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기 위해 딴따라(?)가 되었다.
약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을 끊임없이 정신적으로 괴롭혔던 내가 감정적으로 이렇게까지 바닥을 치면 안 되겠다고 느낀 것은, 내 몸이 여기저기 아프게 되면서였다.꽤 무거운 아이 둘을 안고 업었던 것도 몸이 갑자기 쇠약해지는 것에 한몫했겠지만, 그보다 더 문제였던 것은 아마도 내 정신적인 면역력이 바닥을 쳤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허리에 통증을 느꼈고, 누워서 잠을 자는 것도, 걸어 다니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누울 때 어쩔 수 없이 매트리스가 살짝 울리는 그 작은 미동조차 허리에 강한 통증을 느끼게 했고, 나는 집에서 걸어 다닐 수가 없어서, 바닥을 네 발로 기어다녔다. 간혹 서서 이동할 때면, 어딘가를 손으로 지지한 채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극심한 통증에 눈물이 쏟아졌다. 한 달 동안 택시를 타고 신경외과를 다녔다. 몸이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병원에서는 디스크까지는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걸을 수가 없었다. 아프기 전에는 ‘내 감정이, 체력이 이보다 더 바닥을 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차라리 언젠가 갑자기 쓰러져버리거나 안 아프게(아픈 것을 참 무서워한다) 갑자기 떠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강해서, 그렇게 ‘갑자기‘ 가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했던 ’감정의 바닥‘보다 우울함에는 더 깊은 바닥이 있고, 세상에는 내가 아직 느껴보지 못한 온갖 고통이 있겠구나 하는 것을 허리가 아프면서 깨달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 자신을 놓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말로만 죽고싶다 낙이없다 하던 나는 실상은 이기적이고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인간이었던지라, 몸이 아프니, 제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죽을 것도 아닌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울감에 빠져있던 시기에 남편은 내게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한국에 자리를 잡아서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남편은 자신의 마음이 더 가는 쪽으로 이직하기 위해 애썼고, 매일 늦게 들어왔다. 친정엄마도 자주 오셔서 도와주셨지만, 악과 독에 받쳐서 아이에게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울고 짜증 내는 딸을 보시는 것은 힘들어하셨다. 모두가 힘들었겠지만, 나는 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힘듦은 느껴지지도 않았고 알고싶지도 않았다. 그 시기에 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않았으며, 동네 엄마들을 만나더라도 기분이 괜찮을 때만 잠깐씩 보았다. 하지만, 아이가 느리다는 이유로, 좀 다르다는 이유로 그것을 부끄러워한다거나 숨기는 타입은 아니어서, 내 지독한 우울감을 내 주변 사람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나의 우울함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느린 아이 양육으로 인한 스트레스, 아직 어려 집에 있는 둘째를 가정 보육하는 데에서 오는 체력적 한계, 남편과 부딪치는 양육 태도, 오랜 남편의 부재로(?) 인한 지독한 외로움은 나를 우울증 직전까지 몰고 갔다. 설거지하다가 울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또 울고, 종일 우는 날이 계속되었다. 가정주부인데, 살림도 내려놨다. 집안은 늘 깨끗한 날이 없었다. 식욕은 없었고, 뭘 딱히 먹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는 오시면 나 대신 청소를 해주셨다. 남편과 자주 언성 높여 싸우는 날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남편과 말싸움을 하다가, 내가 소리를 지르며 아이 장난감을 현관으로 던졌고, 원목이었던 아이의 액티비티 큐브는 신발장과 부딪치더니 부서졌다.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쳤네’라고 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나는 그때 미쳐있었고, 정신과 방문이 시급했다.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평범하게 살고싶었는데, 평범한 일상과 평범한 가정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그때 느린부모 온라인 카페에 글을 쓰면, 많은 분이 우려를 표현하면서 말해주었다. 어머니가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다고. 정신과 약을 먹으면 좀 나아진다고 했다. 하지만,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은 내가 너무 겁이 났고, 남편 또한, 정신과 약은 시작하면 안 된다는 강한 태도를 고수했어서, 정신과에 방문하지는 않았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던 그 한 달을 경험하고 나서,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 어딘가에 나사가 빠진 듯했던 나를 다시 움직여준 것은, 아이의 미소도 남편의 토닥임도 아니었다. 아이가 아프다고, 힘들게 한다고, 내 삶이 너무 힘든 것 같다고, 앞으로도 계속 이 힘든 길을 계속할 용기가 없다고 나를 내려놓기에는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내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의 끝이 바닥이 아니고, 내가 생각했던 고통보다 더 큰 육체적 고통이 찾아왔다. 