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쓱함과 민망함을 견디며 관계 속에서 실수하기
오늘 내가 진행하고 있는 사례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교수님의 피드백은 내가 여태껏 계속 고군분투하고 있는 내 삶의 숙제,
즉 모호함의 과정 속에서 상대와 현존하라는 것이었다.
"교수님 저는 너무 답답해요."
상대의 모호함, 불확실함을 견디기 싫은게 누구냐고 교수님이 물었다.
"접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너는 그 모호함을 견디는게 힘드냐고 물었다.
지긋지긋한 나의 관계 패턴으로 돌아간다.
"엄마하고의 관계요. 엄마가 불확실한걸 못견뎌요. 모호한걸 너무 불안해하고 힘들어해서, 제가 요즘 그걸로 엄마와 다투고, 갈등이 일어나서, 힘들어요."
내 불안의 주된 근원, 나의 결핍, 즉, 엄마와의 관계가 내 삶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해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심리적, 물리적 경계를 세우는걸 어려워했다.
물리적 경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나와 타인 하고의 공간적 거리감을 만드는 과정이며, 타인이 내 방에 들어올 때 노크를 한다거나, 전화를 할 때 미리 의사를 물어보는 등의 행위가 있을 수 있겠다. 나는 자라면서 이런 물리적 경계도 허술했다. 노크와 동시에 내 방으로 누군가가 들어오거나, 나의 타이밍을 상대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주의가 분산되서 상대방에게 짜증이 나거나, 순식간에 욱할 때는 화를 내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늘 잘못 한건 나였다. 그래서 나는 관계에서도 물리적 경계가 있다는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심리적 경계를 설정한다는건 나는 나대로, 타인은 타인대로 감정을 분리하여,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며 내가 관계 안에서 적극적으로 감정을 행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나와 타인과의 감정이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계 설정을 통해 나의 선, 타인의 선을 찾고 그 사이의 거리를 조율하며 타인과 관계해나가는 과정이 인간관계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 사이에서 심리적 경계가 있다는 인식 자체가 전혀 탑재되지 않은채 살아왔었다. 내가 심리학과 상담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이 두가지 경계 설정 자체가 애초에 어려웠기 때문에, 타인하고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어그러지면 물리적으로도 멀어지고, 심적으로도 갑작스럽게 버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너무 불안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상대에게 집착하거나 매달리게 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영향을 특히나 더 살펴볼 수 있는데, 이를 테면 연애상대, 그래서 내 연애관계의 패턴도, 그리고 헤어질때의 내 패턴도 유사했던 것 같다(하지만 지금은 그 패턴에서 벗어난 상태다. 내 애착패턴도 바뀌더라).
그래서 청소년기때 친구와의 관계에서, 특히나 단짝 친구가 생기면 거리가 멀어질까봐 걱정되고 염려되어 친구에게 나의 마음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해서 답답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애인과 멀어질까봐 내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며 지내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때의 나는 최선이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동안 내 개인상담을 받아오며, 관계에서 거리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고, 그 때부터 공간적으로 부모와 분리하고, 심적으로도 부모와 떨어지기 위해 여러 시도들을 해왔다.
그 결과 나의 욕구를 선명하게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나만의 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눈에보이지 않는 단계들로 이루어져서, 어느 순간 변화된 나를 내가 경험하고 느낄 때 알게된다.
부모와 공간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하니 내 욕구가 좀더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떤 것을 불쾌해하고 어떤 것을 흥미로워하는지, 어떤 활동을 할 때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내용의 대화와 상대를 좋아하는 지 등등 나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계속 관찰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분리되기 위해서는 특히 엄마에게 나의 주장을 더 명확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난 이게 ~~해서 불편해.", "엄마 나는 이거 안하고 싶어.", "엄마 나는 이거 얘기 안하고 싶어.", "엄마 이거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등등 그렇게 원치 않는 마음은 꺼내지 않을 수 있게 나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요할땐 공격도 한다. (다만 상대가 다치지 않는선에서 말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내가 표현하지 않는 지점이 불확실하고 모호하게 느껴지니 엄마가 불안감을 크게 느낀다. 그리고 그게 행동적으로 나에게 읽히기 때문에, 나도 신경이 쓰일 때가 종종있다.
