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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프씨 Aug 04. 2021

아름다운 그녀와, 행복한 그녀

다시 쓰는 안데르센. <인어공주>

이야기를 전하는 바람이 있다오

귓속을 간질이는 속삭임을 들으며

작은 꽃씨는 바람에 몸을 맡겼지

휘이 휘이 휘 이 아로-

내려앉은 대지는 보드랍고 포근했지

다리를 주욱 뻗고

팔을 높이 펼쳐

따스한 모든 것들을 한껏 안았지

당신이 서 있는

그대가 보고 있는

네가 그리고 있는

내가 노래하고 있는

이곳은,

바람이 선물한 나의 고향

휘이 휘이 휘 이 아로-          


리에나 공주는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리며 해변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공주님, 저기 사람이...!”     


시녀 마리가 가리킨 곳에는 한 젊은 남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마리야, 궁에 가서 사람들 좀 불러와”

“네 공주님!”     


시녀는 다급히 궁으로 뛰어갔습니다.     


‘바다에서 떠밀려 왔다면 물을 마셨을 거야. 목을 옆으로 돌리고...’     


공주는 궁에 있는 모든 책을 읽은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에서 부상을 당했을 때, 물에 빠졌을 때 해야 하는 응급처치도 읽은 적이 있었고, 그 기억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남자의 몸을 움직였습니다.     


“컥- 쿨럭”


남자가 물을 토해냈습니다.     


“이봐요. 정신이 들어요?”     


남자는 힘없이 눈을 떴습니다.  

   

“여기가.. 어디죠...?”

“여긴 키이스 해변이에요. 사로 왕국의..”

“사로 왕국....?!”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습니다.

물에 젖고 모래가 묻어 지저분해졌지만 남자가 입은 옷은 분명 높은 귀족들이 입을만한 의상이었습니다. 상체를 세우고 앉은 남자는 힘겨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구하셨나요? 당신은 누구죠...?”

“그건 아니고, 나는...”

“공주님!”     


마리가 궁의 신하들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공주...?”     


남자는 공주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사로 왕국의 리에나 공주예요. 사고를 당한 것 같으니 먼저 치료를...”

“고맙습니다 리에나 공주. 난 카이한의 에릭 왕자입니다. 당신이 제 생명을 구하셨군요”     


공주와 시녀, 함께 온 신하들은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카이한.

그곳은 몇 년 전부터 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주변국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팔란 대륙의 최강국이었습니다. 그 선두에 뛰어난 지략과 용맹함을 갖춘 왕자가 있다는 소문은 리에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주인공이 눈앞에 나타나다니, 리에나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리에나는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이 해변을 거닐곤 했습니다. 그날도 생각에 잠겨있었습니다.

작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카이한이 또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습니다.

리에나가 유일한 왕손인 소국 사로 왕국에게도 카이한은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왕자가 아닌 공주로 태어난 사실을 요즘처럼 안타까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왕자였다면 그 용맹하다는 왕자처럼 직접 전쟁터로 나가 싸웠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갇혀있는 자신이 초라하고 답답했습니다.

군사력이 약한 자신의 왕국을 위해 공주의 신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녀 앞에, 그 위협적인 왕국의, 그 용맹하다는 왕자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왕자를 궁으로 데려온 후 리에나와 사로 왕국의 왕과 왕비는 정성을 다해 그를 보살폈습니다. 에릭은 자신이 사로 왕국에서 구조되어 잘 지내고 있다는 전갈을 카이한에 보내고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며칠 그곳에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사로 왕국은 항상 따스한 바람이 머무는 포근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왕과 왕비도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신하들을 대했고, 특히 리에나는 자신이 봐왔던 여느 공주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에릭을 위해 그녀는 매일 새로운 책을 친히 그의 방에 가져다 두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책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드레스와 머리 장식, 온갖 사교모임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보통의 공주들과는 경험할 수 없는, 흥미롭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깊은 지식에 한 번씩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리에나는 영리하고 겸손했으며 용기 있는 공주였습니다. 그 모든 면들이 그에게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왕국의 보배였던 왕자의 실종으로 침울해 있던 카이한은 에릭의 친서에 온 나라가 기뻐했습니다.

곧바로 사로 왕국에 대한 감사의 선물과 왕자를 데려갈 행렬이 도착했고, 에릭은 사로 왕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가졌습니다.