내가 계속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으면 앞으로 어디가 어떻게 더 아파질 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것이 진행된 뒤에는 아무리 후회하고 뉘우쳐도 아프기 전으로 돌아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살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넋 빠진 채로 있는 것 대신에 나는 내 정신을 부정적인 방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두게끔 해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은 것은, 폰으로 노래 부르기라는 새로운 취미였다. 딱히 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노래를 듣거나 부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노래를 거의 듣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노래는 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없다시피 했다. 시간 내어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해본 적이 없었고, 노래는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면 노래방에서나 부르는 것이었다. 첫 소절부터 끝까지 아는 노래는 아마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아는 노래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2023년 초부터 시작된 나의 취미는, 2025년 12월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Smule 이라는 노래방 앱으로 시작된 나의 취미는 올해 3년을 가득 채웠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부터 나는 육아를 하다 말고 종종 이어폰을 집었다. 어린아이를 가정 보육 중인 엄마에게 사실 ‘자유시간’이라는 것은 없어서, 나는 아이에게 떡뻥을 여러개 쥐여주며 노래했고, 아이가 주방에서 고래고래 이어폰을 붙잡고 소리 지르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올 때면, 나는 기꺼이 싱크대 장을 열어서, 온갖 냄비를 꺼내주었다. “엄마 노래 좀 할게. 너 혼자 잠깐 좀 놀아.”하고, 아이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어가든 말든, 냄비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어가든 말든 나는 둘째 아이를 옆에 두고 폰을 들고 노래를 불렀다. 잠에서 깬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박진영의 Swing을 불러대며 독무대를 펼친 적도 있다. 나는 흥이 없는 사람이지만, 내면의 흥을 다 끌어모아 최대한 즐겁게 나의 새로운 취미 생활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둘째가 어색하게 춤추는 엄마를 보며 까르르 웃었다. 첫째의 대학병원 검사 결과가 나온 날에는 청승맞게도 셀린 디옹의 My heart will go on을 부르면서 목 놓아 울었다. 차마 저장은 하지 못했다. 3년 전에 불러 저장했던 노래들을 지금 들어보면, 온갖 소음에 정신이 없다. 3년 전부터 내 노래를 들어온 지인은 내게 말한다. 한때 내 레코딩은 들어줄 수가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다고, 아이 소리에 설거지 소리에, 그렇게 산만한 녹음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것도 목에 무리가 갔는데, 노래까지 불러대자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던 성대 결절이 두 번이나 찾아왔다. (올해 여름에도 결절이 한 번 더 왔지만, 그것은 성악 발성을 배운다며 성대를 혹사하다가 잘못된 발성으로 인해 온 것이다) 처음에는 슬픈 발라드를 목놓아 부르며 내 속의 슬픔을 마음껏 표출했다. 화가 나고 분노가 치미는 날에는 슬픈 노래를 목 놓아 부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랩(Rap)이라는 장르의 노래도 듣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내 내면의 화를 옮겨 담았다. 가끔 가사에 욕이라도 나올 때면, 입에 담아본 적 없는 욕이었어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도, 신나게 떠들어댔다. 뜻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음악일 뿐이니까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욕을 할 수 있었다. 어쩌다 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질 때는 왜인지 모를 희열도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아이에게 화를 내고 허공에 화를 내는 대신에 이어폰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내 안의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커졌고 노래 실력도 빠르게 말하는 랩 실력도(?)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늘었다. 어떤 노래를 배워서 부를까 하는 고민을 하는 시간이 생겼고, 시간을 내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노래 실력이 차츰 나아지자, 자신감도 생겼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댓글로 노래와 관련하여 소통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둘째를 가정 보육하면서도 중간에 딴짓하는 30분의 시간은,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내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면서부터는 나는 이 취미활동에 한동안 내 오전 시간을 상당히 많이 들여가며 푹 빠지게 되었다. 그때 온라인 지인의 수도 참 많이 늘게 되었다) 엄마는 갑자기 날라리(?)가 된 딸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하셨다. 