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가 아니라, 아빠인 걸까?

아빠는 육아를 안 하는데, 아빠가 더 좋다고 하면, 엄마가 좀 서운하잖니

by Eeun

캐나다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출생 후 두 달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둘째야 그렇다 치고, 첫째는 우리 가족의 캐나다 거주와 어린 시절이 겹쳤기 때문에, 아빠와 함께하지 못했던 시기가 대략 2년은 될 것이다. 엄마인 내가 당시 갓난아기를 혼자 키울 용기가 안 나서, 산후조리를 해주신 친정엄마의 귀국 때 같이 한국에 왔던 것을 시작으로, 나는 자주 남편을 두고 한국에 와서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키웠다.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가 흉흉하던 시기에도 한국이 더 낫지 않겠냐며 남편을 캐나다에 두고 아이와 다시 한국에 왔고, 막판에 남편의 귀국이 확실해지고 나서도, 남편은 그곳에서의 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그때는 둘째 아이까지 데리고 두 달 먼저 귀국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와 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인데, 아이는 어째서인지 아빠를 더 좋아한다. 둘째는 엄마가 더 좋다고 하고, 첫째는 아빠가 더 좋다고 하니, 부모가 공평하게(?) 각자 한 아이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것 같아서 나쁠 것은 없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미래 장래 희망을 ’아빠‘라고 적어왔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아이의 졸업식 날, 아이 소개에 ’아빠를 좋아하고’를 들은 뒤에 나는 생각보다 조금 더 서운함을 느꼈다. 물론 아이가 아빠를 좋아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왜 내가 아니라 아빠인 걸까.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늘 아이를 챙기는 것도,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도, 아이를 재우는 것도,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주는 것도, 모두 내가 하는데, 남편은 손 까딱 안 하고(?) 아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왜 아빠가 좋아? “하고 물어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아서 아빠가 좋은 이유를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자주 부재중인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나 결핍

아이의 발달이 늦다는 것을 알게 되고부터는 아무래도 둘째보다 첫째에게 내가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상에 ‘센터 치료‘가 들어가면서 무조건 첫째에게 내가 매여있어야 하는 일정이 생긴 것이다. 센터 초기에는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도 다녀봤다. 하지만, 둘째가 어리기도 했고 40분의 대기 시간을 센터 대기실에서 효율적이거나 즐겁게 보내는 것은 어려웠고, 이동 시간까지 포함하면 1시간이 넘는 꽤 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첫째 일정 때문에 둘째 아이의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체력적, 정신적으로 무리라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래서 내가 첫째와 센터에 가 있는 시간에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둘째 아이는 엄마나 시터 이모가 봐주고 계신다. 그러다 보니 둘째는 어느새 시터 이모님들의 돌봄에 익숙해졌다. (지금은 주로 시터 이모님께만 짧게 도움받고 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는 첫째에게 좀 더 집중하라는 시터 이모님의 배려로, 더 많은 시간을 집중적으로 첫째와 보내는 중이다. 워킹맘도 아닌데, 둘째는 내가 주로 8시 이후부터나 보기 시작하니, 아이로서는 내가 일하는 엄마와 다를 것이 없다. (첫째는 주로 하원하면 4시 30분부터 나와 함께하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하교시간이 당겨지니,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될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이모님이 가신 8시 이후부터는 둘째는 내 껌딱지가 된다. “엄마, 놀아.”, “엄마, 이리 와.” 엄마를 독차지하려고 애쓰는 둘째와 같이 놀아주다 보면 첫째가 또 소외되고, (가끔은 둘이 같이 놀면 잠들기 전까지,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때부터는 첫째도 양보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놀이를 주로 하려고 한다. 이미 많은 시간을 첫째와 함께 했지만, 또 막상 혼자 놀고 있는 첫째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둘째의 행동을 보고 있자면, 첫째의 아빠에 대한 마음도 부재중인 아빠에 대한 어떤 그리움이나 결핍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닐지 생각이 든다. 둘째는 형보다 상대적으로 엄마와 시간을 못 보내기 때문에 엄마를 더 필요로 하고, 이미 엄마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첫째는, 늘 자리에 없는 아빠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최선은 아니고, 차선

