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내게 버거운 (독박) 육아

독박 육아 중인 엄마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

by Eeun

오늘은 글을 올리는 것이 많이 늦어졌다. 아침부터 험난한 등원 치레를 하다 보니, 글을 쓰기 위한 의욕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직을 한 지 2년 차인 남편이 잦은 약속과 회사 행사로 인해 너무 바빠진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남편의 이직 후에 잠깐이나마 독박 육아에서 한숨 돌리는 듯했으나, 다시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 되어버렸다. 결혼한 지 10년 차, 남편은 지금의 직장을 얻기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바쁘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외로움에 치였고, 육아를 시작하면서는 육아에 치인다. 오랜 기간 독박 육아를 해왔음에도(부분적으로는 시터이모님과 함께 하지만, 남편이 7시~8시에만 퇴근한다고 하더라도, 시터이모님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남편이 육아를 조금이라도 더 함께했으면 하는 나의 기대는 쉽사리 내려 놓이지 못하고, 실망과 서운함으로 돌아와 내 감정을 흔든다.




오늘은 왜인지 아이들이 아침부터 같이 놀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침부터 일정이 있다며 일찍 출근했다. 등원 준비로 몸과 마음이 바쁜 것은 엄마뿐이었다. 30분을 함께 논다고 하면, 그중 10분은 둘이 싸우고 우는 시간인데, 오늘도 역시나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싸움이 빠지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이 된 장난감은 넘버블럭스라는 아이들이 보는 수 놀이 애니메이션 교구인데, 아이들은 주된 구성품인 작고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조각들을 길게 연결하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원래 첫째의 장난감이던 이것을, 둘째가 긴 막대기를 만들면서 첫째가 더 이상 만들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첫째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색상의 순서대로 블록을 나열하거나 조립하는 것을 좋아한다. (무지개를 그리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마침 첫째의 무지개색 막대에 초록색을 대신하는 연두색 하나가 더 필요했는데, 동생이 다 쓴 뒤였다. “00가 다 썼어. 미워, 00는 나쁜 아이야, 내가 만들 수가 없잖아, 00꺼가 더 길어, 00는 나빠.“ 첫째의 우는 소리가 배경음악을 대체하고, 나는 둘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플라스틱 큐브로 만든 그 긴 막대기에서 고작 연두색 큐브 한 개만 형에게 양보해 달라고 하는데, 둘째는 단 한 조각조차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첫째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대성통곡하기 시작했고, 둘째는 “내 마음대로 만들 거야.”하며 형을 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형의 울음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첫째가 방으로 들어가서 더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둘째를 설득하다가 “00아, 한 개만 양보하자. 형이 연두색 하나만 있으면 된대.”하고 둘째의 눈치를 보면서 연두색 하나를 슬며시 뺐고, 둘째의 울음도 시작됐다. 연두색 큐브를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지만, 둘째의 울음도 그치지 않았다. 달래고 달랬지만 그치지 않는 두 아이의 울음소리를 5분이 넘게 듣고 있자니, 요즈음 석 달 동안 남편의 야근과 잦은 술자리(달 7~10회)로 내 안에 꾹꾹 눌러왔던 화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남편과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이틀째 대화를 하고 있지 않다. 평소였으면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오늘, 나는 왜인지 치밀어오르는 화 때문에 평정심을 잠깐 잃었다. ”제발, 다들(무의식적으로 남편에 대한 화가 포함되어 있어서, 남편도 포함되어 있다) 적당히 좀 해!”라고 소리를 지르자, 2~3년 전의 내가 잠깐 고개를 들었다. 씩씩거리던 내가 구석 바닥에 있던 작은 플라스틱 빈 통을 거실 벽 쪽으로 발로 찼다. (아이들 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엄지발가락 위쪽 살점이 떨어지면서 피가 났다. 아팠다. 간단히 연고를 바르고 아이에게 갔다. “엄마 발에 피 났어.”라고 했더니, 첫째가 눈이 동그래져서 내 발을 쳐다봤다. “엄마 화나서 피 났어요?”라고 물어본 첫째는, 이어서 말했다. “엄마 왜 피 났어요?”. 내가 대답했다. “엄마가 화가 너무 나서 통을 발로 차서 피 났어.” 아이가 말했다. “잘 던져야지~ 발에 안 맞게. 맞으면 아프잖아.”


