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cicak(찌짝)

by 타프씨

칸 영화제 말고 칸 광고제가 있다.

정확히 몇 년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상작 중 <도마뱀의 사랑>이라는 광고가 있었다.

절절하게 사랑하는 두 도마뱀이 만나 끌어안는 순간 바닥이 갈라지며 한 마리가 밑으로 떨어진다.

아래 평상에는 남자 몇몇이 앉아 체스 게임 같은 걸 하고 있었고, 사랑하는 애인이 떨어진 그 보드로

남아있던 도마뱀도 떨어진다. 그 광고는 잘 갈라지지 않는 천장 보드 광고였다.

(유튜브에도 검색하면 나오니 한번 감상해 보시길~^^)


이 광고가 더 재밌게 느껴진 건, 광고에 등장하는 도마뱀이 친근하기 때문이다.

덥고 습한 기후의 동남아 지역에서 바퀴나 개미만큼이나 쉽게 집에서 볼 수 있는 게 바로, 이 도마뱀이다.

인니에서는 이 작은 도마뱀을 cicak(찌짝)이라 부르고, 좀 더 큰 놈을 toke(또게)라 부른다.

또게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게코 도마뱀이라 보면 된다.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이 찌짝이 만큼 공평한 놈도 없다. 좋은 집이건 허름한 집이건, 값비싼 호텔이건 지저분한 모텔이건 상관없이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처음 주택에서 살 당시, 난 매일 발성 연습하듯 비명을 질러댔다.

문을 열고 나오다 파르륵- 벽을 타고 도망가는 모습에 꺅-

소파에 앉아있다가 천장에 붙어있는 모습에 꺅-

주방 문을 여는 순간은 가장 높은 데시벨로 꺅-----

주방이 가장 심했던 이유는, 실외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뻥 뚫린 공간에 심지어 먹거리들이 있는 곳이다 보니 찌짝이들의 가장 최애 장소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주방 문을 여는 순간, 담장을 타고 들어온 길고양이나 서너 마리의 찌짝이들이 예고도 없이, 또 무지하게 빨리 움직인다면, 아마 마동석이었어도 욕 한 바가지는 내뱉었을 거다.


결혼하고 바로 임신을 했던 나는 이 갑작스러운 찌짝이들의 움직임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고, 남편은 수시로 집안에 울려 퍼지는 내 비명소리에 애라도 떨어질까 노심초사했다.

허락 없이 들락거리는 길고양이와 찌짝이들을 없애거나 차단할 방법은 없었다.

얼마 후, 진짜 이러다 애가 떨어질까 싶어 나름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

아침에 주방으로 내려와 문을 열기 전에 발로 문을 차고 흠!! 크게 소리를 내는 거였다.

문을 차면, 거의 그와 동시에 주방 안에선 뭔가 푸다닥하는 소리가 지나갔고, 잠시 후 문을 열면

쓰레기통이 엎어져 있거나 싱크대 선반에 놓아둔 과일이 흐트러져 있곤 했다.



찌짝이는 이곳 사람들과는 아주 친근한 동물이다.

해충이나 벌레를 잡아먹어주는 이로운 동물로 여긴다.

우리가 어릴 때 산 토끼 토끼야~를 불렀듯, 이곳 어린아이들도 찌짝이가 주인공인 동요를 부르며 자란다.

찌짝이 들은 웬만하면 벽이나 천장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데, 만약 떨어진다면 불길한 징조로 여겨진다.

특히 잠을 자거나 누워있는데 찌짝이 이마나 몸 어느 부위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다면, 수일 내에 그 사람 주위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 믿는다고 한다.

찌짝이라는 이름은 그 애들의 울음소리로 지어졌다고 한다. 우는 소리가 찌짝 찌짝 같아서 라는데... 개인적으로 그 이름을 모르고 그냥 소리를 들었을 때는 떽떽떽떽에 더 가깝게 들린다.


또게는 좀 더 큰 사이즈에 색도 찌짝이 보다 조금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찌짝이와 달리 또게들은 약간의 공격성을 띠고 있다고 하니, 발견한다면 괜히 성질을 돋우지 말고 그냥 모른 척 지나치시라.^^

또게 역시 울음소리가 또게또게 처럼 들려서 지어진 이름이라 하는데, 한번 시작한 울음이 홀수번 울다 끝이 나면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고 한다.

또게또게또게또게또게또게또게또게또게~

역대 어느 대통령이 선거 전날 밤 잠자리에서 이렇게 9번의 또게 울음소리를 듣고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예상했고 실제 대통령이 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도 전해진다.

또 우리가 나뭇잎을 따며 사랑한다 안 한다를 점치듯, 또게 울음소리를 들으며 사랑한다 아니 다를 점치기도 한다고 한다. 사랑은 역시 식물에 기대고 동물에 기대 점을 쳐야 할 만큼 어느 지역 어느 인종에게나 어려운 문제였나 보다.



나를 비롯해 많은 교민들은 보통 인니에 와서 생전 처음 찌짝이를 만났다.

그러다 보니 우리 눈에 그 애들은 깜짝깜짝 놀래키는 꼬리 달린 큰 벌레처럼 여겨졌다.

개미나 바퀴처럼 신문을 내리쳐 잡기엔 동물같이 크고, 그냥 손으로 잡기엔 벌레같이 징그러운 그런 존재였다.

난 일단 놀라는 순간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기 바쁘다 보니, 보통 뒤처리는 남편의 몫이어서 한 번도 내 손으로 잡아 본 적은 없다.

간혹 에프킬라 같은 모기나 바퀴약을 뿌려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경우 잠시 기절한 찌짝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심지어 변기에 내려 버리기도 한다고 한다.


처음엔 그 잔망스러운 움직임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무서웠는데, 지금은 무섭다는 생각은 없다. 언젠가 졸고 있던 건지 벽에 붙어 한참을 움직이지 않던 찌짝이를 가까이에서 본 이후로 무섭다는 감정은 접어둘 수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본 찌짝이는 생각보다 귀여운 모습이었다.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놈들이 하필 귀엽게 생겼어서, 잡아 죽일 생각은 접게 된 것 같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온 후로는 훨씬 적은 찌짝이 들을 만나고 있다.

얼마 전, 간만에 한 놈과 마주쳤다.

싱크대 수저통이 들어있는 서랍장을 여는 순간, 나보다 더 놀란 것처럼 엄청 높이 튀어 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도망가는 찌짝이때문에 오랜만에 고음을 질러봤다.

작고 잽싼 그놈은 어디로 간 건지 감쪽같이 사라졌고 난 경고하듯 잠시 부엌에 서서 보이지 않는 찌짝이에게 호통을 쳤다. 어디 또 그렇게 갑자기 나오기만 해 보라며!


남편은, 아마 걔는 내가 더 무서울 거라며 이제 그만 좀 친해지라고 한다.

친해지려면 눈이라도 마주쳐야 할 텐데, 그러기엔 심하게 빠른 녀석들이다.

아마 내가 이곳을 떠날 때 까지도 이놈들의 깜짝쇼에는 여전히 환호를 보낼 것 같다.


난 너희를 싫어하지 않아. 물론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우리 자주 마주치지만 말자 찌짝이들아.

눈에 띄지 말고, 잘 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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