에릭은 자신에게 베풀어준 호의와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고 다 함께 그의 무사 귀환을 위해 건배했습니다.     


“국왕폐하, 실례인 줄 알지만 청이 하나 있습니다. 리에나 공주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에릭의 말에 왕과 왕비, 그리고 누구보다 리에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에릭은 천천히 걸어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첫 만남은 비록 비참한 모습이었지만, 저에게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공주...?”      


갑작스러운 왕자의 청혼에 리에나는 당황했습니다.

사실 그를 보살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떤 방식으로든 카이한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 맞지만 예상치 못한 청혼이었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당연히요. 초라하고 무례한 청혼을 용서하십시오”     


에릭은 따뜻한 그녀의 손등에 정중히 입을 맞추었습니다.     


“충분히 고민하시고 결정이 서면 전갈을 주시오. 어느 쪽이든 전 공주의 결정을 존중하겠습니다. 만약 제 청을 허락하신다면 곧바로 결혼식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폐하와 왕비님, 그리고 공주를 꼭 저희 카이한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왕자가 돌아간 후, 사로의 왕과 왕비, 리에나는 고심했습니다.     


“리에나,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볼모로 만들고 싶진 않다. 원하지 않으면 거절해도 우린 괜찮아”

“그래 아가. 결혼은 조건이 아니라 사랑으로 성사돼야 해.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아니에요 하겠어요! 볼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왕국을 위해서도 엄마 아빠를 위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이 될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 더 알고 싶어요...”     


리에나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왕국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고,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에게 끌리고 있었습니다.     


카이한에 돌아간 에릭 왕자에게 청혼을 받아들이겠다는 사로 왕국의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리에나 공주 일행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자님, 난파선이 해안에 떠밀려 왔다고 합니다!”      


에릭은 배가 발견된 곳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화려하게 치장되었던 배는 처참하게 부서졌고 선실 안에는 여러 구의 시신들이 있었습니다. 시신을 수거하는 동안 왕자는 미안함과 속상함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근처를 서성거렸습니다. 그러다 바위 뒤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긴 머리로 온몸을 가린 채 가늘게 떨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바닷속 마녀 우슬라에게 목소리를 주고 인간의 다리를 갖게 된, 인어공주 아리엘이었습니다.      


아리엘을 궁으로 데려온 왕자는 분명 친절했지만,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목소리를 잃은 아리엘은 뭐라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알아볼 거라 기대했지만, 곧 왕자가 다른 나라 공주와 결혼할 거라는 절망적인 현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15번째 생일에 처음 바다 위로 올라와 처음으로 인간을 보았고, 왕자를 본 그 순간엔 쉴 새 없이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를 다시 보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목숨과 맞바꾸는 결심까지 하며 그 앞에 나타났지만, 그는 곧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될 거였습니다.     


드디어 리에나 공주 일행이 카이한에 도착했습니다.

카이한의 백성들도 이들을 진심으로 환영했고 양국의 왕자, 공주의 결혼식 발표로 왕국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대국 카이한에서 마주한 에릭 왕자는 사로에서 보다 훨씬 더 멋졌습니다. 카리스마와 따뜻함을 모두 갖춘 존경받을만한 왕자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어느 날 함께 조식을 마치고 차를 마시던 에릭은 뭔가 생각 난 듯 리에나에게 물었습니다.     


“공주. 혹시 말을 못 하는 사람과는 어떻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지 알고 있소?”

“그 사람들끼리 사용하는 손 언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까지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헌데 그게 왜 궁금하시죠?”

“얼마 전 난파선이 밀려온 날, 근처에서 한 아이를 발견했소. 에메랄드처럼 깊고 푸른 눈빛을 가진 아이인데 안타깝게도 말을 하지 못하오. 어디서 온 건지, 왜 그런 모습으로 거기 있었던 건지.. 글 조차 모르니 알 길이 없다오”

“어떤... 감당하기 힘든 사고로 갑자기 말을 잃었을 수도 있어요. 지금 어디 있죠?”

“시녀들과 함께 지내고 있소”

“그 애를 저의 시녀로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물론! 더없이 좋은 생각이오! 공주도 그 애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거요”     


시녀들이 리에나의 방으로 아리엘을 데려왔습니다. 에릭의 말처럼 푸른 바다 빛깔의 눈동자를 가진 그 애는 가녀린 모습이었지만 눈빛과 표정에서 당돌함과 용기가 엿보였습니다. 겉보기엔 괜찮아 보이는데 그 애는 마치 맨발로 가시밭 위를 걷듯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힘겨워 보였습니다.

