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생활 마지막 발표회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된, 아이의 발표회 날.

by Eeun

2025년 12월 4일, 우리 두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작은 발표회가 있었다. 11월부터, 첫째 아이가 집에서 뭔가 뜀박질 비슷한 엉성한 춤을 추고 팔을 휘젓고,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불분명한 발음 때문에, 도무지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었으나, 담임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그 노래가 데이식스(Day 6)라는 그룹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라는 노래라는 것을 알았다. 유치원 발표회에 웬 아이돌 그룹의 노래인가 싶었지만, 아이는 그 노래가 꽤 마음에 드는 듯했다. 한 번 틀어줬더니, ‘유치원에서 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여러 번 졸라대기에, 나중에는 내가 먼저 틀어주기도 하며,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그리고 나와 남편 앞에서 재롱부리듯 춤추는 것을 지켜보고 열심히 환호해 줬다. 그 노래만 이야기하고, 그 춤만 췄기 때문에, 나는 발표회에서 하는 것이 그 춤뿐인 줄 알았다. 둘째에게도 넌 어떤 걸 연습 중이냐고 물어봤는데, 둘째는 나는 오늘 ‘꿈을 꾸는 어린이’ 연습 안 했다고만 하고 모르는 척을 했다. 아, 그래 너는 ‘꿈을 꾸는 어린이‘를 하는구나, 춤을 추는지 노래를 부르는지는 몰라도. 둘째는 그저 ‘한글용사 아이야‘와 ’미니특공대‘의 오프닝 노래가 제일 좋고, 기합을 넣으며 영웅놀이를 하는, (아무리 형보다 말을 잘하고 행동이 빨라도) 동생은 동생이었다.


발표회 당일, 유치원에 가봤더니,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은 둘째는 제일 어린 반이라 두 개, 큰 아이의 공연은 세 개였다. 그리고 발표회 마무리에는 아이들 전체 합창이 있었으니,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노력의 결실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한 시간 동안 꽉꽉 채워서 진행된 꽤 큰 행사였다. 재작년까지는 유치원 일반반에 다녔던 우리 아이는 이사 온 뒤, 이곳에서는 1년 동안은 특수학급에 다녔는데, 발표회는 원반 아이들 전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스무 명의 아이들이 세 차례에 걸쳐서 여러 무대 복장으로 무대에 서서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우리 아이들은 아무래도 정상 발달 아이들 중 잘하는 아이들만큼은 공연을 잘 소화하지는 못하는 듯 보였으나, 같이 무대를 즐기고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따라 하려고 하는 모습은 너무나 기특했고, 무대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1절과 2절 때 아이들의 배열을 바꾸도록 짜였기 때문에,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더 잘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공연을 보면서 뭔가 마음이 뭉클했다. 첫째와 두 살 터울인 둘째야 앞으로 두 번은 더 이러한 공연을 하겠지만, 첫째는 이제 졸업이고 유치원 시절의 이런 모습은 또 보기 어렵겠구나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발표회를 하는 것은 둘째 아이가 처음이었지만, 둘째의 공연은 그저 귀여웠다)


