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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Z Jan 11. 2022

나의 시간을 나눠 준다는 것

언젠가 어른이 될 서로에게


엄마들은 말이야.

아이들을 처음 키울 때, 자신이 가진 시간의 거의 전부를 내려놓게 돼.


임신 초기에는 자기가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았던 다른 음식을 찾기도 하고,

또 정말 맛있게 먹던 음식을 먹고 그것을 다 게워내기도 하지.

자기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입맛’을 바꾸게 돼.

다행히 그 입맛은 아이를 낳고 돌아오긴 하지만, 그렇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나의 아이덴티티가 위협받는 느낌을 받지.


그러다가 임신 초기가 지나고 중기가 지나면

자신의 몸을 내놓을 준비를 해야 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온몸의 가려움증을 견디기도 하고,

밤을 꼴딱 새도 멀쩡하던 체력은 졸음으로 가득 차서 내내 누워서 잠만 자도 피곤해지기도 하지.

그러면서 내 배꼽 위로 진해지는 임신선, 그리고 겨드랑이에 생기는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여자로서의 아름다움 또한 원하지 않아도 반납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지.


임신 후기에 다다르면 생명의 위협도 종종 느껴.

10킬로짜리 수박은 족히 넘을 것 같이 나온 배를 보면

뱃속에서 꼼지락대는 아이의 모습을 행복하게 상상하기보다는

점점 갈비뼈가 받치고, 또 숨 쉬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봉착하지.

바로 누워서는 잠이 올 수가 없어 좌로 우로, 새벽 내내 몇 번씩 뒤집기를 하며

빨리 뱃속에서 아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져.

나만 살고 있던 내 몸속에,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

너무나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양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인지

그 상황에 직면한 후에라야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돼.


그런데 어찌 보면 임신 10달의 과정은,

마치 그 뒤의 출산과 육아를 위해 단단한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싶어.


출산의 전후 과정은,

사실 예쁜 아가를 만난다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 있기에 감당할 수 있는,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때로는 나의 목숨을 담보하기도 하는 엄마의 도전이야.

그리고 출산으로 인해 몸을 회복해야 하는 엄마는, 엄마라는 이유로 곧 다시 일어나야 해.

다른 때 같았으면 ‘진짜 너무너무 한 거 아니냐!’고 소리라도 쳤을 상황이지만

나만을 믿고 태어난 아가에게 새벽마다 2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우유를 주고,

이유 없이 우는 아이를 안아 달래고, 한두 시간에 한 번씩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는 일의 무한 반복을 견뎌야 하지.

그렇게 출산 후 거의 쉼 없이 육아를 시작해야 하는 엄마들에게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은 정말 찰나에 불과하지.

10달 동안 벌어진 내 몸의 변화가 14일간의 쉼으로 전부 회복될 수는 없으니,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몸을, 무리해서 쓰게 돼. 그렇게 ‘엄마의 인생’이 시작되지.


필연적으로 아이를 위해 나의 에너지를 나눠야 하는 인생.

어때, 이런 나에 대한 뿌리가 흔들리는 경험. 상상하기 어렵지?


그래서 엄마는 그 시간을 겪으며 엄마의 몸도 마음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어.

그 시간들을 거쳐 엄마는 한동안 포기했던 나 자신에 대한 시간을,

너희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가게 된 지금, 조금씩 가지고 있어…

나에게 오롯이 주어진 이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도, 사실 늘 자유로웠던 그때엔 미처 몰랐지.

그 감사함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이젠 엄마도 참 많이 절실하고, 소중해졌어.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알아?

너희가 조금 컸다고, 엄마가 나의 시간을 절대적으로 사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 것 같아서.

그래서 어쩜 너희에게 주어야 하는 엄마의 시간을,

지금 너무 쓰고 있지 못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미안하다’는 말이야…


이제 조금씩 일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일을 해야 한다는 당당함에, 너희와의 시간을 조금 소홀히 했던 것 같아.

시간의 총량보다는 하루에 30분이라도 ‘제대로 ‘놀아주는 게 중요하다는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엄마 일해야 해.’ , ‘엄마 공부해야 해.’ 라며 자꾸 미뤄두었던 너희와의 시간을 내가 너무 합리화한 것은 아닌지.


너희를 만나기 위한 엄마의 이런 시간들이 있었다는 걸,

변명하려 했다기보다는, 설명해주고 조금의 이해를 구하고 싶었어.

아마 이렇게 말해도 너희는 지금 놀아주지 않는 엄마가 그저 서운하기만 할 아가지만.  

그래도 그냥 엄마가 이런 마음들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는 걸 그냥 오늘은 한 번 얘기해주고 싶었어.


나의 시간을 나눠준다는 것이 그 자체로 얼마나 큰 사랑인지…


- 22. 1. 10

언젠가 어른이 될 서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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