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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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한 세계가 다른 셋이 예라의 차 안에 존재했다. 운전석에 예라, 조수석에 제이, 뒷자리 정민까지.
병원으로 가는 동안 정민은 병원에서의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예라는 현재 정민 외에 다른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셋 다 그 부분이 가장 의아한 지점이었다.
정민은 예라에게 병원에 도착한 순간부터 자신이 보이는 걸 티 내지 말라고 했다.
"귀신 들러붙을까 봐?"
정민이 대답하기도 전에 똑똑한 제이가 먼저 이유를 답했고 예라는 역시- 하며 기특해 했다.
정민에 의하면 병원에는 그와 같은 이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했다.
<인간 세상에 미련이 남은 귀신들도 많아. 화가 나 있는 귀신도 많고. 귀신이 보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말하고 싶어서 계속 주변을 맴돌거나, 화풀이할 수도 있고>
다른 존재가 안 보인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볼 수 있고, 그런 자신이 다른 존재라는 사실이 정민은 미안했다. 저 때문에 그녀가 평범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주의와 확인을 하는 사이 차는 병원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차에서 내린 예라와 제이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병원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다른 존재들을 의식해서인지 그곳을 걸으며 이토록 어색해보긴 처음이었다.
정민은 조금 떨어져 주변을 둘러보며 두 사람을 따랐다.
주차장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는 존재들이 정민의 눈에 띄었다.
이 시끄럽고 매연 많은 데가 뭐가 좋다고.. 귀신들 취향도 참 다양하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차에 관심이 많은 귀신은 주차장을 마치 자동차 전시장이라도 되는 양 구경하곤 했다.
살아생전 타보지 못한 비싼 자동차가 주차되는 날이면, 우르르 몰려가 먼저 운전석에 앉으려 한바탕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어떨 땐 밀고 밀치다 자동차를 툭 쳐서 시끄럽게 자동차 경보음이 울리기도 했다.
주차돼 있던 차에서 혼자 소리가 나도 사람들은 보통 신경 안 쓰고 지나가거나, 주차장에 숨어 사는 고양이가 그랬나 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덕분에 귀신들은 눈치 보지 않고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예라와 제이는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빵집. 꽃집과 분식점 등이 있는 병원 건물 지하 동으로 들어섰다.
뒤따라 정민도 건물로 입장했다.
역시, 많다.
생사가 결정지어지는 병원이라는 공간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저승의 존재들이 많았다.
두 여자의 뒤를 쫓아가는 정민을, 어떤 귀신들은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다.
귀신이어도 눈은 달렸기에, 타고난 미모의 예라와 세련되고 화사한 제이가 나란히 걸어가자 한 번씩 힐끗거리거나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새끼들, 보는 눈은 있어서.. 조용히 해라 다들..'
마치 그녀들의 보디가드인 양 정민은 빡 인상을 썼다.
빵집 앞에는 뛰어다니는 어린 귀신들도 보였다. 정민이 있던 병원도 그랬고 특히 소아과 병동 근처는 거의 어린애들뿐이었다. 어린애들은 자신이 많은 시간을 보냈고, 힘들었고, 가끔 즐겁기도 했던 그 병동을 죽어서도 잘 벗어나지 못했다.
서로 얼굴을 아는 경우도 생겼다. 같은 병동에 있다가 며칠 사이, 혹은 몇 달 사이로 죽음을 맞은 아이들은 또 다른 세상에서 서로를 알아보기도 했다.
더는 뾰족한 주삿바늘의 공포를 느끼지도, 아프지도 않은 상태로, 어린 귀신들은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과 함께 나름 재밌는 병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어느새 예라는 제이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정민인 잘 따라오겠지...?'
예라는 사람들을 둘러보는 척하며 정민이 가까이에 있음을 확인했다.
땡-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를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게워지고, 그 빈 속으로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찼다.
정민도 닫히는 문을 통과해 무사히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안쪽에 서 있던 예라는 곁눈으로 정민이 탄 걸 확인했지만 티 내지 않았다. 절대 티 내지 말라고 했으니까.
띵- “6층, 6층입니다”
안내에 따라 예라는 제이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렇게 기계가 말도 잘하는 세상인데, 눈에 보이는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공존한다는 걸 누가 믿을까.
첨단 의료장비와 기술로 가득한 병원에 들어와 보니, 예라는 지난 새벽까지 함께 떠들었던 정민의 존재가 사뭇 새삼스러웠다.
“잘 따라오고 있는 거지..?”
제이는 예라에게 눈짓하며 복화술 하듯 물었다.
“응”
예라도 제이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하 선생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라와 제이가 돌아보니 임헌규 샘이었다.
“와! 하샘을 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
깜짝 선물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으로 헌규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정민은 더 다가오지 않고 자리에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