딱히 만족스러워하지 않으신 것도 사실이다. ’쓸데없는 데에 시간 쓰지 마’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일은 하지 않으며 살아온 나였지만, 엄마가 반대하는 이 딴따라 같은(?) 취미 생활을 접기는 커녕 보란듯이 더 열심히 했다. 노래를 불러댄 그 시간은 사실 나를 살린 시간이었다. 정신과에 가지 않았고, 약도 먹지 않았지만, 나는 확실히 전보다 덜 우울해졌고, 내 일상에서 즐거움이라는 부분이 생겼다. 사람들과 교류하며 모두 티를 내지 않을지는 몰라도, 각자의 힘듬과 고난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는 것, 걱정 없는 사람은 없고, 사연 없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가슴 깊히 느꼈다. 나 혼자만 슬프고 힘든 것이 아니었다. 다들 각자 자리에서 묵묵하게, 버티고 살아가고 있었다. 순수하게 노래가 좋아서 취미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노래를 시작하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나의 새로운 취미는 처음에는 스트레스 해소로 시작된 것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진지해지고 있다. 내가 3년씩이나 이 취미 생활을 지속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애플의 IOS 가 앱과 호환이 더 잘 되고 음질이 뛰어나다고 하여, 안드로이드 이용자인 내가 아이패드도 구입하고, 노래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음질로 감상하겠다며, 최근에 값비싼 스피커도 구매했다. 남편은 아내가 불러대는 노래에 3년 내내 관심은 전혀 없지만, 내 취미 생활을 응원해주는 가장 고마운 지지자이다. 한 번은 마이크를 사달라했더니, “어디 나가?”, “가수 되려고?” 하며 웃었다. 마이크를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내가 언젠가는 보컬용 마이크를 살 것이라는 것을. 이러다 집에 방음 부스도 들여놓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노래가 아니더라도, 세상엔 배울 것도 많고, 할만한 것도 많다. 나는 많은 선택지 중에서 핸드폰과 이어폰만 있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노래방 앱을 택했지만, 집을 벗어나 무엇인가를 배우러 가는 것도 좋고, 운동을 하는 것도 굉장히 좋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일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엄마도 조금은 시간과 여유가 생기니, 그때부터는 엄마를 위한 시간을 꼭 내면 좋겠다. 아니, 시간을 꼭 만들어야 한다. 아이가 느리고 손이 더 많이 간다고 해서, 엄마가 아이가 집에 없는 시간까지도 우울해있거나 아이 걱정에 시간을 쏟으며 슬퍼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아이가 늦다고 부정하는 기간 내내 나는 나의 즐거움을 포기했었다. 행복하지 않기도 했거니와 엄마가 되어놓고서는 아이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것에 시간을 쓰거나 나의 즐거움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 해서는 안 될 일처럼 여겨졌다. 어차피 아이를 내내 옆에 끼고 집에서 가정 보육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라는 보육 기관에 보낸다면, 아이 하원 전까지는 엄마 본인을 위해 시간을 써보자. 처음에는 시간 조절이 안 될 수 있다. 내 행복을 찾는답시고, 너무 그것에 기울어져서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은 나 역시 오랜 시간 그랬다. 하지만 원래 처음 시작은 시행착오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하는 기회비용이 아닐까. 아이나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내가 했을 때 즐겁고 시간이 잘 가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비록 쓸데 없거나 시간 낭비인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내가 그것을 하는 동안에 행복하다면, 그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면, 즐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엄마는 노래를 부르고 노는 나를 보며, 너 그러고 놀 시간에, 요리를 배우고 집을 치우고 아이를 위한 일을 할 생각을 하라고 나를 야단치셨다. 그런 야단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죄책감이 올라오기는 했다. 여전히 나는 요리를 배우지는 않고있지만, 나는 지금도 최소한 하루에 한 시간씩은 꼬박꼬박 집에서 즐겁게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집도 깨끗이 정리하고 안정적으로 가사 노동을 하고있다(우리집은 외벌이 가정이며, 나는 가정주부다). 하루에 한 두 시간으로 정해뒀지만,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서너시간을 노래를 부른다며 하루에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한 적도 있고, 새로운 취미에 흠뻑 빠져서 늦은 오전부터 오후 시간 내내 노래를 하며 보내다가 아이 하원 시간이 다 되어서야 한심스럽게도 허겁지겁 집을 치우고 아이를 데리러 나간 적도 많다. 하지만 취미 생활 3년 차인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의 일상을 전보다 더 소중히 할 줄 알고, 이 일상을 더 잘 보내기 위해서 적당한 시간동안 취미 생활을 하면서 이를 도구로 적절히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쓴다며 야단을 치던 엄마께서도, 이제는 딸의 건강한 취미 생활을 지지해주시고 계신다.(포기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있어보이지만, 친한 지인분을 만나시면 딸이 부른 노래라며 녹음본을 자랑하듯 들려주시는 것을 보니, 이만하면 성공적이고 괜찮은 취미를 찾은 듯 싶다.
이번 회의 추천곡은 정인, <위로>, 앨범 친애하는 판사님께 OST Part. 1, 2018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