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질끈 감고, 그냥 딱 한마디만 하면 되.
누군가와 함께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 익숙함에 속아 당연한 것들을 잊어버린채 관성처럼 시간을 보내게 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에는 한편으로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심이라는 마음도 같이 자라나게 된다.
내겐 연애가 특히나 그랬다.
처음에는 낯선 누군가가 내게 주는 설레임이 참 좋았고, 시간이 지나다보면 둘 사이의 관계에서 자라나는 애정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 시간을 함께 해주는 내 옆사람에게 더 많은 걸 바라게 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때로는 내 기대가 꺾이는 순간, 나 혼자서 속상해하고 그러다보면 괜히 화가 나서 심술을 부리고 그러면 그때 나의 옆사람은 어쩔 줄 모른채 그런 나를 달래가며, 영문도 모르는 사과와 이해를 해주는 순간도 있었다.
나는 나에 대한 상대방의 이해나 배려가 너무나도 당연한, 어쩌면 의무에 가까운 내 머릿속의 원칙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대방에게는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처럼 내 세상에서의 규칙을 무조건적으로 휘감아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어렴풋 알게되었다.
사람마다 이해의 정도, 배려의 수준이 다 다른 것처럼,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텐데 나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잘 지내니까 당연히 나와 대부분의 면이 비슷하거나 같을거라고 생각하고, 너무 빠르게 상대방의 모든걸 이미 단정지어 버리며 나의 세상에 가두어 버리는 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때로는 짜증도, 속상함도, 기쁨, 나의 희노애락을 특히나 내 옆에 있는 상대와 함께 나누며, 서로의 이해도, 배려도 경험하고 느껴보면서 서로의 마음 범위를 더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한데, 나는 그 모든것을 당연하게 여긴채, 상대방이 내게 굴복하고 복종하기만을 바란것도 있었던 것 같다(내가 이렇다면 상대는 어떻겠는가, 상대 또한 마찬가지의 마음이었을터).
그러다가 순간 나의 민낯을 알게되면 괜히 자존심이 상해, 더 골을 부리거나 도망치거나 한다.
이런 순간 가장 필요한 말은 서로에게 필요한 건 무엇이다?!
어쩌면 '미안해'라는 단 한마디, 그리고 무언의 상대를 향한 '따뜻한 눈길'과 함께..
그러면서 내가 미안해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얘기하며, 상대방의 마음이 괜찮은지 어떤건지 살펴보며, 나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그러면 또 그 과정 속에서 나를 지켜보고 함께 해주고 있던 상대방의 고마움도 느낄 수 있는 건데 말이다.
그 '미안해' 정말 그 진심이 필요한 순간 그 한마디를 못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떠나고 나서는 다 부질없는 후회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시점부터, 혹시나 염려되는 대상이 있다면, '미안해', '괜찮아?' 정도는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 정도의 용기가 여전히 나지 않는거라면, 아직은 불편하다면, 하지만 그런 마음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걸 바란다는건 또 어느 한쪽의 '미안해', '괜찮아?'가 있다라는걸 마음 한쪽에 늘 기억하고 있기를.. 그리고 흘려가는 말일지라도 '고마워'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조금의 용기는 가지는 사람이 되길.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누군가들에게
'미안해,' 그리고 '너의 마음은 괜찮아?' , '그리고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를 지금이라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