 살았고, 남편의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캐나다에서 혼자 외로이 연구하는 중이었다)

남편이 한국에 돌아오고 우리는 신혼집을 서울 강북에 구했다. 센터와 거리가 멀어졌지만, 나는 다른 곳을 찾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사하고 나서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남편이 왕복 2시간 30분을 운전하며 1주일에 한 번 아이의 센터를 책임졌다. 아이는 평일 중 하루는 센터를 가느라고 어린이집을 반나절만 다녔던 적도 있다. 그러다 토요일 치료가 가능해지면서는 토요일에 갔다. 멀리까지 가서 1시간만 하고 오는 것은 아쉬웠기에 아이는 그 센터에 가는 날은 2시간을 연달아 언어치료를 받았다.

내가 그 치료사 선생님과의 언어치료를 거리와 시간의 부담에도 종결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선생님께서 아이를 대하는 모습에서 늘 진심이 느껴졌고, 선생님이 아이에 대한 애정을 갖고 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센터에서는 대기실에 있으면서도, 치료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늘 이 치료사 선생님은 좋지 않은 목 상태에도 아이를 위해서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하게 정말 수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해 주셨고, 밖에서 듣기에도 그 시간만큼은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시고자 하는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기실에 부모님이 바글바글한 유명한 센터는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실력 또한 여러 부모님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몇 달이나 1, 2년이 아닌 장기간 선생님과 함께하니, 분명 실력 있는 선생님이실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만 정이 많으신 것은 아니었다. 뒤에 기다리는 다른 아이가 없을 때는 상담 시간이 10분을 훌쩍 넘어, 수십 분을 하기도 했다. 나는 여러 가지로 미숙한 엄마였기에, 아이에 관한 여러 걱정거리를 털어놓고 선생님의 현명한 답을 들으며, 마음의 위안을 받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하지만, 거리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정이 많으신 선생님이셨고, 아이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선생님을 좋아했다. 하지만, 어쩌면 아이보다 내가 그 선생님을 더 필요로 했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꼈다. 아이가 크면서는 조금 더 훈육이 들어가야 할 부분이 있어, 선생님께서 전보다는 엄격한 태도로 치료를 진행하시면서는 아이가 가기 싫다는 표현을 했지만, 나는 아이의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 혼나기도 하고, 꾸중도 들으니 그런다고만 생각했다. 아이가 그 센터를 오가는 일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것이라는 사실은 애써 무시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중요한 부분이었다. 아이를 차에 태워 남편과 센터로 보낼 때는 그 일정이 아이와 남편에게 어느 정도 힘든 일인지를 알지 못했다. 남편은 내가 그 치료사 선생님을 매우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센터와의 거리가 멀어졌는데도, 계속 치료를 진행하고 싶어 하는 내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이 라이딩을 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에 차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에 돌아와서도 늘 이직 준비로 바쁘고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던 남편으로서는 매우 많은 시간과 일정을 아이와 나를 위해 할애해 준 것이었는데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그동안 외국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거들지 못했으니, 한국에 와서 이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아이에게 들이는 것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남편과 아이가 강북에 살면서 2년이 넘게 해 온 왕복 2시간 30분의 이동시간과 2시간의 치료를, 경기도로 이사 온 직후부터 나와 둘째가 함께하면서부터는 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동 시간이 2시간으로 줄었는데도, 일단 센터 일정이 끝나면 하루가 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집에 오는 길에 이미 우리는 모두 지쳐서 다른 일정을 잡을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직 어린 둘째는, 차에서 내내 징징거렸다. 토요일이 가족이 함께하는 주말이 아닌, ’센터를 가기 위한’ 날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이제는 그만 다니자고 말했지만, 나는 결단을 내리는 데에 최소 3개월은 망설였던 것 같다. 아이가 아니라, 엄마인 내가 선생님과 헤어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언어치료를 많은 선생님들과 경험해 보았지만, 나와 아이가 만난 중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수업을 종결하고 다른 언어 선생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부담스럽고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가족이 총출동하여 그 센터를 가는 일정을 작년에 이사 온 뒤로도 7개월 동안 지속했다. 올해 4월부터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5월에 스승의 날이 있어서 놓치고, 그렇게 6월까지도 머뭇거리다가 6월 말에 선생님께 거리가 너무 멀어 힘들어 종결해야겠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센터 선생님과 헤어지면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올라왔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지 복합적으로 울컥하는 것이 차오르는 느낌이라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치료실을 나왔다. 아마 아이와 센터를 다니기 시작한 거의 시작부터의 모든 기억이 이 치료실과 함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기존에 인지치료를 받던 곳에서 언어 치료도 함께 받고 있다. 이전 치료사 선생님과는 치료 스타일도 다르시고 선생님의 성향도 다르시지만, 아이에게 지금 언어치료 선생님도 많은 도움을 주시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과 동일하게 우리 가족의 토요일은 센터를 가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센터 일정이 끝나도 토요일 오후는 온전히 우리 가족의 시간이고, 가족 중 그 누구도 지쳐있지 않다. 집과 센터의 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40분간 진행해 주시는 치료는 그 선생님이 어떤 치료법을 고수하시든 간에 아이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그 정도의 차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 그렇기에 굳이 많은 시간을 들이며, 힘들게 ‘실력 좋다’는 선생님을 멀리까지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시간과 체력과 여유가 될지도 모르지만, 아이도 그럴지는 모르는 일이다. 엄마의 욕심인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치료를 욕심내다