아이 말을 듣고는 몇 분 전의 내 모습이 부끄럽고, 아이가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물론 아이 앞에서 뭐든 던지거나 발로 차는 것은 내가 백번 잘못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내 화를 참지 못해서 혼자 잘못된 방식으로 화풀이하다가 다쳐서 피가 난 것인데, 아이는 내 아픔을 걱정해 준다. 아이의 순진무구한 표정과 말은 내 화를, 눈을 녹이듯 녹여줬다. 아이들과의 1분이 10분 같은 등원 치레를 힘겹게 끝내고, 열 시가 되어서야 나는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오후에는 마침 아이들 유치원에서 둘째의 방과 후 특성화 수업 참관이 있어서 다녀왔다. 참관 과목은 영어와 체육 중 선택이었었는데, 영어보다는 30분 동안 아이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체육을 선택했었다. 아침에 그렇게 울고 떼쓰고 욕심부리고 밉상 중의 밉상이었던 우리 둘째 아이의 얼굴은 체육 시간 내내 순수한 즐거움과 기쁨으로 빛이 났다. 신이 나서 몸을 흔들고, 친구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때로는 장난스러운 모습도 보였지만, 체육 지도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은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잠깐이지만, 아침에 별것 아닌 일로 화냈던 내 모습이 또 후회됐다. 저렇게 예쁜 아이를 왜 아침에는 지금처럼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봐 주지 못했을까.


최근에 남편에게 서운해지게 된 사건은 사실 별것 아니었다. 이틀 전 저녁 7시쯤에 남편에게 오늘 너무 피곤한데, 집에 언제 오는지 물어봤다. 남편은 잘 모르겠다고 했고, 그 특정 요일에 자주 약속을 잡는 회사 선배들의 연락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한 시간 뒤에 나는 다시 물어봤다. 약속 잡혔냐고, 오늘 내가 너무 피곤한데, 집에 오면 안 되겠냐고. 남편은 회사 선배들이 9시까지 일이 있어서, 그때 저녁 약속을 잡을지 말 지에 대해서 확실히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잡을 거였으면, 더 일찍 잡았겠지, 그냥 오늘은 아내가 너무 피곤해해서 먼저 집에 가겠다고 하면 안 되냐는 내 물음에 남편은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9시에 남편은 ‘오늘은 날이 아니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10시에 집에 돌아온 남편은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말했다. 낮에는 대체 뭐하고 피곤하다고 하냐고.


요즘 들어 가장 피곤하고 힘들었던 그날 내 두 번의 SOS는 남편에게 닿지 않았고, 나의 피로는 낮에 쉬었으면 해결되었을 것인데 내가 쉬지 않아서 생긴 것쯤으로 무시당했다. 하루만이라도 일이 아니라 내가 남편에게 가장 우선순위가 되고 싶었는데, 퇴근 시간 후임에도 남편의 우선순위는 그날도 일과 회사 사람이었고, 나는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나는 7년 차 독박 육아중인 엄마다. 부분적으로는 시터 이모님과 함께했고,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니, 육아를 혼자 다 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하는 육아라는 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나 혼자였다. 아이들은 참 예쁘고 위안이 되어주지만, 나는 늘 아이들을 등에 이고 지고 나 홀로 묵묵히 싸우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하는 전업주부로 있을 수 있는 것은 남편이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이고, 남편 또한 그렇게까지 일을 하고 싶진 않음에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상황이 있으리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아이 아빠의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것과 내 감정이 서운하고 화가 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육아의 정신적인 피로감을, 두 남자아이를 키우는 체력적인 고단함을, 그리고 느린 아이를 키우는 남들보다 조금 더 버겁고 이 특수한 상황을 남편이 이해하고 함께했으면 좋겠는데, 함께하지 못한다면 인정하고 알아주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따뜻하게 말 한마디 더 해준다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내게는 버겁다. ‘전업주부’이자‘엄마’라는 이름 아래, 오늘도 나는 내 역량을 넘는 무게를 이고 지고 살고 있다. 때로 등 위의 짐을 살짝 내려놓고 아름다운 풍경도 보고, 감탄도 하면서, 이전의 내 선택과 행동에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며 힘차고 새로운 마음으로 발을 내딛기도 하지만, 늘 외롭다. 내가 넘어져 울고 있는 순간에도, 풀숲을 잘 헤쳐나가면서 위험한 곳들을 무사히 지나가는 뿌듯한 순간에도, 나는 늘 혼자다. 나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강인한 엄마가 되어가지만, 어째서인지 마음 한쪽이 늘 허전하고 아리다.




이번 회의 추천곡은 Sondia, <어른>, 앨범 나의 아저씨 OST Part.2, 2018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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