리에나는 낯선 땅에 와서 살게 된 그 아이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듣는 귀와 말하는 입이 많은 낯선 궁에서, 어쩌면 그 애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리에나를 만나게 된 아리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녀였습니다. 자신이 구한 왕자 앞에 나타났던 아름다운 여인, 그녀가 지금 눈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를 구하건 자신이라고 마음속으로 수백 번 외쳤지만, 인자한 얼굴의 그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리에나는 아리엘을 시녀가 아닌 동생처럼 대했습니다. 그녀는 아리엘에게 ‘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돼. 글로도 충분히 마음을 전할 수 있단다”     


소리 내어 읽진 못했지만 아리엘은 하루가 다르게 문자를 익혀갔고, 리에나가 불러주는 글씨도 곧잘 받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아리엘은 빨리 글을 배워 왕자에게 자신이 누군지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어느덧 결혼식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며칠 뒷면 사로의 왕과 왕비는 딸을 홀로 남겨둔 채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부모와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에 리에나는 정성을 다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가까이에서 리에나를 지켜보던 아리엘은 효심 가득한 그녀의 모습에 푸른 바닷속 자신의 부모와 언니들이 떠올랐습니다.

리에나의 진심은 사실 부모에게만이 아니었습니다. 시녀인 마리에게도 이 궁의 모든 사람에게도, 잘 알지 못하는 자신에게조차 항상 진심 어린 말과 행동을 보였습니다.

마리는 입만 열면 리에나 공주가 어떤 생각으로 결혼을 결심했는지, 그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공주인지 떠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는 걸, 아리엘도 점점 깨닫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나라와 부모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결정한 그녀를 보니, 순간의 감정으로 사랑하는 부모와 자매를 버리고 이렇게 가시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육지에 서 있는 자신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느새 아리엘은 인간 리에나를 존경하고 있었고, 왕자와 어울리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그녀라는 걸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둔 밤, 늦도록 아리엘에게 글을 가르쳐주던 리에나는 창밖에 맑고 환한 달이 보이자 아리엘의 손을 잡고 발코니로 나갔습니다. 달빛에 물든 밤하늘을 바라보며 리에나는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바람이 있다오

귓속을 간질이는 속삭임을 들으며

작은 꽃씨는 바람에 몸을 맡겼다오

휘이 휘이 휘 이 아로-

내려앉은 대지는 보드랍고 포근했지

다리를 주욱 뻗고

팔을 높이 펼쳐

따스한 모든 것들을 한껏 안았지

당신이 서 있는

그대가 보고 있는

네가 그리고 있는

내가 노래하고 있는

이곳은,

바람이 선물한 나의 고향

휘이 휘이 휘 이 아로-     


아리엘은 종이에 글을 적었습니다.     


[노래. 좋아요]     


리에나는 빙긋 웃으며 아리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불려지는 노래야. 이곳처럼 크고 웅장하진 않지만,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이지. 렌, 네 고향 얘기도 듣고 싶다. 그곳에서 불려지는 아름다운 노래도, 네 목소리로 들을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또르르- 아리엘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녀도 푸른 바닷속 자신의 왕국이 몹시 그리웠습니다. 수많은 물고기 친구들과 꽃보다 더 화려한 해초들, 그리고 누구보다 아리엘을 아끼고 사랑했던 밝고 상냥한 언니들과 엄마 아빠. 그 모든 걸 져버린 자신의 무모한 결정이 한없이 후회스러웠습니다.

리에나는 눈물 흘리는 아리엘을 따뜻하게 안아주었습니다.     


결혼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리엘은 홀로 해변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아리엘- 아리엘-”     


언니들이 커다란 바위 뒤에서 아리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리엘은 언니들을 얼싸안고 한참을 울고 웃었습니다.      


“이게 마지막 기회야. 이 칼로 인간의 심장을 찔러. 그 피가 칼에 흐를 때 너의 저주가 풀릴 거야”     


칼을 품에 숨겨 궁으로 돌아오는 아리엘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언니들의 말이 맴돌았습니다.     