대부분의, 아니 대부분의 느린 아이의 부모는 아동 발달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아이의 발달이 늦거나 어떤 장애가 드러나게 되면, 가족 중 그 누구보다 ’엄마‘는 그 분야의 반은 전문가가 된다. 실제로 그중에 어떤 어머니들은 아이의 발달 문제에만 국한하여 장애나 치료를 알아가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배움을 지속하고 넓혀서 치료사 자격을 얻어 실제로 현업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고 내 주변에도 그렇게 하고자 공부하고 있는 어머니도 있다. 나도 아이가 치료받기 시작한 초기에 잠깐 했던 생각이었다. ’내가 배우면, 아이 치료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밖에서 치료 내용을 들어보면, 전문적으로 자격증을 따거나 배우지 않더라도 치료사 선생님과 비슷하게 얼추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를 무시하는 언행일 수도 있지만, 50분에 5, 6 만 원이 넘는 고액 과외 느낌의 치료비는 부모들을 어쩔 수 없이 몇 번은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이가 치료실에 들어가면, 안에서 어떤 식으로 치료가 진행되는지 선생님이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끌어내시는지 귀 기울여 들으려고 했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로서의 역할부터 제대로 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는데, 사실 나는 두 남자아이의 엄마 역할만 제대로 하기에도 벅차다. 현명하고, 똑 부러지며, 지혜롭고, 사랑이 많은 따뜻한 어머니들은 어머니의 역할을 분명 훌륭하게 하실 것이고, 아이의 발달 관련 치료에도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아이를 정상 범주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치료실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실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두 역할을 다 수행할 수 있는 모범적이고 희생적인 엄마는 아니었다. 나는 느린 첫째 아이 말고도 챙겨야 할 정상 발달 둘째가 있으며, 그렇기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중 대부분을 첫째에게만 쏟을 수는 없는 한계가 있다. 거기에다가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저조한데, 내게 엄마뿐 아니라 치료사 역할까지 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게 너무 가혹한 일이고, 내 체력 또한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가정에서도 아이 치료에 힘써주지 않는(혹은 못 하는) 내가 엄마로서 너무 부적합하고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 내가 열심히 해준다면, 아이의 발달도 많이 올라올 텐데, 엄마의 부족 때문에 더 더딘 것 같아서 미안했다. 내가 소속되어 있던 우리 아이 또래 무발화 아이들의 엄마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한 아이의 엄마는 정말 ‘엄마표 치료‘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그 엄마는 어느 날 말없이 채팅방을 나갔다. 따로 물어봤더니, 아이가 이제 모든 치료를 종결했다고 했다.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워서 티 안 나게 방을 나오려고 했다고 했다. 아이는 사회성은 여전히 조금은 부족하지만, 대부분의 기능이 정상 범주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그 어머니께서 아이 치료에 노력을 많이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축하해 드렸지만, 내심 내 마음 한편에는 나는 그 어머니처럼 물심양면으로 아이를 위해 노력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 엄청난 죄책감과 아쉬움으로 자리 잡았다. 센터는 열심히 보냈지만, 집에서 엄마표 치료까지는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 시도는 여러 번 해보았다. 유명하다는 각종 단어며 문장 카드도 사들였다. 하지만 장소가 집이고, 엄마가 이끌어주려고 하는 학습에서, 아이는 치료실에서 발휘한 만큼의 집중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문장을 만들어보자며 단어 카드를 꺼내놓으면, 아이는 그 카드들을 내 손에서 빼내어 바닥에 휘젓거나 던져버렸고, 여러 상자 속의 단어 카드를 구별 없이 마구 섞어놓아, 결국 내가 나중에 시간을 들여 다시 정리해야 하곤 했다. 나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하여 아이를 앉혀놓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내 바람만큼(바람이 큰 것도 아닌데도) 따라와 주지 않는 아이에게 나는 화가 났고, 정상 발달 잣대로 아이를 자꾸 비교해 보며 속상한 마음에 아이에게 큰 소리 내며 다그쳤다. 엄마표 치료를 한다며, 이것저것 사들여놓고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는 나는 엄마표 치료를 멋지게 수행하는 엄마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무능력한 엄마였다. (교직 이수도 했고, 교사 자격증도 있는데도, 그런 것은 실제적으로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치료는 치료사가, 엄마는 사랑을

