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탓이라고 쉽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시댁 가족분들께서 우리 아이가 늦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하신 것은 15개월 전후였던 것 같다. 우리 아이는 늘 차분하고 항상 무엇이든 다 아는 듯한 표정을 한 애어른 같은 느낌이었다. 걷는 것이 조금 늦었어도, 한 달 정도의 발달 차이는 큰 차이가 아니라 생각했다. 자꾸 아이의 발달에 넌지시 걱정되는 기색을 내비치시는 시댁 어른들께 조금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아기 때도 혼자 앉아서 얌전히 책을 쳐다보곤 했고(그때는 단순히 시각 추구를 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다), 매우 밝았으며, 특히 발달 문제가 있는 아기들이 자주 보인다던 장난감 줄 세우기나 자동차 바퀴 굴리며 돌아가는 바퀴 쳐다보기 같은 것도 우리 아이는 하지 않았었다.
계속해서 아이의 발달 지연을 부정하던 내가, 그 부정하고 싶던 사실을 인정하며 본격적으로 센터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2022년 3월이었고, 대학병원을 처음 찾은 것은 2022년 4월, 아이는 3살 2개월 시점이었다. 당시 의무기록 사본을 보면, 엄마, 아빠, 칙칙폭폭, 우유, 밥 정도의 말을 할 수 있다고 쓰여있다. 말이 안 되면 자기도 답답한지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어린이집은 같은 해 3월부터 다니고 있었다. 아이가 말하게 되면 그때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집에서 가정 보육을 하며 버텼는데, 말 못하는 아이가 걱정되는 마음이 커서였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첫째와 둘째 아이 모두에게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첫 진료 때 전반적으로 아이의 발달 평가와 인지, 언어, 심리 평가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고, 같은 해 11월 아이가 만 4세 9개월(58개월)이 되던 해, 전반적으로 검사받았다. 당시 아이의 지연 정도는 수용 언어능력 27개월 지연, 표현 언어능력 33개월 지연이었다. 당시의 소견서를 보면, ‘손상‘과 ’중증도지체’라는 단어가 난무한다. 베일리 검사를 받았다. 인지는 만 3세, 듣는 것은 만 2세 수준이라고 했다. 카스는 26점. 자폐 성향이 있는 것으로는 파악되었으나, 인지가 약해서 평가 결과가 정확할 수 없다고 했고, 지능검사도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감각통합이 좋아진다면 지능도 ‘조금씩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발달을 안 하진 않을 것이라고 쓰여있었으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은 나이가 들면서, 차이가 있어서, 정상인 수준까지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라는 비관적인 문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대학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듣고 돌아온 날 이후로 한동안은 매일 같이 울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내 감정의 배출구 또한 없어서, 그저 울면서, 절대적인 어떤 존재를 원망할 뿐이었다.
"골든 타임을 놓쳤어."
남편이 아이 때문에 나와 싸울 때, 종종 했던 말이다. 앞에 생략된 말이 있는데, 대략적인 전체 문장은. “당신이 자꾸 아니라고 미루는 바람에, 골든 타임을 놓쳤어!”다. 시조카 아이들도 센터를 다녔던지라, 시댁 가족분들께서 아이가 좀 늦된 것 같으니 여러 번 센터에 가보라거나 병원에 가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때마다 “아니에요. 그냥 늦은 거예요. 좀 더 기다려볼게요.”하고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싫었던 부분도 있고, 믿지 않았던 부분도 있지만, 검사받고 나면, 의사의 판단으로 발달 지연이라는 문제가 마치 낙인이나 꼬리표처럼 아이에게 붙어, 나와 가족들의 의식에 깊게 박힐 것 같았다. 아이가 각종 언어, 놀이, 감각통합 등의 ‘치료’를 받는 환자 아닌 환자가 된다는 것도 싫었고, 발달이 느린 아이라는 수식어와 시선이 우리 아이가 실제로는 정상 발달일 수 있는데도 오히려 느린 아이로 만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시댁 가족의 우려와 남편과 형님의 추진력으로 우리 아이는 늦게나마 센터를 다니게 됐고, 대학병원에서 검사도 받았다.
