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는 나쁜 엄마를 하기로 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일화가 하나 있다. 10년째 장롱에 있던 면허를 갱신할 때가 되어서야 꺼내어 본 나는 이제 운전을 한 지 반년이 훌쩍 지났는데, 정말 초보 중 왕초보라고 불리던 때의 이야기이다. (브레이크와 액셀의 위치를 긴장하며 기억하고 있던 시기) 둘째는 여느 때처럼 시터 이모님께 맡기고, 나는 첫째와 센터에 갔다가 미술학원이 끝나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는지 흥분한 상태로, 이동하는 내내 뒷자리에서 내 안전벨트를 풀어대고, 요란하게 울려대는 경고음에 마치 화음을 넣듯이 ’삐이-삐이‘ 하면서 내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가끔은 눈앞에 물건을 가져다 흔들어대서, 이러다 사고가 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운전하던 내가, 아이의 지나친 방해 공작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때, 나는 속도를 줄이려고 브레이크를 살짝 밟는다는 게, 액셀을 밟았다. 순간 차가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멀리 나갔다. 보행자 신호가 아니었어서 다행이지, 나는 상당히 놀랐고, 참고 있던 화를 소리 지르는 것으로 분출했다. 아이도 사태 파악이 되었는지, 눈치를 살짝 보더니 화를 내기 시작했다.
차를 주차하고 나가려는데, 아이가 문을 열고 먼저 뛰어나가서 지나가는 같은 아파트 주민분들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외쳤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막 화가 난 상태로 얼굴이 상기되어 차 문을 열고 나오는 나를 그 두 분은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가 없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그 두 분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이가 뛰어와서 갑자기 살려달라고 하니, 내가 엄마가 아닌 유괴범쯤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에게 “엄마 운전하는데 방해하지 말랬지!” 하고 소리치자, 아이가 “나쁜 엄마예요! 나쁜 엄마!”라고 말했고, 아이가 붙잡았던 두 분은, 웃으시면서 “아, 엄마구나. “하고 안심하신 듯 ”엄마 말 잘 들어야지. “하시고는 지나가셨다.
내가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면, 그때 그 주민분들을 보면서 너스레도 떨어가며 잘 웃으면서 넘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시기의 나는 아이가 자꾸 ‘나쁘다’, ‘나쁜 엄마’라고 할 때마다 마음 어딘가가 찔린 듯이 불편했다. 언제인가부터 아이가 명사 앞에 자꾸 ‘나쁜’을 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치원에서 누가 자꾸 나쁘다는 표현을 쓰는지를 궁금해했다. ‘순하디순한’ 우리 아이가 분명 유치원 같은 반 어떤 친구로부터 그런 말을 배워 온 것이 아닐까 ‘나쁜’ 말을 배운 출처를 찾고자 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담임선생님께 살짝 여쭤보는 것뿐이어서, 출처를 알기에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 시기의 담임선생님도, 아이가 자꾸 당신에게 장난을 치고, 하지 말라고 하면, ’나쁜 선생님, 나쁜 선생님’ 한다면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셨다.
나는 아이가 내게 나쁘다 할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물론 나 자신도, 내가 정말 좋은 엄마는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에게 직접 ’나쁘다’라고 듣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부족한 엄마라 그렇지, 나쁜 엄마였던 적은 없다. 아이가 밖에서 그런 말을 하는 상황이 오면, 더 신경 쓰였다. 그 시기의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상당히 중요했다. 늦은 아이가 아니었다면, 밖에서 장난처럼 자꾸 엄마 나쁘다고 사람들 다 듣는 곳에서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 모자는 사람들에게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아이와, 여유가 없어 보이고 화가 난 듯 한 나쁜 엄마로 보이리라. 그래서 더 울컥했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도 여러 번 반복해 보니 매우 지치는 일이었다. “나빠? 엄마가 왜 나빠? 어디가 나쁜지 말해봐.”하면서 아이를 추궁하던 것도 관뒀다. (어차피 제대로 된 대답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너 어디 정말 나쁜 엄마 한번 경험해 볼래?” 하면서 눈을 무섭게 뜨고 회초리를 들고 겁주는 일도 그만뒀다. (겁을 주면, “나쁘다고 안 할게요” 하고 말만 하고서는, 회초리를 치우면 다시 약 올리듯 “나쁜 엄마~ 나쁜 엄마”하고 노래를 불렀다) 화내기 다음으로 내가 취한 태도는 설명해 주기였다. 아이가 나쁜 엄마라고 말할 때, “00아, 엄마가 정말 나쁜 엄마면, 00이 밥도 안 주고, 유치원도 안 보내고, 00이 장난감도 안 사주고, 00이 재워주지도 않고, 00 이한테 매일 화만 내고, 00이랑 놀아주지도 않고, 00이 때리고 그럴 텐데, 엄마가 그래? 엄마 안 그러지? 그러면 엄마 나쁜 엄마야 아니야?” 말도 장황하고 유치하지만, 나는 진지했다. 나는 나쁜 엄마가 아니니까. 아이에게 그 사실을 이해시켜야 했다. 아이는 아니라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그 대답 후에도 몇 초 지나지 않아 약 올리듯, “엄마는 나쁜 엄마야”라고 했다.
사실 아이는 나에게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만나는 모든 선생님에게 ‘나쁜 선생님’이라고 한다. 아이에게 악의는 없다. 매번 아이는 남에게 나쁘다고 하면서 웃고, 상대방의 반응을 즐기는 듯 보인다. 선생님들께 모두 아이가 요즘 저 단어에 꽂혀서 가족에게도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똑같이 다 나쁘다고 말하니, 너무 기분 언짢아하지 마시고, 잘 대처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드렸다. 예전보다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아이는 농담하듯이 나쁘다는 소리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른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나쁘다고 하는데, 또래 친구에게는 자신이 서운함을 느꼈을 때만 아주 작은 소리로 나쁘다고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좋아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표현해야 아이도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아이는 타인의 진심과 애정이 어린 관심을 자기에게 오게끔 하는 방법을 아직 모른다. 첫째가 아주 어릴 때, 아무래도 첫 아이라 더더욱 사랑을 많이 주고, 많은 표현을 해줬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에게 이전만큼 애정 표현을 못 해줘서 그런 것인가 싶다. 이제는 아이가 내게 나쁘다고 하면, ”엉엉, 00 이가 엄마 보고 나쁘다고 해서, 엄마 속상해 “하고 우는 시늉을 하면서 넘긴다. 아이는 그게 재밌다고 까르륵 웃는다. 간혹 엄마 정말 나쁜 엄마야? 하고 슈렉에서 나온 그 유명한 고양이의 눈망울을 하고 물어보면, ”아니야, 좋은 엄마야. “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쁜 엄마를 하기로 했다. 아이가 ”우리 엄마는 좋은 엄마야. 엄마가 제일 좋아”라고 할 때까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내가 놓쳤던 애정표현을 더 해주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번 회의 추천곡은 장들레, <모르겠어요>, 앨범 모르겠어요, 2021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