내가 선생님이나 치료사의 역할을 수행할 그릇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바꿨다. 치료는 그 분야 전문가인 치료사 선생님들에게 맡겼다. 나는 이제 엄마의 역할만 제대로 하려고 애쓴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더 시켜보려고 아이를 다그치는 대신, 그냥 아이가 해달라는 것을 해주면서 아이와 상호작용하고, 아이의 마음을 한 번 더 읽어주려고 노력하고,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해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시켜보려고 발을 동동거리는 일이 없어지자, 마음이 더 편안해져서 아이에게 화도 내지 않게 되었다. 7살이면 한참 다른 또래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배우고, 앞서나가고 있을 이 시기에, 나는 아이와 놀면서 시간을 보낸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아이와 말 그대로 그냥 논다. 겨우겨우 센터에서 했던 것을 스치듯 복습하고(이것도 못 하는 날이 훨씬 많다), 구몬 학습지를 겨우겨우 시킨다. 매일 받아쓰기를 연습해 보려고 했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아이는 자기 의지로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고, 미술을 배우러 다닌다. 노는 것이 일상인 아이의 표정은 늘 밝다. 엄마인 나도 센터와 선생님께 아이 치료를 맡긴다고 생각하니 마음만큼은 편하다.

내 친한 지인 중 한 명이 내게 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치료가 아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자신이 보기에는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센터를 다니는 것은 시간 낭비이며, 어차피 발달 지연이든 뭐든 그런 특정 증상들이 ‘나아질’ 아이들은 굳이 그런 치료를 받으러 다니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크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냐고 했다. 그 말은 기본적으로 아이 발달과 이에 관련한 치료들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일정 부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지적장애였다가 나중에 정상 범주로 올라왔다거나, 자폐였는데 자폐가 아니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부모의 노력 여부 때문이 아니라 어차피 나아질 아이였을 수 있다. 다만 그 시기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늦어 일정 시기 동안 비정상적으로 보였다거나,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자극이나 도움을 받지 못하여 그 부분에서의 추가적인 도움이 뜀틀의 발판처럼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치료에 대한 엄마의 노력 여부와 관련 없이, 어차피 나아질 아이들은 나아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그건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이번 생에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인내하고 감안해야 할 십자가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무교에 가까운 모태 천주교 신자인데, 윤회와 업보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번 생애에 장기적으로 계속해야 할 일이라면, 엄마가 아이에게 질적, 양적으로 충분히 치료를 지원해 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덜고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결국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결국 내가 편하게 지내자고 내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엄마도 살아야 한다며 치료 대기 때조차도 혼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날라리(?) 