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Z May 15. 2021

단편의 단편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은 여자

 잘 늘어나는, 아니 이미 한참 늘어나 이제는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여자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머리는 집게 핀으로 대충 말아 올렸었고, 얼굴엔 화장기가 거의 없었으며 표정은 늘 세상사에 지쳐 보였다. 그 여자는 내게 꽤나 자주 목격되었었는데, 어릴 적 나는 그냥 그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게 되는 것이겠거니, 하며 더 깊은 생각에 미치지 못했었다. 하기야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 본 일이 아니고서는 어떤 일이든 속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도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이 나이에서야 느끼고 있으니. 그것은 오랜 시간과, 그 시간에서의 경험이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인지 모른다.


 어쨌든 그 여자는 꽤나 지쳐 보였다. 그런데 얼굴에 핏기라던지 뭔가 삶에의 의욕조차 사라진 것처럼 지쳐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저렇게 다닐까? 조금 더 신경 쓸 수도 있지 않을까?' 10대와 20대의 어린 눈에는 겉으로 드러난 그 사람의 외형만 보일 뿐이었고 나는 그렇게 그 여자를 자기 관리를 포기한 무기력한 아줌마쯤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무심한 마음속의 한 마디를 뒤로한 채 39살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아이 둘의 엄마가 된 모습으로. 바로 그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서.



 부쩍 더워진 날씨 때문에 여름옷을 꺼내고 겨울 옷은 다시 집어넣기 위해 옷을 정리하다가, 특히 집에서 입는 내 옷들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알 수 없는 기름때들. 옷들마다 훈장처럼 새겨진, 세탁을 해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그런 얼룩, 흔적들 말이다. 이 옷에도, 저 옷에도 먼저랄 것 없이 새겨져 있는 그 기름때들을 보다 보니 20여 년 전 내가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은 여자를 보며 떠올렸던 감정들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아이들을 위해 주방에서 동분서주하는 엄마들의 옷가지에 튄 기름, 김치 얼룩, 그리고 아이들이 손과 입에 묻힌 채  내 옷을 잡으며 무심히 묻히고 마는 아이스크림, 주스 얼룩들. 아이들과 놀이하며 묻히는 물감들... 도처에 내 옷을 위협하는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24시간의 연속에서 필요한 건 가장 맘 편히, 더러워져도 스트레스받지 않을, 그래서 아이들에게 짜증 한 번이라도 덜 낼 수 있는 그 후줄근한 티셔츠가 아니었을까. 아이들을 케어할 때 내가 입어야 할 옷과, 그러지 않아도 될 때 내가 입어야 할 옷을 명백히 구분하게 된 지금에서야 난 그 후줄근한 티셔츠의 의미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대와는 확연히 다른 체력으로 힘겨워할 때마다, 옷이 주는 무게마저 너무도 무거워 속옷까지 다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 지금에서야 난, 그 후줄근한 티셔츠를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그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나서야...


 타인의 사정은, 그 진짜 속내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 그와 거의 동일한 일을 겪지 않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임을 나는 그 흐릿한 기억 속에서 뚜렷이 각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어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누군가를 보아도 혀를 끌끌 찬다거나, 헛웃음을 짓는 등의 행동은 할 수 없게 되었다. 모두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음을 그저 생각할 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