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수. supir,sopir(수삐르,소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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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프씨

평화로운 인니 생활을 위한 두 가지 기본 조건은

얼마나 나와 맞는 기사와 식모를 만나느냐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교통이 전무하다시피 한 이곳에서, 기사는 내 발이 되어주는 아주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버택시가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교민 가정에는 남편의 회사 출퇴근 용 차량 외에

아이들 통학이나 와이프들이 쓸 수 있는 용도의 개인 차량이 존재한다.

기사들은 보통 오전 일찍 출근해 열쇠를 받아간다.

언뜻 보면 참 위험한 상황일 수 있다. 내 차키를 통째로 쥐어주니 말이다.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할 것 같지만,

아는 집 기사 소개로 온 친구라는 사람에게 만난 지 하루 이틀 만에 우리 집 차 키를 친절하게 손에 쥐어주는 게 현실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받아 간 키를 들고 그대로 날라버리는 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새 차를 뽑은 지 일 이주도 되지 않았고, 이전 차보다 비싼, 자동으로 쓱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런 고가의 차였다.

새로 채용한 기사는 그 차를 몰고 그대로 달아나 버렸고, 결국 찾지 못했다.


남편의 지인 분도 차량 도난을 당했었다.

보통은 와이프들이 주로 사용하는 집 차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그분 본인의 차량을 기사가 들고 날랐단다.

이곳에서 꽤 오래 사셨고 사업을 하면서 경찰, 공무원 몇 명 정도 인맥을 만들어 놓았던 그분은 경찰을 동원해 결국 그 도난 기사를 찾긴 했다.

잡았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가보니, 거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반쯤 죽여(-_-;;) 놓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난당한 차는 찾을 수가 없었다.

차를 훔쳐 자카르타를 벗어나면, 이미 브로커들 손에 넘겨져 대부분 쓸만한 부품들은 사라지고 차는 찾을 수 없는 어딘가에 버려진다고 한다.

그런 일들을 조직적으로 하는 큰 손들이 있고, 상태가 좋은 차의 경우엔 그대로 한국만큼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로 팔려 나가기 때문에 잃어버린 차를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다.

훔친 기사의 경우, 그에겐 크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은 수수료를 받고 그들에게 차를 넘기면 그만인 셈이다.

당시 경찰은 지인에게, 차는 어차피 찾지 못하니 속상함이라도 풀 수 있게 그 기사를 패라면 패주고 손모가지를 자르라면 잘라주겠다고 했단다.

남편을 통해 이 얘기를 전해 들으며, 난 경찰이랑 짜고 치는 고스톱 아냐?! 했었다.

너무 비약일 수 있으나, 그 속은 알 수가 없으니 결국 당한 사람만 열 받고 끝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위험해 보이는 기사를 안 쓰면 안 되나.. 싶으실 텐데

물론 기사를 쓰지 않고 직접 차를 몰아 학교에 등교시키고 장 보러도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많진 않지만,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운전하고 다녔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을 안 해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의 도로 상황이다.


이곳 도로에는 차 반, 오토바이가 반이다. 시골로 갈수록 오토바이가 더 많이 달린다.

베트남처럼 오토바이가 다니는 차선을 따로 지정해 차들과 섞이지 않는다면 좀 생각해 볼만 하겠다.

하지만 이곳은 빽빽한 차들과 그 틈을 기가 막히게 비집고 들어오는 실타래처럼 이어지는 오토바이들로 도로는 혼잡 그 자체다.

한국에서 운전대를 몇십 년 잡으셨던 나름 베테랑 아빠도 이곳의 도로를 보시고는 입을 떡 벌리셨다.

동남아의 오토바이 상황을 듣긴 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놀라우셨나 보다. 도리어 그런 대혼잡의 모습에 비해 사고는 별로 안 나는 거 같다며, 당신은 여기서는 절대 운전 못하시겠다고 두 손을 드셨다.


이 야생의 도로에서 사고 없이 운전을 해야 하는 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사고가 났을 상황에서의 위험 때문이다.

이곳도 한국인이나 외국인들이 많아져서 예전보단 덜하지만, 접촉사고로 상대 기사와 실랑이를 벌일 경우

외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받는 불이익이 있다.

이곳엔 '거리 재판'이라는 게 있다.

나는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나보다 오래 이곳 생활을 한 남편은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슬람이 주 종교인 이곳 사람들은 평소 화도 잘 안 내고 꽤나 순수한 편이다.

하지만 어떤 원인으로 욱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우르르 다 같이 들고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도로에서 차량 사고로 외국인과 현지인이 실랑이를 벌이게 되면, 주변에 지나가던 현지인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들 편에 선다는 거다.

비단 외국인이 아니라 현지인들끼리도 어떤 시비가 붙어 싸움이 일어났을 때,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한쪽 편에 서게 되면 상대가 되는 사람은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하게 되고, 그럴 땐 경찰이 도착한들 그저 보고만 있다고 한다. 그들만의 거리 재판이 끝나고 나서야 경찰도 자리를 뜬다고 한다.


나도 운전하고 다니겠다고 했을 때 남편이 가장 걱정 한 건 그런 부분 때문이었다.

혼잡한 도로도 문제지만, 만약의 경우 현지인과 접촉사고라도 나게 되면 무서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 직접 목격했던 사람으로서 절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이곳 교민들은 기사가 운전하던 중 접촉사고가 일어날 경우에도, 절대 본인이 나서서 얘기를 하려 하거나 차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웬만하면 기사들끼리 협상하도록 두고, 가능하면 상대 쪽이 원하는 대가를 치르고 빨리 그 자리를 뜨는 게 훨씬 안전하고 현명한 방법이다.



지금까지의 얘길 보면 이곳 사람들, 특히 기사들은 죄다 험하고 겁나는 대상처럼 느껴질 것 같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다수의 기사들은 평범하고 알라신을 진심으로 숭배하는 착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네 기사 아저씨도 거의 8년 가까이 함께한 선한 인상의 기사였다.

물론 자잘한 문제들은 항상 발생한다.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건,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다. 월급을 미리 당겨 달라고도 한다.

생각해보면 한 집의 가장인 그들의 월급으로 생활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건 이해되지만, 단순히 채용자와 채용인의 관계만으로 보자면, 돈 문제는 꽤나 골치 아픈 문제이다.

일도 잘하고 성실하고 나쁜 사람이 아닌 건 알겠는데, 수시로 가불 해달라, 돈을 좀 꿔달라고 하면, 결국 나중에는 삭감해야 할 한두 달치 월급을 항상 바닥에 깔고 지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매일 봐야 하고 당장 애들 학교 등교와 직접적으로 상관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기사 문제는 항상 교민들 대화에 빠지지 않는 얘깃거리가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좀 덜 골치 아프게 지내오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개인 차량이 없고, 때문에 개인적으로 기사를 고용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출퇴근할 때 사용하는 차와 기사를 아이들 등하교에도 쓸 수 있게 해 주신 사장님 덕분에 내가 따로 기사를 채용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일, 돈 문제로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일도 겪지 않았다.

회사 소속인데 우리 집 개인적인 일까지 해주는, 적어도 내게는 그런 고마운 존재였다.



에르윈.

내가 와서 두 번째로 만난 회사 기사였고, 큰애를 임신해 출산하고부터 몇 년 전까지, 거의 15년 가까이 함께한 고마운 기사가 있었다..



(글이 길어져 나눠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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