남편의 말처럼, 내가 아이의 발달 지연을 일찍 인정했다면, 치료를 빨리 시작하고 도움을 더 받았다면, 아이가 지금보다 더 나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고 해서 아이가 지금 정상 발달 범주에 들어갔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남편의 말처럼 나의 고집과 잘못된 믿음 때문에 우리 아이 치료의 황금기를 놓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늦게 센터를 방문한 것과 대학병원 첫 진료를 늦게 받은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우리 아이는 말이 늦게 터지는 아이일 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그 시기에, 나는 아이를 편견 없는 눈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고,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고,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은 내게 너무너무 소중하다. 그 시기의 기억은 내게 매우 따뜻하고 행복한 추억이며 힘들 때마다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어준다. 내가 만약 대학 병원을 더 일찍 방문했다면, 지금 이렇게 추억할 수 있는 기간은 훨씬 더 짧았으리라.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이전에는 지금보다 더 미성숙한 엄마였기 때문에 대학병원 첫 진료 후에 오히려 아이를 이전만큼 사랑해 주고 집중해주지 못했다. 아이가 정상 발달인지 늦된 아이인지를 판단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었고, 걱정, 실망, 분노, 그리고 억울함이 내 주된 감정이 되어 나의 일상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때의 사진들을 보면, 행복해 보이는 아이와 내 모습에 지금까지도 마음이 슬퍼지곤 한다. 아이를 그렇게나 사랑하고 아끼고 아이 덕분에 행복했었는데, 병원에 가기 전과 후의 내가 너무나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이는 전과 같았는데, 진단받은 후의 내 마음은 지옥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내 아이는 늘 같았는데, 그까짓 진단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나는 이전에 아이에게 쏟아부었던 것 만큼 아이를 넘치게 사랑해 주지 않았던 걸까. 둘째의 나이가 그 당시 첫째의 나이와 비슷해지니, 더 후회되고, 첫째 아이에게 미안하다. 늦되지 않더라도, 아직도 이렇게 한참 어리고 떼쓰고 애정을 갈구하는 제멋대로인 생명체의 당연한 모습들을, 대학병원 진단 후의 나는 모두 아이가 늦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 행동'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한두 살 때의 첫 아이를 보았던 그때의 내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매일같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지난달, 생일을 맞아 만으로도 4살이 된 둘째를 보아도, 아기 같은 어린 자식을 보는 것과 이미 제법 어린이티가 나는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아이를 사랑함은 변함이 없지만) 조금은 다르다. 4살 아이를 갓난아이 보듯 사랑을 가득 담아 바라보려 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이 코앞인 7살 아이를 그렇게 보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놓쳤던 기간 만큼, 아이를 더 사랑해 주고 싶은데 말처럼 쉽지 않다. 이렇게 부족한 엄마는 아이를 통해서 후회하고, 반성하고, 나를 되돌아보며 부족했던 부분들을 메꿔나가고 있다.
내가 우리 아이 엄마가 아니었다면,
어느 아이 엄마나 동네에 한두 명씩은 '아, 이 엄마 참 똑 부러지게 육아를 잘한다.' 싶은,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고 어떤 부분에서는 닮고 싶은 엄마가 있을 것이로 생각한다. 나도 그런 엄마가 한 명 있었는데, 똑 부러지는 엄마 때문인지, 아이의 성향도 한몫했는지는 몰라도 아이가 똘똘하게 잘 성장하는 중이다. 그 아이는 우리 둘째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고, 둘째와 동갑이고, 아이 엄마는 아직은 한 아이만 키우고 있다. 지금은 내가 그 동네를 떠났기 때문에, 그 아이의 성장 과정을 전처럼 가까이에서 본다거나 잘 알 수는 없지만, 가끔 카카오톡에 올라오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여전히 똘똘하게 잘 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엄마와는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같은 어린이집에 아이가 다니고 있는 상황이라 아이 친구 엄마로 동네에서 가깝게 지냈다.
첫째 아이에 관한 이야기는 동네 엄마들에게 내가 거리낌 없이 초반부터 다 했기에, 딱히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둘째가 어린이집이 끝날 때, 첫째도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 동생들과 같이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가곤 했다.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도 둘째 친구들 엄마들에게 많이 노출되었다. 아파트 내의 엄마들은 우리 아이의 병명에 대해 궁금해했다. 느리다 느리다 하는데, 얼마나 느리고 어떻게 느리고 왜 느린 것인지 궁금해했다. 특히 "애가 느린 이유가 정확히 뭐라고 해?" 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이 가슴 아픈 질문이 내가 굳이 그들의 단순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정확하게' 대답해 줘야 할 가치가 있는 질문인가 싶었다. 그리고 나 또한 정확한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정확한 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한 채 대충이라도 대답해 주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니까, 뭐 남 일이니까 궁금할 수도 있지 뭐.… 하는 마음이었다. 사실 그런 질문은 느린 아이 엄마가 먼저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먼저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보다 짧은 시간에, 단 한 순간에 내 평정심을 깨뜨리는 순간이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아이를 잘 키우는 똑 부러지는 엄마와 둘이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는데, 어쩌다 화제로 우리 첫 아이가 올라오는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그 아이 엄마를 똑순엄마라고 편의상 지칭하겠다.) 우리 아이가 느리다고 하는데, 똑순엄마 눈에는 똑똑한 아이로 보인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시작됐다. 우리 아이가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한 근거가 되는 이야기들이 줄지어 똑순엄마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희망적인 이야기라서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수긍도 하고 공감도 하면서. 분위기는 좋았다. 우리 아이에 대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이야기 끝에, 똑순엄마가 말했다.