엄마가 된 결과, 오히려 아이는 더 좋아졌다. 내가 집에서 뭔가를 아이에게 더 해줘 보겠다고 애쓸 때는 아이와 오히려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더 늘었고, 아이의 자기표현도 많이 늘었다. 엄마가 전처럼 화내거나 한숨을 쉬지 않으니, 아이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발음은 여전히 부정확하고 특유의 억양도 있지만, 목소리도 우렁차졌다. 학습지를 하다가도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기는 하지만, “에이~ 몇 장만 더 하자~”하고 친구처럼 말하는 엄마의 말에, “힘든데~ 너무 많은데~ 언제까지 하는 거야! 왜 자꾸 하는 거야!”하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꿋꿋이 다 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도망간다. 엄마가 아이의 놀이를 끊고 학습이나 복습 등 하기 싫은 것들을 하자고 조르지 않으니, 아이는 구체적으로 시간이나 활동이 정해져 있지는 않더라도 나름의 놀이 계획을 세워서 다양하게 놀기 시작했고, 그 놀이 과정에 전보다 엄마를 많이 끌어들이게 되었다. 엄마가 드디어 ‘같이 잘 놀아주는‘ 사람이 된 것이다. 엄마 아빠를 괴롭히기 위해서 시작되었나 싶었던 ’아파트 그리기 놀이’ (예측하시겠지만, 그리는 주체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와 아빠다) 또한 기적처럼 멈춰졌다. 아파트 그리기 놀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아이의 무수히 많았던 기행(?)을 다루면서 한 항목으로 자세히 적어보겠다. (너무나 다이내믹한 시기이자 아이의 기행을 보며 내 우울함이 바닥을 치던 시기여서, 그 내용을 적자면 이번 센터에 관한 이야기처럼 3회 이상, 아니 그 이상을 할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 엄마를 미치고 팔짝 뛰고 돌아버리게 할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결국은 다 지나가더라. 어찌 됐든 버틴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한때 빙글빙글 돌기와 눈 이상하게 뜨기 등으로 자폐 의심까지 받았던 아이가, 여전히 부족하고 미숙하며 철저히 자기 위주이기는 하지만, 나름의 상호작용을 시도한다. 아이가 자주 웃는다. 잘 시간이 되어 누우면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나는 엄마가 사랑해요. 높이높이 하늘보다 더 높이“ 원래 가사는”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높고 높은 하늘 보다 더 높이“일 테지만, 그냥 웃으면서 말한다.”그렇지, 엄마는 우리 00 이를 사랑하지. 우리 00 이도 엄마를 사랑하나? “ 아이는 노래로 대답한다. “나는 엄마를 안! 사랑해요” ‘안’에다가 굉장한 강세를 두어 발음한다.

“그래? 00 이는 엄마를 안 사랑해? 엄마는 00 이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데~ 속상해서 어쩌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이는 웃으면서 다시 노래 부른다.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 몇 년 전에 눈물 나도록 무발화 아이에게 듣고 싶던 ‘사랑해‘라는 말을 아이가 7살이 된 요즘에 와서는 노래로 듣고 있다. 그저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공부 좀 못하면 어때, 학습 좀 못 따라가면 어때. 그냥 늘 건강하고 행복한 밝은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




이번 회의 추천곡은 동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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