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예비 소집일과 유치원 졸업식

아아, 25년은 갔습니다.

by Eeun

붙잡아두고 싶던 2025년

연말에는 늘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연말의 길거리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늘 한 해가 거의 끝나갈 즈음 돌아보면, 연초에 목표한 것 중에 이루지 못한 것들이 더 많았기에, 그것들을 다음 해로 미루고, 이번 해는 어쩔 수 없다. 즐기자! 느낌으로 남은 기간을 보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작년의 내 마음은 이전과는 달랐고, 무거웠다. 조금이라도 25년을 더 붙들고 있고 싶었다. 첫 아이가 새해에는 초등학생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새해가 시작된 지금도 내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답답하다. 아마 이 답답함은 아마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적응하고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어야지만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하다 보니, 연말에 집안 분위기를 꾸민다거나 하는 일도 아주 늦게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연말 기분을 느끼게 해줘야 할 것 같아서, 12월 초에나 느지막하게 베란다 유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붙였다. 눈송이, 눈꽃 결정, 트리, 등의 스티커를 하나씩 떼어서 유리창에 붙이면서, 마음에서 25년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씩 덜어냈다.


예비 소집일

예비 소집일 이틀 전부터 인터넷에서 후기를 찾아 읽었는데, 아이와 함께 처음 초등학교를 방문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듯했다. 나는 당일 아침부터 왜인지 계속 숙제를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예비 소집 시간보다 아이를 30분 일찍 유치원에서 데리고 나와서 학교로 향했다.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소집 장소에 가는 것부터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과는 달랐다. 하교 시간과 겹치는 시간이라서, 크고 작은 초등학생들이 하교 중이었고, 곧 이 초등학생 누나, 형들과 섞여서 학교에 다녀야 할 우리 아이는 내 옆에서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걷는 것이 아니라, 내 옷자락을 붙들고 무섭다며 아주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강당에 26년도 1학년을 맡으신 여선생님 세 분과 곧 입학할 아이들과 부모가 모였다. 자리에 앉은 우리 아이는 학교 밖에서보다는 조금은 더 편해 보였다.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친구들도 몇 있었기 때문에, 아이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친구들에게 아는 척을 했다. 입학 서류를 제출하고, 돌봄, 늘봄 신청 서류와 학교 안내서를 받은 뒤에 나와 아이는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도움반 선생님과의 만남을 위해 도움반으로 향했다.

사실 도움반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아이를 일반 학급에 속하게 할지, 도움반에 속하게 할지를 정하기 위해, 초등학교 지망 서류를 내기 이전에 나는 아이와 선생님을 한 번 뵈었었다. 그때는 아이는 혼자 시간을 보내게 하고, 나와 선생님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만남은 선생님이 아이를 일정 시간 안에, 여러 가지 지시 수행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고 아이에 대해 이해한 내용을 이후에 담임 선생님이 되실 분께 전달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적어 가서 선생님께 이후에 담임 선생님이 되실 분이 정해지면, 전달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오전 내내 무엇을 적어야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좀 더 이해하고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중구난방 적어본 아이의 특성과 성향에 대한 것이었다.

도움반을 나와 집에 가려다가 나는 살짝 아쉬운 마음에 강당에 다시 들려 1학년 아이들의 반이 있는 2층에 아이와 잠깐 올라가 봐도 되는지 여쭤봤다.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복도에서만 보는 것은 괜찮다는 허락을 받고, 아이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부모님들은 모두 강당을 떠나 바로 집으로 가시는 듯했는데, 나는 ’느린 아이’ 엄마니까,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아이에게 한 가지라도 더 학교에 대해 보여줘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으로 움직였다. 아이는 “여기는 어디예요?”, “여기가 학교예요?”, “여기 왜 왔어요?”하고 아직 유아적인 발음으로 여러 번 물어봤고, 나는 앵무새처럼, “너 3월이면 여기 1학년 교실에서 공부할 거야.”, “3월에는 너 초등학생 돼.”라는 말을 반복했다. 한 1학년 교실 앞에, 아이들이 쓴 그림 독후감 일지가 있었다.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이 그림과 함께 녹아있는 독후감 노트. 비어 있는 노트는 없었다. 우리 아이가 내년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이 노트에 글씨를 채울 수 있느냐는 걱정이 되었다. 글을 읽기는 하지만, 아직은 직접 써보라고 하면 소리를 듣고 엉성하게 받아쓰는 것 외에는 못하는 우리 아이도 1학년이 끝나갈 즈음에는 자기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글로 옮길 수 있을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하면, “나는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라고만 말하는 우리 아이. 초등학교 입학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기대와 설렘 대신에 걱정되고 조급하기만 하다.