이렇게 말하면, 남편에게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들지만 ‘엄마가 자기 마음에 썩 들지 않기 때문에’ 아빠를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남편이 아이 아빠의 역할을 지금까지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육아에 100을 할당한다고 하면, 남편이 하는 육아가 5에서 10이 채 안 되는 이 시점에, 아이가 ‘우리 아빠는 정말 자상하고, 친절하고, 나와 잘 놀아주고, 멋진 아빠라서’, 아빠를 좋아한다고 말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왜인지 슬픈 감정도 올라오지만, 엄마가 자기 마음에 썩 안 들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부딪칠 일이 없는 아빠를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 아빠는 나보다 훨씬 허용적인 사람이고, 나는 어느 정도는 통제적인 양육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요즘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처럼 되어버린 MBTI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남편은 F 성향의 사람이고, 나는 T 성향의 사람이다. (나는 남편이 F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양육에서 남편은 ’아이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다 ‘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나는 ‘다르더라도 알 건 알아야 하고,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니 어쩌면 남편이 육아 참여에 저조한 이 상황이 어쩌면 일관성 있는 양육 태도로 아이를 기르는 것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양육에서 부부가 일관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실제로도 매우 중요하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기도 하고 첫째 아이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은 내가 맡아서 하고 있으니, 나는 늘 첫째에 대해서는 더 큰 책임감과 부담감을 은연중에 느낀다(둘째는 아직 어리니까, 아직은 괜찮을 것 같지만 둘째도 올해 여섯 살이 되니, 마음이 이전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아이의 언어나 사회성 등의 전반적인 발달이 많이 나아졌고 매일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는데도, 아이가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나이에 맞지 않는 유아적인 행동이나 소리를 내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니 이것을 밖으로 분출하지 않고 속으로 현명하게 다스리는 것이 내가 한동안 해결해야 할 과업이다. 끝내 못 참은 약간의 화는 가끔 틈새를 비집고 나와서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하는데, 그래서인가 아이는 “엄마 나빠, 엄마 싫어!”라고 가끔 외친다. 하지만 내가 화를 낼 때뿐 아니라, 아이가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을 때,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할 때도 엄마가 나쁘고 싫다고 하니, 아이의 관점에서 나는 늘 아이의 행동에 방해가 되거나 제약을 거는 사람이 되어서, 아빠보다 미움받을 수밖에 없다. 아빠는 귀가가 늦고, 어쩌다 집에 있는 시간 동안에도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 눈엔 엄마보다 예뻐(?) 보일 것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우리 첫째 아이인데, ‘엄마가 제일 좋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나의 양육 태도에 개선해야 할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몇 년 동안에는 내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남편이 육아에 전보다 더 참여해 주고, 나의 이 부담을 함께 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혼자 감당하기에는 왜인지 억울한 마음에서 나 역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이 있기도 했으나, 내가 육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남편이 태도를 바꾸어 나를 도와주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전업 주부’이고, ‘살림‘은 전적으로 전업 주부의 역할이 맞지만, ’육아‘는 당연히 부부가 같이 해야 하거늘, 결혼하고 어째서 우리 남편은 10년이 되도록 바빠서 두 남자아이의 육아를 내게만 맡기는 것인가(시터 이모님이 함께 할 때가 많지만, 이모님이 퇴근하고 나서도 나는 혼자 아이들을 두세 시간을 더 봐왔다).

요즈음의 나는, 남편이 그토록 바라던 ’남편 없이도 혼자서도 잘하는 독립적이고 똑 부러지는 ‘ 엄마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억울해서, 남편이 원한 그런 타입의 ‘아내’까지는 못 하겠는데, 엄마까지는 가능하다고 나 자신과 타협을 봤다(남편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을 봐서). 여전히 남편에게 힘들다 어쩐다 징징거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뿐이고, 남편에 대해 끝내 버리지 못했던 육아 분담에 대한 기대와 억울함은 내 마음에서 좀 내려놓고, 아이들 양육에 집중하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마음을 바꿨더니, 육아가 덜 버거워졌다. 아이들도 전보다 더 협조적이고, 내가 기대와 억울함을 내려놓으니, 매일 본의 아니게 바쁘게 살 수밖에 없는, 어떻게 보면 짠하기는 마찬가지인 우리 집 가장인 애들 아빠를 채근하는 일도 없어지고, 내 마음도 편해졌다. 물론 아이들이 따라줘서 가능한 것이겠지만, 어차피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사람을 말로 자꾸 괴롭히면서 나와 그를 힘들게 하느니, 어떤 부분에서는 내려놓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인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아빠를 기다리지 않고, 10시면 잠이 든다. 아빠를 기다리고, 계속해서 놀자며 나를 괴롭히며 12시까지 안 자고 버티며 잠투정하던 아이들이 요즘은 10시에 자고 7시도 안 되어 일어나서, 9시에서 9시 30분이면 등원을 한다.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막다른 길에 몰린 내가 이제는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내 감정과 태도를 변화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 아빠에게 기대하고 바라던 이전의 나는 없다. 물론, 양육은 부모가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남편이 양육에 참여하면, 이전에는 ‘당연히 해야 할 것을 이제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지만, 앞으로는 ‘고마움‘마저 느낄 것 같다. 내가 고마워한다면, 남편도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 어제 시터 이모님께서 퇴근 하시기 전에 말씀하셨다. “요즘 00 엄마가, 남편에게 대하시는 모습이나 태도가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더 여유가 느껴지고, 좋은 쪽으로 변한 것 같아서, 아주 예뻐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거… 내려놓아서 그래요. 포기했어요”. 내려놓았다고 말했지만, 포기했든 안 했든 내 마음이 편하면 좋은 것 아닌가 싶다. 내려놓으니 행복하다.스스로 최선을 다한 것에서 오는 만족감은 누가(특히, 그토록 내가 내 노고를 알아주기를 바랐던 남편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아는 것이고 내 것이다.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나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고, 어여쁘게 잠든 아이들 옆에서 뿌듯하게 잠들 수 있으리라.




이번 회의 추천곡은 전대현, <행복의 날개>, 앨범 전대현의 두번째 사랑이야기, 2009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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