그 지점, 즉 어떤 상황에서든지 모호하고 불확실한 순간을 경험할 때. 나도 견디는것을 어려워하고 불안해한다. 그래서 계속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걸려넘어지는 지점이다. 확실하지 않은 순간을 못 견디기에,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나의 속도로 달려가는 내모습. 그러니 상대가 다친다. 상대가 부담스럽게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가 흠칫거린다.
사실 내가 그 상황에 대해 많이 불안하고 걱정되는 거였다. 너를 잘몰라서, 너를 잘 알지 못해서, 너를 알고 싶은데, 너를 알아가는 방법에 대해 내가 잘 몰라서, 상대가 너무 궁금한데 어떻게 그 선을 만들면서 너와 함께 할 수 있는지 내가 잘 몰라서, 모르는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내가 쓰는 방어기제였다.
그래서 그럴 때 내가 느끼는 감정신호, 민망함을 경험하고, 머쓱함을 견디는 힘이 필요하다. 얼굴이 빨개지겠지, 상대방의 눈도 마주치기가 어렵겠지 부끄러우니까, 몸의 방향도 달라지겠지 쑥스러워서. 그렇게 궁금한 상대를 향해 엄청난 뚝딱거림을 행하게 되는 내모습이 있겠지. 그 순간을 나도 이제는 즐기면서, 바라보면서, 나의 실수하는, 어쩌면 인간미일지도 모르는 그 장면 속에 내던져야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결국 내가 원하는건 한가지
나는 너랑 친해지고 싶어요. 너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부터 한번 도전을 해볼 생각이다.
일단 필라테스 선생님하고의 관계부터 시작!
이건 우연히 알게된 나를 닮은 한 사람을 통해,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좀더 선명하게 하게 된 과정이라 자기 자리에서 자기일 열심히 하고 있을 그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류시화의 책(좋은지 나쁜지 누가아는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떠오른다
"당신 삶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오는 사람, 한 계절에만 등장하는 사람, 혹은 평생 동안 만남을 갖는 사람이 있다. 그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면, 저마다의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 당신의 삶에 온 경우, 그들은 대개 당신이 드러내 보인 필요를 충족해 주기 위해 온다. 당신이 고난을 통과하도록 돕고, 길을 안내하고, 지지해 주려고 온다. 그들은 신이 보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며, 실제로도 그렇다. 그들은 당신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그 이유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당신 잘못이 전혀 없는 데도, 혹은 좋지 않은 시기에, 관계를 끝낼 것 같은 말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죽거나 어디론가 떠나 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과격한 행동을 해서 당신이 분명한 결단을 내리게 만든다. 이때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필요가 충족되었다는 것, 우리가 바라던 것이 채워졌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역할이 끝났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올려 보낸 기도는 응답받았으며,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때가 온 것이다.
한 계절 동안만 당신 삶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당신이 나누고, 성장하고, 배우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신에게 평화로운 시간을 가져다주고 당신을 웃게 할 것이다. 당신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을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 그들은 대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당신에게 준다. 이것을 믿으라. 이것은 사실이다. 다만 한 계절 동안만.
평생의 관계는 당신에게 평생의 배움을 준다. 굳건한 감정적 토대를 갖기 위해 당신이 쌓아 나가야만 하는 것들을. 당신이 할 일은 그 배움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관계에서 당신이 배운 것을 주변의 모든 관계와 삶의 영역에 적용하는 것이다. 사랑은 맹목적이지만 진정한 우정은 천리 밖을 본다는 말이 있다.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 준 것에 감사한다. 그것이 이유가 있는 만남이든, 한 계절 동안의 만남이든, 생애를 관통하는 만남이든."
내 삶에 나타나서 함께 존재했던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당신이 언제나 당신답게 잘 지내길 바랍니다.
전 늘 당신의 행복을 빌거에요.
나와 닮아 있는 너가 너무나도 평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