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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Z Feb 05. 2022

안부의 힘

단편의 단편


“난나, 새해 복 많이 받아

 괜히 생각나서 카톡한다.

 애기들 키우면서 잘 지내지?”


함께 일했던 선배 언니의 연락.

반가운 언니의 카톡에 갑자기 가슴이 뛴다.

내가 아이 엄마가 되며 놓아야 했던 그 일을

여전히 하고 있는 그 선배.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난 마치 그동안 사라진 줄만 알았던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일시에 커지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 나도 일을 했었지. 그리고 꿈도 꾸었었지.


자꾸만 반복되는 아이들과의 일상에서

내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나의 일과, 직업인으로서의 삶은

누가 딱 그 부분만 오려 놓은 것처럼,

감쪽 같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때론 억울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으며, 절망스럽기도 했다.


때론 둔감해졌다가, 또다시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이젠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가도 견딜 수 없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란 이름으로 애써 누르고 있었다.

매일매일을 아이들과 살아내야 하니까.

나의 그런 혼란스러움까지 챙길 여력은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 나의 일에 대해 물으면,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서 이야기하다,

이야기를 다 끝내고 나면 뭔가 허탈해지는 기분이었다.


한 때는 엄청난 부자였지만,

이제는 빈털터리가 된 사람이 ‘나도 한 때는 잘 나갔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마도 육아로 인한 자신감 상실 탓이었을 것이다.

말해놓고 뒤끝이 뭔가 쓴, 그런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 집중을 하다가도

반복되는 정리와 정리에 지쳐갈 때,

마치 내가 일을 했던 과거들이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정체됨을 견딜 수가 없어서

가능한 일을 가능한 선에서 하기도 했지만,

신데렐라가 12시 시계가 땡 하고 울리면,

호박마차는 호박으로, 드레스는 다시 넝마로 변하듯

나 역시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의욕적으로 일을 했던

그때의 나를 알고 있는,

그 시절의 나를 아는 선배가 나의 이름을 부르니,

비로소 나의 존재가. 생존이 확인되는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

그리고 그 시절이 그리운 마음이 뒤섞이다가,

급한 마음에 내가 더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는다.


너무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선배의 얼굴도,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었던 그때의 나도…


마치 무전으로 나의 생존을 확인해 준, 구조대원처럼.

짧은 문자로 전해진 안부의 말을 꼭 붙들고 싶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그 통화 내용을 신랑에게 설명하는 내 목소리 톤이

한껏 올라가 있다.


‘너 기분이 참 좋아졌구나?’

스스로 느끼고는 조금 멋쩍어졌다.


그래. 1이었던 내가

10000만큼 커 보였다가,

때론 0.000001 마이크로만큼 작아 보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존재하니까.

사라지지 않아.








안부를 묻는다는 건,

때론 절망 속에 있는 상대를

거뜬히 건져낼 만한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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