"내가 00이 엄마였으면, 00이가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 같아. 발달이 안 늦었을 수도 있어."
정확히 토씨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저런 말을 한 뒤에 내게 말한 것은, "몇 번만 우리 집에 맡겨봐. 맡기고 00 엄마는 쉬어. 내가 우리 애 봐주면서 같이 봐줄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웃고 넘겼다. "아, 정말요 언니? 언니가 그래 주면 너무 고맙죠. 저는 언니처럼 애 못 보겠더라고요. 언니는 육아 진짜 잘하잖아. 저는 너무 힘들어요. 그럼, 언제 보낼까요?" 웃고 넘겼지만, 그날의 기억은 내게 큰 상처가 됐다.
'우리 아이의 엄마가 내가 아니라면'이라는 가정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더욱이 '다른 사람이 엄마였다면, 아이가 발달이 늦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 또한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컸고 어이가 없었지만, 똑순엄마의 무례한 발언에 뒤늦게 화가 났다. 나중에 친정 엄마에게 이르듯이 말했다. 똑순엄마가 자기가 우리 00이 엄마였으면, 우리 00이가 지금 같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며, 이게 얼마나 무례한 말이냐고. 그래도 엄마는 내 엄마니까 당연히 내 편을 들어주실 줄 알았다. 그 엄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화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내 말을 들으시더니, 바로 말씀하셨다. "틀린 말은 아니네, 뭐. 너보다 그 엄마가 애 훨씬 잘 키워." 나는 똑순이 엄마의 눈에나, 우리 엄마의 눈에나 애 잘 못 키우는 모지리 엄마일 뿐이었다.
혹시라도 ‘치료의 황금기’를 놓쳤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많이 느끼거나 많은 후회를 하고 있는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이 있다면, 그런 무거운 마음은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치료받았을 때 효과가 더 좋을 시기라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시기가 지났다고 해서 아이가 나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놓쳤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따라잡으면 된다. 나는 아이의 진단을 듣기 전이 훨씬 행복했고, 그 기억으로 산다. 진단을 일찍 받았다면, 나는 아이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지금보다 훨씬 적게 갖고 있을 것이다. 진단받기 전과 후의 내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면, 그 후에도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줄 수 있었다면, 대학병원에서 일찍 검사받고, 현실을 인정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어떻게든 아이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면 더 바람직한 경우였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느린 아이의 부모는 나와 비슷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었거나 겪는 중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의 우리 감정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스트레스 아래 놓여있고, 엄마와 아빠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이미 지났다면 후회는 멈추었으면 좋겠다. 그건 앞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니까. 그리고 혹시 아직 소용돌이 안에 머무르는 중이라면, 가능하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의 소중한 아이는 그대로다.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변한 것이다. 치료를 늦게 시작했어도 괜찮다. 한순간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다만, 아이가 너무 외로워지기 전에, 처음 엄마의 마음으로 돌아와서, 전처럼 아니 전보다 더 많이 사랑해 주면 된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가 부모로서 부족했어도, 우리가 실제로 무엇인가를 놓쳤어도, 사실 아이를 키우는 그 모든 순간 순간 우리는 부모라는 이름 아래에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난 것을 후회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위해 우리가 우리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우리는 수차례의 시련을 겪고 더 나은 부모가 되는 중이니.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아이에게는 내가 최고다. 어떤 뛰어난 엄마를, 똑똑한 엄마를 데리고 온다고 해도, 내 아이에게는 내가 최고의 엄마이다. 내 아이도 나에게는 다른 어떤 아이와 대체할 수 없는 단연코 최고의 아이다. 우리는 잘하고 있고, 아이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더 잘할 거니까.
이번 회의 추천곡은 동요 <모두 다 꽃이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