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기행에(?) 관하여_2

아직 진행 중인 것들에 대하여

by Eeun

* 맞춤법 검사는 아직 하지 못하여, 저녁에 육아퇴근 후에 천천히 다시 살펴보고 수정할 예정입니다.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맞춤법 검토는 하지 못하고 미리 올림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 아이들과 제가 토요일부터 지독하게 감기에 걸려서 수정도 이번 주 글도 손도 못 대고 있네요 ㅜㅜ**


앞서 적었던 아이의 행동들이, 내가 참기 힘들었던 것들이었다면(그래서 기행이라고 언급했다), 아이가 조금 더 성장하고 나서 6, 7세에 보여주는 행동들은 이전의 것들보다는 훨씬 생산적이고(생산적이라고 믿고 싶다), 봐줄 만하며(예쁜 눈으로 본다면, 본인 딴에는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것들이니, 기특하게 볼 수도 있겠다), 정도가 빈번하지 않고, 내가 아이의 지속되는 행동을 걱정할 시점이 되면 다른 행동으로 넘어가 주니 큰 걱정이나 스트레스 없이 지켜볼만하다. 모두 패턴이 있고, 시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과 어떤 면에서 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빙글빙글 돌거나 자꾸 위험하게 높이 올라가거나 현관문 밖을 박차고 나가지 않는 것만 해도(지금 이사 온 집에는 잠금장치를 추가로 달지 않았다. 이제는 갑자기 혼자 뛰쳐나가는 일은 없기 때문에) 육아의 난이도는 상당히 많이 낮아졌다.


01. 그래비트랙스, 구슬이 구르든 말든!

색종이 다음으로 아이가 좋아하게 된 놀잇감은 그래비트랙스(Gravitrax)이다. 보통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접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래비트랙스를 나는 조금 일찍 사줬다. 이 놀잇감은 간단히 얘기하면, 중력이나 원심력 등의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서 다양한 구조물과 트랙을 사용하여 쇠구슬을 도착점까지 구르게 설계하는 것인데, 색종이에 집착하는 아이의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사줬던 것 같기도 하고, 왜 이르다면 이를 것 같은 여섯 살 때부터 이 개미지옥 같은 장난감을(아이가 자꾸 추가로 기능이 있는 트랙 부품들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하나씩 사주다 보면 어느새 몇십만 원 단위로 비용 지출이 커진 것을 볼 수 있다) 사주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반에는 아이가 설명서대로 트랙을 만들어달라고 재촉해서, 아이 아빠와 나는 어느 정도 설명서를 외울 수준까지 도달했던 것 같다. 수십 분의 시간과 공을 들여 애써서 트랙을 만들어놓고 나면, 아이는 고작 몇 번 정도 구슬을 굴리다가, “이제 이거 부실 거예요. 다른 거 만들어요.” 하며 다른 트랙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5분 정도가 소요되는 비교적 쉬운 트랙은 아이가 설명서를 보고 만들었는데, 나중에 가서는 아이는 그래비트랙스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가지고 노는 방법을 터득했다. 지금이야 그래비트랙스 영상을 유튜브로 틀어달라고 하면, 종종 집안의 온갖 조형물을 다 사용해 가면서 거대하게 트랙을 만드는 해외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런 영상을 접하기 전에도 아이는 제 나름 입체적으로 만든다며 상자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트랙판을 올리기도 하고,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트랙을 거대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구슬이 굴러가는지의 여부는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았고, 보기에 얼마나 규칙성을 갖으며, 반복적인 무늬가 나오는지가 아이에게는 더 중요해 보였다. 구슬은 아이가 손가락으로 인위적으로 굴리면 그만이었다. 30만 원이 넘게 든 그래비트랙스를 문양 만들기로만 사용하는 것도 1년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거실 한복판에 설치된 트랙은 아이 몰래 부수면 안 되었기 때문에, 아이가 질려서 스스로 부시고 다른 모양을 만들 때까지 거실에 그대로 장식물처럼 자리했다. 아이의 장난감을 핑계 삼아, 청소는 대강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부서지거나 모양이 바뀌면 아이는 바로 알아채고 한참 울었고, 달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7살이 된 아이는 이전에 기하학적 무늬에 언제 집착했냐 싶을 정도로, 한 동안은 그래비트랙스를 찾지 않더니, 다시 그래비트랙스를 꺼내온 어느 날에도 이전에는 그렇게 자주 하던, 트랙으로 무늬 만들기를 하지 않았다. 아이의 호기심과 흥미와 집착이 이렇게 한순간에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다소 놀랍긴 했다. 오히려 아이는 설명서를 보고 설명서 대로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늘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힘들라는 법은 없는지, 아이가 설명서를 보고 만들기 시작하자, 나의 수고도 덜어졌다. 아이가 혼자 설명서를 보고 만들 때, 내가 옆에서 해줘야 하는 것은 딱히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혼자 놀게끔 하는 것이 마음에는 조금 걸렸으나, 그때는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설명서를 보고 만들지 않을 때에도, 아이는 이제 시각적인 어떤 패턴을 만드는 것보다는 구슬이 굴러가게끔 하는 그래비트랙스의 의도에 맞춰서 트랙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제 1주일에 한 번 정도만 그래비트랙스를 찾는다. 만들고 장식품처럼 전시해놓지 않아도, 정리할 수 있다. 희안한 패턴보다는, 구슬이 굴러가게끔 트랙을 설계한다. 지나고 나니, 많은 것들이 정상적인 궤도로 올라가고 있다.