유치원 졸업식

2025년 12월 30일.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했다. 1월 초와 2월 말의 방학을 제외한 기간은 유치원에서 방학 중 방과 후 교육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이전과 동일하게 9시부터 4시까지 아이를 봐주기는 하지만 교과과정은 끝났고, 아이는 유치원생도 초등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이 되었다. 1년에 우리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한 줄로 착각하신 지인분의 ‘유치원 졸업 축하‘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는데, 아이의 유치원 졸업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은 25년 내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고, 나는 걱정이 태산인데, 유치원 졸업과 초등학교 입학이 내게도 축하받을 일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 시작 시각보다 훨씬 이전부터 강당은 졸업생 아이들의 가족들로 가득 찼고, 곧 식이 시작되었다. 아이 한 명씩 선생님의 소개 속에 꽃다발을 받으며 강당으로 입장했다. 반, 이름이 언급된 후, 00 이는 00을 좋아하고, 00을 잘하는 00 이의 장래희망은 000입니다- 하는 식으로 소개가 이어졌다. 오래간만에 아이를 위해서 시간을 내어 같이 졸업식에 참여한 남편이 나를 보며 물었다(남편이 아이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00이 장래 희망 뭐야?”, 내가 작게 대답했다. “나도 몰라, 옛날엔 ’아빠’라고 했는데…”

아이가 장래 희망에 무엇을 썼을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보내기에 급급했고, 아이가 아직 다른 아이들처럼 무언가 장래 희망을 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긴 탓일까. 아이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아이의 장래 희망 소개가 너무 기발하거나 이상한 것일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공존했다. 우리 아이의 차례가 되었다. “000 반, 000. ‘아빠‘를 좋아하고, 수학을 잘하는, 00 이의 장래 희망은 소방관입니다.“ 남편과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 스스로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직업에 대한 여러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중에 아이가 고른 것이 소방관이라니, 우리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다. 아마 최근에 동생과 역할놀이를 하면서, 불을 끄는 소방관 놀이도 하고 했던 것이 익숙한 느낌이라 단순하게 선택한 것 같았다. 키즈카페에서도 불 끄는 놀이를 해 보기도 했으니, 다른 직업보다 친숙할 터였다. 아이의 장래 희망이 기발하거나 다르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서 안도감이 들었지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말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공간지각능력이 좋고 손을 사용해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연결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우리 아이에게 더 잘 맞고 더 잘할 수 있는 직업이 있을 터였는데, 내가 그런 직업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 사실은 문제였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니, 아이의 미래 직업까지는 사실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어도, 그쪽으로 아이를 밀어준다고 해도 아이가 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아이의 가능성을 잘 모르는 채로 성급하게 아이의 미래에 설계도를 그리면 안 되지 않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내 목표는 늘 아이를 정상 발달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 아이가 자신과 잘 맞고 잘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해서 돈을 벌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마음 한편에는, 돈을 벌지 못하면 어떠냐,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되지, 뭐 같이 살지 뭐…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것은 나의 방어 기제일 뿐, 내가 진실되게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가 느리다는 이유로 아이의 한계를 혼자 은연중에 선을 긋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부모가 찾아보고 안내를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 나중에 아이가 더 성장해서 직접 자신이 어떤 쪽으로 직업을 구하고 싶다고 하기 전까지, 그래도 나는 아이의 특성을 파악해서 아이에게 네가 어른이 되면, 나가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어야 했다. 아이가 어느덧 자라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나는 아직 엄마로서 너무나 부족했다.

졸업생들에게 모두 상장이 주어졌다. 튼튼 운동상, 으뜸 책 읽기상, 더불어 함께상, 아름다운 표현상, 빛나는 창의상. 우리 아이는 수상 항목 중에 아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창의상을 받았다. 우리 아이에게 딱 어울리는 상이라 생각했다. 옆에서 다른 어머니들의 대화가 들렸다. “요즘은 아이들 경쟁을 지양한다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상을 모두에게 준다네요. 이게 장점도 있고 단점도…. ” 다른 유치원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이들 모두가 수상한 것은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에 올라가면, 아이가 상을 받을 일이 있을까? 가끔 지인의 SNS를 보면, 자녀들이 자격증을 취득했다거나 어디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은 사진들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아직 우리 아이에게는 먼일처럼 느껴진다. 상 받는 게 뭐가 중요한가 싶지만, 그 아이들이 상장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아이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할 텐데 하고 마음이 또 무겁다. 상을 받으러 쪼르르 나간 아이 중 우리 아이의 키가 가장 작았다. 아이가 1월 생인데, 옆에 있는 아이들이 체격적으로 더 크고, 우리 아이보다 어른스러워(?) 보였다.




아무튼 우리 아이는 졸업했다. 둘째가 앞으로 2년간은 더 유치원을 다니겠지만, 나는 두 달 뒤면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어있을 것이다. 초등학생 학부모가 된 나는 이전의 나보다 나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서른 중반이고 싶지만, 후반에 들어선 나는, 살면서 해본 중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제일 어렵고 힘든 일임을 매 순간 실감한다. 아이를 품을 때는 그때의 힘듦이, 유아기에는 유아기의 힘듦이 있었고, 그것들을 어찌 되었든 경험했고 극복했지만, 사실 앞으로 아이가 성장해 감에 따라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르고 험난한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든 정상 발달 아이를 키우는 부모든 부모란 존재는 자신도 미성숙함에도 더욱 미성숙하고 제 멋대로인 존재들을 끌어안고 나날이 그들을 챙기며 같이 성장해야 하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이의 졸업식은 아이의 새출발을 축하하는 의미뿐 아니라, 부모 또한 고생했고, 수고했으며, 앞으로도 더 수고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 아들 유치원 졸업 축하하고, 엄마도 초등학교 졸업은 후회 없이 마음껏 축하해 주고 기뻐할 수 있는 멋진 엄마가 되어볼게!


이전 19화유치원 생활 마지막 발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