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출퇴근 생활을 안 한 지 이제 두 달 지나 세 달째가 되어간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하고 사람들에게 그 생각을 이야기할 때 주로 들었던 이야기는 다음에 무엇을 할지 정하고 나가라는 이야기였다. 지금 여기에서 다음을 준비한다는 게 말이 쉽지 성실함과 집중력이 무기인 내게는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코로나만 아니면 미국 사는 동생네 가서 두세 달은 지내다 왔겠지만, 코로나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대신 거의 매일 산에 가고, 각종 병원에 다니고, 미뤄덨던 일들을 처리하며 지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생뚱맞은 건 개인사업자를 낸 일인 것 같다. 조직 생활을 하며 개인사업을 해볼까 가끔 생각해보기는 했으나 시스템을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 내는 데 자신도 없고, 게으르기도 해서 엄두도 못 냈다. 무엇보다 나의 고유한 콘텐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크다.
사업자를 내기로 마음먹고 나니, 일의 순서상 회사 이름을 만들어야 했고, 사업자 등록을 국세청에 온라인으로 신청해야 했다. 일단 이 회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는 게 먼저이나, 가장 골똘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을 뒤로 미뤄뒀다. 사업체를 통해 내가 무엇을 구현하고 싶은 지 나름 스피릿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골라 후보군을 만들었고, 친구들과의 카톡 대화방에서 최종 '호미 homi'로 낙찰되었다. 이름을 호미로 정하고, 사업자를 신청하니 신청한 당일 사업자등록증이 나왔다. 원래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나 싶게 순식간에 호미의 대표자가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 근황을 이야기하다 보니 회사 창업한 이야기가 나왔고, 당연하다는 듯 명함을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명함을 만들어야겠구나 생각하고 보니 호미의 로고도 만들어야 하고, 홈페이지도 만들어야 하고 할 일이 또 생겼다. 전에 같이 일해본 디자이너 분과 오랜만에 만나 명함을 의뢰하게 되었다. 회사를 창업하게 된 계기와 그간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두서없이 말씀드렸다. 다행히 나의 개떡 같은 설명을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고는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작업 다 하고 연락드리겠다고 하시고는 가셨다. 아직 연락은 없으시나 곧 연락이 올 것 같다.
완벽주의 성향 탓에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사전 조사가 돼야 하고, 일의 경로를 두세 개는 생각 하고서야 본격적으로 일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정작 나와야 할 사업계획은 없고,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처리하고 있는 중이다.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편안하지가 않다. 이 와중에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이 나의 무엇을 팔 것인가이다. 그간 내가 배워오고 익혀왔던 것을 외부 세계가 아닌 나에게 적용해야 하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기에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한 건 회사에서 필요한 글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데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정리되고 정제된 글이 아니라 당분간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올려볼 생각이다. 쓰다 보면 정리가 되겠지 하고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