02. 넘버블록스와 사랑에 빠지다

더 어릴 때는 딱히 영상 속 캐릭터를 좋아하거나 집착을 보이지 않던 아이가 7살이 되자, 집착을 보이게 된 대상이 있는데, 바로 넘버블록스였다. 1부터 100까지의 숫자들이 나오는데, 영상을 보다 보면,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하는 개념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참 잘 만든 영상이라고 생각된다. 주된 캐릭터는 1부터 10으로, 우리 집에는 이미 넘버블록스 캐릭터에 관련된 각종 피규어와 블록이 있다. 우리 아이는 뽀로로나 다른 캐릭터는 크게 좋아하지 않고 그 시기를 지나갔는데, 넘버블록스 사랑은 거의 1년간 계속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지금, 넘버블록스는 아이에게 이제 살짝 수준이 지난 것 같지만, 아이가 그 안의 개념들을 제대로 익혔는지는 사실 알 길이 없다. 반복해서 본 만큼 조금이라도 기억을 했다면, 아이에게 어느 정도 수 개념은 잡혀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이가 넘버블록스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 문제가 될 것은 없는데, 자꾸 넘버블록스에 나오는 블록들처럼 계단모양으로 그림을 그리고, 조그마한 디폼 블록으로 그 계단들을 만드는 것은, 아이의 기행(?)에 속한다.

아이가 한창 넘버블록스에 푹 빠져있을 때, 아이는 모눈종이에 규칙성을 갖고 계단을 그리고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이과 출신 남편이, ‘수열’이라고 했다. 문과 출신이고 수학과 친하지 못한 나는, 아이가 어떤 규칙으로 계단 그림을 그려나가는지 정확하게는 알 길이 없었지만,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분명 아이가 고르는 색과 모양에는 규칙성이 보였다. 1부터 10까지 더하면 55라는 것도, 아이가 언젠가 ”여기부터 여기까지 더하면 55야“라고 해서, 내 머릿속에 처음 각인되었다. 아이가 수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격차가 있을지언정 아이의 지능이 우려할 만큼 나쁜 것은 아니구나 하고 안심했다. 아이가 정성스럽게 그리고 색칠한 계단 그림들이 한 장 한 장 쌓여갔다.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아이는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디폼 블록 작품들을 분해해서 그것을 색깔대로 모아서 커다란 계단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는 아예 매일 유치원 방과 후 수업 때 하나씩 계단을 부분적으로 만들어와서 기존에 자신이 만들어 놓았던 계단과 합치기 시작했다. 기존의 계단 모양 블록을 가져가는 것도 아닌데, 아이는 귀신같이 자기가 계단의 그다음 부분에 필요한 만큼을 예쁘게 만들어서 집에 들고 왔다. 아이 아빠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얘는 매일 유치원에서 디폼블록만 하냐며. 나도 유치원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디폼블록 활동은 좀 줄였으면 좋겠다고. 일단 아이의 계단 집착이 너무 심해지는 것 같았고, 디폼블록이 조그마하고 끼우고 빼기가 힘든데, 그걸 힘들고 어려운 것인 줄도 모르고 자기가 좋아하니까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우리 아이 손가락 관절이 걱정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넘버블록스링킹 블록을 샀다가 아이가 매번 끼고 빼면서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손가락 건강이 걱정되어 안 보이는 곳에 치워버렸었는데, 아이가 그것보다 훨씬 작고 조립과 해체가 어려운 디폼블록으로 계속 집착적으로 계단을 만들자, 차라리 치워버린 블록을 꺼내주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디폼블록을 치우는 대신 원래의 블록을 꺼내줬다. 아이는 며칠 가지고 놀다가, 요즘은 디폼블록도 찾지 않고, 계단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6개월 정도는 지속되었던 이 기행은, 요즘은 유튜브에서 넘버블록스를 틀어달라거나, 가끔 만들어놓은 넘버블록스 블록을 들고 외출하는 것 정도에 그친다. 아이가 앉아서 그 작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내 눈엔 의미 없어 보이는 그 섬세하고 무시무시한 작업을 하지 않는 것만도 나는 참 안심이 된다. 요즘은 디폼 블록을 잘 만들어오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또 디폼블록이 모이면 다시 시작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디폼블록을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보관한다. 아직은 안심하기는 이르다.

