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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나랑나 Aug 07. 2022

마음의 해우소, 감정 쓰레기통 말구

마음에도 출구가 필요해

몇일 전 일을 하다가 만났던 사람이 내게 물음을 던졌다.

"제 마음은 누가 그럼 봐줘요? 제 마음은 누구한테 위로받아요?"

어느 누구든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마주친 상대의 진심이자, 그동안은 스스로가 억눌러온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걸 어렴풋 느끼게 되었다.


그 얘기에 나는 순간 당황했고, 어쩌면 그 당황스러움은 상대가 그동안은 꺼내지 못했던 진심어린 마음이라는것이 느껴져 여기에 대해서는 꼭 뭐라도 그 마음에 반응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게 던져진 뜻밖의 공을 다시 상대에게 던져주었다.

"같은 일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내 스스로가 얘기할 수 있는 만큼은 그래도 남들에게 표현해보세요. 그것이 서로에게는 필요하고 어쩌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 수도 있어요."


누군가가 의도치 않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한 주내내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은 한 마디이자, 계속해서 답을 찾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맞다.

사람에겐 누군가의 위로도 필요하고, 때로는 마음을 아무 생각 없이 던져놓을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고, 편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순간도, 자유롭게 내 마음을 표현해볼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런 여러가지의 마음의 출구들이 사람에겐 필요하다.


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은 이런 마음의 출구들을 찾는걸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예 출구라는 것이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인식조차 못하는 사람들은 특히나 더 순간적이고 갑작스러운 마음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함께 더 동요되어. 자기 손에 쥐어진 냄새나는 혹은 더럽게 느껴지는 쓰레기를 빠르게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처럼, 자기 마음을 여기저기 아무에게나 던져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나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같은 행위로 마음을 다루게 되면, 내가 여러 사람들을 지켜보아온 결과, 그 마음은 일시적으로만 해소가 되고, 그 순간만 평화로워진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매일매일 쓰레기를 만들어내듯, 마음 또한 매일매일 경험의 이면에 있는 무언의 어떤 것을 생산해내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것들은 그만큼의 마음의 무게감소를 필요로 하여, 어쩌면 쓰레기로 치부되어, 계속 쓰레기통에 던져지듯 그 행위가 반복되어지는 것 같다. 불량식품인줄 알지만 일단은 그 순간이 주는 달콤함과 즐거움으로 그걸 소비하고, 이후 후회하며 자책하며 또 다른 불량식품을 찾고, 소비하며 계속 악순환의 고리에 편승하는 것 같다. 일단은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게 필요하고, 그래야 나는 편안해지니까 여기저기 쓰레기통을 만들고, 스스로가 그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채 그렇게 생활하다보니 버리는 것에만 익숙해져, 그 대상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사람은 누군가가 버려버린 누군가의 마음이 자기의 마음인 것처럼 느껴져 한동안 힘들어하기도 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며 멀어지려고 노력하거나, 혹은 안쓰러워서 곁에 있어주고 싶어하거나, 혹은 이 두가지 마음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혼란스러워 하기도 했다.


근데 저 질문에 내가 계속 곰곰히 생각하고, 또 떠오르는 메세지는 결국 이거였다.

"자기 스스로가 일단 위로해줘야죠. 내 마음을 내 마음처럼 찰떡같이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누군가가 내 마음을 위로해줄 순 있어도,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주고 알아줄 수 있는 누군가는 없다.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도, 내 말을 100%다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가능하고 어려운 일이며, 그 순간 이해를 받아서 편안해졌다고 해도 다시 또 다른 마음이 내 마음 속 문을 두드린다. 그럴 때 마다 마음에 대해 누군가의 위로를 구한다면, 나는 평생 내 마음을 위로해줄 누군가를 분명히 찾아다녀야만 한다.


위로의 대상이라고 찾았는데, 그 위로의 대상이 내맘처럼 위로해주지 않는다면, 또 내가 느끼는 마음의 서운함과 짜증스러움은 또 나는 어떻게 할 것이며, 그 다음으로 따라오는 나의 화나는 마음은 또 어떻게 할것인가? 상대방의 반응에 화가 난다고 해서, 내가 정당하게 화내도 괜찮은건가? 화가 나는건 어쩌면 내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기대가 꺾였기 때문에 드는 마음인건데, 상대는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또 나름 자기대로 최선을 다해 그 상대를 위로해준 사람의 마음은 어떡할건가?


그래서 감정의 쓰레기통도 어쩌면 필요할 순간도 있겠지만, 결국은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마음의 해우소이다.

해우소는 사찰에서 화장실을 이르는 말이지만,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라고 한다.(여기에는 몇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는데, 머리 숙여 아래를 보지 말아야 하고, 낙서하거나 침을 뱉지 말아야 하며, 힘 쓰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고, 외우고자 하는 게송이 있다면 외우고, 용변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나오며, 손을 씻기 전에는 다른 물건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해우소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뜻처럼 내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우리는 항상 마음의 무게를 지고 살기 때문에, 힘들고 복잡한 세상살이가 더 힘들고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 마음을 해소하더라도, 그 마음의 과정들을 살펴보며, 지나갔었던 비슷한 마음이 나에게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앞으로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려면 내가 일상생활에서 잠깐이라도 내 시간을 내거나 공간을 만들거나 해야하는데,  아마 그걸 모르는 사람들(찾고 싶지만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이 많은건지, 아니면 평소에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거기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안해봤어요)이 많은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혹시나,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저에게 여러분은 어떤지 알려주세요!).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들만의 방법을 찾아주고 싶고, 또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서 어쩌면 이 브런치에 글을 계속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 편으로도 내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여기저기 나만의 해우소를 만들어 놓고 살고 있는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나도 내 마음을 충분히 봐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조금은 알아서, 남들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때는 일단은 어떻게서든 혼자서 뭘 해보려고 하는 편이다(그렇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줄때는 괜시리 더 크게 기뻐하고 또 행복해한다).


마음의 출구가 있어야 내 삶이 좀 더 편해지고, 행복을 느끼기가 조금 더 쉬워지는 같다. 괜히 세잎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초록빛 풀밭에 가면 흔하게 여기저기 보이는 세잎클로버처럼 일상속의 행복은 고개만 돌리면 흔하게 찾을 수 있는 건데, 그것이 내 마음의 무게에 짓눌려서 일상의 행복을 발견할 때는 네잎클로버와 같은 행운처럼 느껴지는게 왠지 일상 다반사인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서 출발해야 마음의 해우소를 찾기가 쉬울까?

일단은 지금 내가 느끼는 것(몸의 느낌, 떠오르는 생각, 스쳐지나가는 감정 등)에 집중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의 마음은 현재 어떤가요? 어떤 생각이 들며, 혹은 어떤걸 느끼고 경험하고 있나요?"


이 질문에 하나씩 답글을 달 수 있다면, 해우소 찾기 게임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게임의 끝에선 자신의 해우소를 찾고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리겠지!


여러분의 해우소를 찾을 수 있도록 전 도와주고 싶어요. 왜냐면 해우소는 내게 행복을 선물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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