첫 아이의 발표회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 아이는 두 번의 공연을 했었다. 처음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담임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과 영상을 찍어서 학부모에게 보내주셨었는데, 우리 아이는 일곱 명 중 제일 오른쪽 끝에 서 있었다. 노래 중반쯤에 갑자기 옆에 있던 친구가 춤 동작을 하다가 실수로 손을 너무 멀리 뻗어서 우리 아이의 눈을 찌르는 작은 사고가 있었고, 아이는 그때부터 찔린 눈이 아프고 신경 쓰이는지 눈을 계속 깜빡이고 부여잡느라 나머지 동작을 하지 못했다. 다른 한쪽 팔로 대충 허공을 휘휘 젓고, 한쪽 손은 눈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끝까지 보았는데, 사고가 발생한 중반부터 노래가 끝날 때까지 우리 아이는 제대로 동작을 하지 못했다. 그 정도였으면 일단 녹화를 멈춘 뒤에,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가 괜찮아질 때쯤 다시 한번 더 시도해 주셨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때 담임 선생님께 아무런 의사도 전하지 않았다. 그저 속상한 마음만 갖고 있었고, 그 영상은 그때 한 번 본 뒤로 마음이 좋지 않아서 다시는 보지 않았다. 심지어 그 아이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그 아이 엄마와 내가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마음이 더 이상했다. 그 아이의 엄마도 나중에 내게 자신의 아이가 우리 아이 눈을 찌른 것을 살짝 언급했지만, 나의 좋지 않았던 마음이 풀리진 않았던 것 같다. 6세까지 다닐 수 있었던 그 어린이집에서 어린이집 졸업 발표회는 정식으로는 아이가 무대에 서는 첫 번째 공연이었는데, 그때 우리 아이는 독무대와 단체무대 이렇게 두 번의 공연을 했다. ‘쥐가 한 마리’를 부르는 것이 독무대였었는데, 아이의 독무대가 있는 줄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 미리 아이가 무슨 공연을 하는지 물어보았었다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연습하거나 최소한 노래라도 많이 들려줄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의 나는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은 사건사고가 없으면 다행스럽게 넘어가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도 발음도 더 불분명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우리 첫째 아이는 당연하게도 처음 서보는 무대에서 수많은 학부모 앞에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고,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시는 선생님의 손 율동을 보며 겨우겨우 손동작만 따라 했다. 노래는 우리 아이가 하지 못하자 다른 아이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마쳤으나, 우리 아이의 목소리는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에 묻혀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 미안했고,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이 체감되어서 그때 많이 반성했다. (그나마 단체 공연은 난타였기 때문에, 잘 마쳤다)


그 시기에, 느린 아이 양육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어떤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곧 유치원(어린이집인지 유치원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발표회인데, 아이가 발표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잘 따라 하지도 못할 것 같아서 부모님이 먼저 선생님에게 아이를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아마 그 글을 찾아봤을 때, 나도 아이가 발표회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검색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더 깊고 진지하게 아이의 발표회를 걱정하거나 아이를 제외해 달라고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대신에 ‘무관심‘ 하게 대응하는 것을 택했던 것 같고, 그 무관심의 결과는 아이가 어린이집 졸업 발표회를 하긴 했으나, 만족스럽게 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때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과 활동들에 관심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아이는 자신이 무대에 서서 그런 공연을 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께서 시키는 대로 했었던 것이겠지만, 여러 어른 앞에서 그런 공연을 하는 것이 꽤 중요하고 설레고 두렵고, 성공적으로 했었다면 소중한 경험이었을 텐데, 아이와 함께 준비해 주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참 미안하다. 아마 집에서 여러 번 공연 준비를 같이 해보고 무대에 나갈 수 있었다면, 아이와 나 모두에게 어린이집에서의 마지막 공연은 아이가 잘했고 못 했는지를 떠나서 의미 있고 좋은 추억이 되었을 텐데, 나는 준비되지 않은 아이의 어색한 손동작과 굳은 표정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다른 부모들과 섞여서 마치 다른 아이의 부모처럼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아이의 공연은 내게 더 뜻깊게 느껴졌다. 아이가 준비한 다른 두 가지의 공연(태권무, 영어 동요)은 내가 알지 못했고, 준비를 같이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나의 기대보다 더 멋지게 해냈다. 아이가 집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뽐냈던, 치어리딩으로 꾸며진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공연을 보는 내내 왜인지 모를 벅참과 감사함과 행복감이 느껴졌다.


‘솔직히 말할게 지금이 오기까지 마냥 순탄하지 않았지’,

‘솔직히 나보다도 네가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고 믿어. 오늘을 위해 견뎌줘서 고마워’,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2019)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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