(왼쪽 위부터) 1. 외출해서도 디폼블록 계단을 갖고다니는 아이 / 2. 넘버블럭스 링킹블록 / 3.디폼블록 계단 / 4. 종이에 그린 계단들(많이 버리고 저 정도만 남았다)


03. 아파트와 길 그리기

그나마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기행이 아이가 스스로, 부모를 괴롭히지 않으면서 혼자서 조용히 시간과 정성을 들이며 했던 것들이라면, 이 마지막 항목은 아이 아빠와 엄마인 내가 무조건적으로 동원되어했던 작업이다. 언제부터, 어떤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핸드폰 지도 앱에 나온 아파트와 길을 그려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 집 아파트에 국한되었으나 관심 지역이 점점 넓어지더니, 이웃 아파트들을 다 그린 뒤에는, 친할머니댁, 외할머니댁, 심지어 어느 날인가 방문했던 키즈카페 주변의 아파트로 관심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나 아빠가 지도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열심히 한 땀 한 땀 복제하는 동안, 아이는 감독관이 되어, 우리가 빠뜨리는 길이나 동은 없는지 매의 눈을 뜨고 지켜보다가, 틀리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생기면, 잘못 그렸다며, 틀렸다며, 못생기게 그렸다며, 다시 처음부터 그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요구에 맞춰서 어떤 날에는 섬세한 입체 도면을 그려야 했고, 어떤 날에는 간단히 축소된 버전을 그려야 했다. 그나마 이 기행도, 처음에는 밑그림부터 채색까지 부모가 다 해야 했다면, 나중에는 아파트에 동 표기 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었고, 시간이 더 지나고는 채색도 아이가 스스로 하겠다고 하면서, 더 수월해졌다. 엄마나 아빠가 하루에 하나씩 지도를 그려주면, 아이는 안심을 한 듯이 그날 그린 지도 조각을 들고 잠자리로 들어가서 잠들었다. 지도를 그려주지 않으려고 버티면, 아이도 자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렇게 아이도 투쟁(?)을 통해 얻어낸 지도의 소용은 다음날 아침이면 다 끝났다. 그날 들고 잔 지도는 다음날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온 뒤에는 찾지 않았고, 저녁에는 새로운 지도가 또다시 만들어져야만 했다. 많이 버리고 정리해서 지도 그림도 남아있는 점이 많지는 않지만, 이 지도를 그리는 일이 우리 부부에게는 쉽지 않았다. 지도를 그려주는 것을 아이가 좋아했고, 아이가 이 그림들을 통해 스스로 어떤 필요나 욕구를 충족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 아이의 행복이 되어주는 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해 줄 법도 한데, 우리 부부에게 매일 밤마다 졸린 눈으로 전혀 쓸데없어 보이는 이 아파트들을 그려야만 한다는 일종의 숙제는 아이가 우리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요구하는 것 마냥 느껴졌다. 다행스럽게도, 아이의 아파트 지도 집착은 아주 가끔 ‘지도 그려주세요‘라고 말은 하지만, 다른 것을 하다가 잊어버리는 쪽으로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 중이다. 엄마 아빠가 그려준 이 종이 조각들을 손에 쥐고 잠드는 일도 없어졌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속은 답답했지만 잠든 아이가 귀엽게 느껴지기는 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소중하게 들고 잤던 것일까 우리 아이는. 어차피 다 지나갈 일이었는데, 이왕에 그릴 거면 기쁜 마음으로 더 정성을 다 하여 그려줄 걸 그랬다. 이렇게 아이에게 마음을 다 하여 해주지 못했던 일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미안함과 후회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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