<그 공주의 심장을 찔러. 그리고 왕자와 행복하게 살아 동생아...>     


언니들은 눈물을 흘리며 동생의 행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

이 철없는 딸을 위해 모두가 진심으로 저주가 풀리기를 바랐습니다.

방에 돌아온 아리엘은 잠시도 앉아있지 못하고 방안을 서성거렸습니다. 이 시각쯤이면 에릭도 리에나도 모두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었습니다. 늦게까지 행사를 준비하던 시녀들도 모두 돌아갔고 마침내 궁은 조용하고 어두워졌습니다.

아리엘은 품고 있던 칼을 꺼냈습니다. 밝은 달빛에 칼날이 날카롭게 빛났습니다.

한참 동안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고 있던 아리엘은 결심이 선 듯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 *    


아- 악--!!     


성대한 결혼식 날 아침, 리에나를 깨우려 방에 들어선 마리가 괴성을 질렀습니다.     


“저기.. 저기 칼이...!”     


침대에 누워있던 리에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리에나의 방에 피 묻은 칼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시녀와 병사들이 공주의 방으로 몰려왔고 한 시녀가 다급히 뛰어왔습니다.     


“공주님, 렌의 방에 이런 종이가...!”     


리에나는 종이를 펼쳐보았습니다.     


[공주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공주님과 함께 지내며 많은 걸 깨닫고 배웠습니다.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고 부족한지도 깨달았어요. 가르쳐주신 글로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부디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그리고 저의 이름은 아리엘입니다]     


“공주님, 저기....!”     


마리가 가리킨 발코니 밖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리엘이었습니다.

리에나는 다급히 달려가 쓰러져있는 아리엘을 끌어안았습니다.     


“렌! 렌!!”

“공주, 이게 무슨 일입니까?”     


소란스러운 소동에 에릭이 뛰어왔습니다.

리에나는 아리엘을 안고 울부짖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놀란 에릭도 함께 슬퍼하며 리에나를 안아주었습니다.     


“공주님......?!”    

 

리에나와 에릭, 마리와 주변에 서 있던 모든 이들이 순간 비명을 지르며 놀랐습니다.

리에나의 품에 안겨있던 아리엘이 눈을 뜨고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렌, 괜찮은 거야..? 진짜 괜찮은 거야?”

“제가 왜... 깨어났죠...? 어떻게 제가... 저주가 풀렸나 봐요.. 완전한, 사람이 됐어요...!!”     


아리엘은 리에나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아리엘이 하는 말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지만, 리에나는 아리엘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인간의 심장을 찌르라는 말은 인간으로 변한 아리엘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에릭과 리에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아이엘은 결국, 스스로를 구원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카이한의 에릭 왕자와 사로 왕국의 리에나 공주의 성대하고 화려한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리에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이었고, 아리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들러리가 되어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후 카이한은 대륙뿐만이 아니라 해상에서도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바다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아리엘의 조언으로 더 이상 폭풍우로 백성이 잃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덧>

세계적인 문호의 작품에 딴지를 건다는 게 우스운 일이겠으나, 개인적으로 안데르센 님의 작품 중 가장 아쉬운 작품이 바로 <인어공주>다. 이 작품에서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의 계기가 단지 '외모' 이기 때문이다.

잘생기고 멋진 왕자와 예쁜 공주.

특히 왕자를 해변에서 만난 이웃나라 공주에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인물에 대한 묘사도 고민도 없다.

그녀는 그저 자신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잘생긴 왕자의 말 한마디에 쉽게 결혼을 결정짓는다.

주인공 아리엘에게도 아쉬움은 많았다.

고작 15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치더라도, 잘생긴 남자에게 한눈에 반해 자신의 모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수 있다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불만이었다.

사춘기와 반항이 왕성한 시기라 치기에 빠져 일을 저질렀다고 치자. 과연 한순간의 후회나 그리움도 없이 그 얼굴 반반한 왕자를 위해 물거품으로 사라질 수 까지 있다...?

동화를 동화로 보지 않고 어른의 계산으로 따지려니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좀 더 이유 있는 캐릭터가 되었으면 했다. 특히 소모적으로 쓰이는 이웃나라 공주도 그녀만의 서사와 이유가 있었으면 했다. 반반한 얼굴의 왕자 때문이 아니라, 그가 원해서만이 아니라, 그녀들이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에 의해 진행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단지 외모 때문만이 아닌 인물의 행동과 성격,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이 글을 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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