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과 오징어 가이상
<오징어 게임>이 연일 뜨겁다.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인니에서도 며칠째 1위 콘텐츠로 뜨고 있다.
애들 학교의 현지 친구들 sns에도 스샷 한 장면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유명 유투버가 미국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도 이 드라마를 봤냐고 물어본다. 도리어 한국인 유투버보다 현지 가이드가 더 많이 보았고 훨씬 빠져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핫 한 게 맞는 것 같다.
수많은 유투버들이 오징어 게임에 대한 영상을 올리고 브런치를 포함한 리뷰와 평론 글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 뺨치게 리뷰한 글들이 차고 넘치나 결국 작품에 대한 견해는 직접 확인한 본인들의 몫이므로 아직 안 보셨다면 리뷰나 소개 유튜브 말고 직접 드라마를 관람하실 것을 추천한다.
나는 오징어 게임을 직접 놀아본 세대에 속한다. (극 중 이정재가 동갑 친구더라^^)
내 기억 속에서도 그 놀이는 무척 거센 놀이 중 하나였다. 힘센 아이들이 많을수록 유리했고, 간혹 꽤 과격한 몸싸움도 유발했으며, 영화에서처럼 붉은 피를 보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게임이 끝나면 무르팍이나 팔꿈치 같은데 영광의 상처가 남기도 했고, 걸치고 있던 윗도리가 늘어지거나 흙투성이가 되거나 찢어진 채 귀가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그 놀이의 이름은 오징어 게임이 아닌, "오징어 가이상"이었다.
드라마를 시청하며 동갑인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자기네 동네에선 뭐라고 불렀어? 오징어 가이상이라고 하지 않았어?"
남편은 웬 이상한 말이냐며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이름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마 '뽑기'의 이름이 지역마다 달랐듯 이 게임의 이름도 지역마다 달랐던 듯싶다. (우리 동네에선 '뽑기'보다 '달고나'라는 말로 더 많이 불렸다)
내 기억을 믿지 못해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역시, 그렇게 부르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오징어 가이생"이나 "오징어 가이상"이라고 불렸는데, 가이상이 일본말로 포(쥐포, 오징어 포 같은)를 뜻한다고 하니 확실친 않지만 억양도 그렇고 일본식 이름이 맞는 듯하다.
어릴 적 놀이가 다 그렇듯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이들은 없었다. 그저 나의 오빠와 형이 놀던 놀이를 동생이 배우고, 또 그 아랫 동생들에게 이어지며 우리의 놀이는 그렇게 계속됐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흙바닥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올 때면, 누군가 "오징어 가이상 할 사람~?" 하고 소리쳤고 이이들은 우- 하고 자신들만의 아지트 장소로 흩어졌다.
학교 운동장이 아니어도 당시엔 대문 밖이 대부분 흙바닥이어서 땅을 파거나 그림을 그리며 놀 수 있는 수많은 놀이들은 동네 골목까지 이어졌다.
대장 같은 형이나 오빠 두 명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자기 팀원이 될 사람을 데려가는 식으로 편이 나뉘었다. 그렇게 하나 둘, 힘 좋고 기술 좋고 날쌔고 잽싼, 몸값 높은 아이들 순서대로 편이 나눠지다 보면 꼭 남는 아이들이 있었다.
바로 나 같은, 작고 약하고 비쩍 마른 동생들 중 누군가.
그렇게 남은 나는 자연스럽게 '깍두기'로 불렸다. 어쩔 땐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전에 "나는 깍두기!"하고 알아서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극 중 구슬치기 게임을 위해 참가자들이 짝을 맺다 한 여자만 남게 된다. 그녀는 모두에게 신뢰도 동정도 얻지 못한 채 처절하게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다. 진행원들이 그녀를 질질 끌고 갈 때, 소리치며 발악하던 그녀도, 애써 그녀를 외면하며 게임장으로 빠져나가던 이들도 그녀가 자동으로 탈락하게 되어 죽음을 맞이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볼 때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어, 한 명 남으면 깍두긴데...'
깍두기 마음은 깍두기가 안다.
어리다고 작다고 항상 남겨졌던 나는, 하지만 깍두기를 통해 버려지지 않고 그곳에서 함께 놀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자비로운 게임의 법칙인가 말이다!
힘 한번 못 쓸만한 뉘 집 쪼만한 동생이건 이쑤시개처럼 말라비틀어진 몸이건, 그때 우리들은 그렇게 다 함께 놀았으니 말이다. 비록 놀이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제거되는 그런 허깨비 같은 존재들이었지만, 몇 초라도 버텨보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그 시절의 모든 깍두기들은 안다. 그렇게 단 몇 초라도 함께 놀고 싶었던 그 간절했던 마음을.
대체 왜 누가 '깍두기'라는 명칭을 붙이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자비로운 명칭은 결국 골목길 아이들을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다 같이 땀 흘리며 놀 수 있게 만들어준 꽤 기특하고 영특한 발상이었다.
때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 놀이에 깍두기가 없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코로나로 밖에서 실컷 뛰어놀기 힘든 건 더 안타까운 현실이고
땅바닥에 내 맘대로 그림을 그리지도, 구멍을 파내지도 못하는 시절이라는 게, 그 놀이들을 경험해본 입장에서 더없이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의 콘텐츠가 유명세를 얻는 건 기쁜 일이지만, 실상 한없이 따뜻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 놀이들이 무서운 살인게임으로만 남게 되진 않을까, 소심하게 작은 걱정거리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