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손톱을 숨기며 출근했다

두 세계 사이에서

by una

아침 6시 50분. 더 자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내 몸뚱이를 간신히 달래 지하철을 탔다. 이른 시간이지만 오늘 내 자리는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남은 좌석을 뺏기고 지하철 가장 끝칸 구석으로 갔다.


덜컹. 중심을 잡기 위해 손을 뻗어 차가운 은색 봉을 잡는 순간, 파란 물이 들어있는 내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저녁 쪽 물에 손을 담근 탓이었다. 파랑을 내는 마디풀과 식물에서 온 염료다. 젠장, 제대로 안 지워졌구나.


파란 손톱은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1시간 10분 남짓 되는 출근길 내내 손톱을 긁으며 색이 떨어져 나가길 바랐지만 헛수고였다. 누군가 손이 왜 이러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취미로 공예 체험을 했다고 할까, 아님 그저 염색약이 묻은 거라고 할까. 다행히 하루 종일 내 손톱에 관심을 갖는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다...) 그래도 퇴근하는 순간까지 파란 손톱이 계속 거슬렸다.


꽤 오랫동안 두 세계를 분리하려 부단히 애썼다.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쪽 곁에 있는 나. 숫자로 가득한 IT 회사와 파랑이 가득한 작업실. 빠른 세계와 느린 세계.


나는 낮 시간을 보내는 세계에 쪽 염색이, 파랑이 조금도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 누군가 전 직장에 대해 물어볼 때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친한 동료가 주말에 뭐 했는지 물어보면 '시골집'에 다녀왔다고 대충 말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난 상상력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거짓말도 제대로 못 했다.


세상에 나와 회사에 들어가 사회생활이란 걸 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겐 차분하고 느린 쪽 염색의 시간보다는 매출 숫자가, 빠른 속도가 필요했다. 처음엔 면접에서 몇 번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내가 해낸 일들이 괜히 우습게 보이게 하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아 빠르게 관뒀다. 취업을 못해서 엄마 공방 일을 잠시 도운 정도로 받아들이는 면접관도 있었다. 시작도 쉽게 했겠지, 중요한 일도 안 했겠지 지레짐작하면서.


그렇게 이직을 하고, 커리어를 쌓으면서 두 세계는 점점 멀어졌다. 심지어 첫 번째 책을 출간할 때에도, 나는 반쪽짜리 세계의 나를 작가로 내세웠다. 혹여나 두 세계가 만나면 나의 노고와 성취들이 또다시 부정당할까 봐. 지워도 지워도 빠지지 않는 파란 손톱처럼, 그 두려움이 계속 거슬렸다.


최근 들어 자꾸 방황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별히 나를 괴롭히는 것도 없는데, 이유도 모른 채 길을 잃는 게 싫었다. 영국에 가면 편해질 것 같았다. 10대와 20대를 보낸 런던으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더 화가 났다. 그러다 문득 보였다. 나의 반쪽짜리 세계가. 어쩌면 여기서부터 잘못된 건 아닐까.


어제 오랜만에 다시 쪽 물에 손을 담가보았다. 미끌하고 차가운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파랑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이번엔 숨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