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대신에,

미칠듯한 힘듦도 결국은 지나가요

by Eeun

결혼 이전의 나는 긍정적이었고 계획을 세우고 성취하는 것을 좋아했다. 연말이 되면 늘 내년을 위한 플래너나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해외 근무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 플래너는 1년 동안 집안일 점검표였고 직장 생활에서 도망치듯 결혼했던 나는 한동안 가정주부로 사는 삶에 만족했기에 열심히 내 일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육아하면서 구매했던 대부분의 다이어리는 육아일기로 남지는 못했다. 나는 많은 것을 남기지 않았다. 나는 매 순간 아이의 문제를 부정했고(지나고 나서야 알았지만, 그것은 아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엄마인 나의 문제였다), '우리 아이는 말만 좀 느린 거야.'라는 믿음으로 꽉 부여잡고 있던 나의 나약했던 정신은 아이가 평범해 보이지 않는 행동들을 시작하고 그 행동들에 집착하고 반복하는 모습들을 보이면서 매일 무너졌다. 아이는, 그리고 육아는 내 계획이나 바람대로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종이에 기록하는 대신에, 나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느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종종 올렸다. 지금은 들어가지 않는 그곳은, 그 당시에는 종이에 적어 들춰보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적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2022년 10월 15일. '아이가 조금씩 변하려는 것 같아요'] 나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 후회로 가득한 글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자주, 넌 왜 그러니, 왜 날 힘들게 하니,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니, 엄마한테 너무한 거 아니니, 정말 너 날 너무 힘들게 한다ㅡ라고 말하며, 매일 울었다. 아픈 말들을 듣고도 웃고만 있는 아이를 보며, 왜 못 알아듣냐며 또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정말로 내 말의 뜻을 몰랐을지는 모르겠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자기반성으로 시작한 내 글은, 어느 날 아이가 슬슬 단어를 한 자씩 따라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자, 희망에 차서 써 내려간, 어찌 보면 비겁한 글이었다. 아이가 단어를 따라 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나는 아이에게 칭찬을 더 해주고 다정하게 대했다. 그러자 아이는 종일 기분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보고 과거의 나는 반성했다. 내가 나의 힘듦을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아이를 우울하게 했다고. 지금 다시 봐도 참 부족한 엄마다. 그날따라 말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고, 앞으로는 사랑 가득 주는 엄마가 되겠다며, 내가 힘들고 서럽고 속상하다는 이유로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었던 나의 소중한 아이를 너무 힘들고 속상하게 한 것 같다고 적었다. 더 많은 사랑을 아이에게 주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나는,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23년 1월 12일, '우울증 센터 가면 마음이 좀 나아지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아이가 말만 느린 것이라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아이의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들을 보는 것은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것이었다. 미칠듯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결혼하기 전의 나는 아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아이를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것이 훨씬 힘들다고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이는 낳아서 사랑과 관심으로 키우기만 하면 잘 자라는 것이로 생각했다. 그래서 용감하게 두 아들의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엄마가 되기 전, 밖에서 떼를 쓰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내 아이는 저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하고 오만한 생각마저 했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된 이후로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아이들은 부모가 그렇게 키운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존재이고, 그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기 때문에, 첫째 아이의 행동 중 일부는 내게는 아이가 늦어서 나타나는 이상행동으로 인식되었다. 내가 적절하게 반응했다면 완화되었을지도 모르는 첫째의 자연스럽고 유아적인 행동들도 나의 부족한 인식과 태도로 더 강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첫째의 경우 말을 못 했기 때문에 과하게 행동으로 표현된 것이지, 발달 문제가 있어서 특별히 보이는 행동이 아니었던 것이라는 것을, 둘째를 키우면서야 알게 됐다. 하지만 단순히 떼를 쓰는 것을 넘어서서, 나를 정말 힘들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아이의 기행(?)들은 나열할 수 있을 만큼 많았다.


하지만 그런 기행들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태풍처럼 강하게 몰아치다가, 어느 순간 잠잠해지고, 그러다가 소멸했다.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어? 우리 아이가 요즘은 이 행동을 안 하네?‘ 하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을 몇 번 겪고 나니, 지금은 앞으로 아이가 어떤 과한 행동이나 이상 행동을 보여도, '한 때'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 큰 위안이 된다. 아이의 그런 행동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잦아든다. 아이는 늘 이전과 또 다른 행동으로 나를 힘들게 하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이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매 순간순간 뜻밖의 고비가 찾아와 우리를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모든 힘듦은 다 지나가고 죽을 만큼 힘들어도 버티다 보면, 삶은 더 나아지고 전보다 살아갈 만해진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왜인지 그 힘듦이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우울했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다음 회에는 저를 힘들게 했던 아이의 기행(?)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아마 두 회 정도 분량이 될 것 같습니다. 연재가 금요일인데 토요일 새벽이 되어서야 올립니다. 혹시라도 기다려주신 분이 계신다면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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