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나를 죽이기도 하고 나를 살게도 하는 마음

당신의 불행은 어떤 모습인가요?

by 토깽이

최근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언제 불행하세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질문이라 순간 당황해서 말이 안나왔다.

"어.... 와 역으로 이런 질문을 받아볼거라고 상상도 못했네요. 생각해본적이 없어요.

잠깐만요. 제가 생각해보고 얘기할게요. 제 불행의 모습을 당신이 아는것도 중요한거죠?"


그래서 생각해보게 된 나의 불행의 모습이다.


내가 불행하다는건 슬픔이었다.

나는 슬퍼지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며,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나를 떠나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며, 누군가의 부재가 확 느껴지면서 불안감이 확 몰려온다. 그럴 때 특히나 안절부절못하고 감정이 동요되며 내가 확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언제 슬픈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최근에는 내가 겪은 상실.

일년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 나는 아주 크나큰 상실을 경험했고, 그래서 1년동안 방황했다.

아직 글에 담지 못하는 것보면 여전히 그 방황의 터널을 걷고 있는 듯하다(언젠간 이곳에서도 내가 겪은 상실에 대해 터놓을 수 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내가 어떻게 방황했냐고?

미친듯이 일에 몰입했다. 밤낮없이 일했고, 생각이라는 틈이 내 생활에 비집고 들어오지 않게 계속 몰두하고 집중할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친구, 애인, 운동, 상담, 책, 유튜브, 공부 등..

잠을 많이 잤다. 틈만 나면 잠을 잤다. 잠으로 빠져들었다는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 생각이 나면 운동을 했고, 술 생각이 나면 노래를 들었고, 술 생각이 나면 일했다.

그리고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를 듣지 못했다.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클래식을 많이 듣게 되었다.

그렇게 슬픔이라는 감정을 내가 느끼지 못하도록 나를 바쁘게 만들거나 나를 현재의 시공간으로 부터 분리시켰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메마르게 만들고, 나의 색을 점점 무채색으로, 그리고 검정색으로 변화시켰다.


그렇게 1년을 방황하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느끼지 않으려고 했던 슬픔이 확 몰려오는 순간이 있었고,

그 시기가 바로 이번 여름의 초입부터 가을의 초입 쯤이었다.


그 시기에 나는 남자친구와의 이별이 있었고, 일하던 직장 한 곳을 퇴사하게 되었고, 오래된 친구와도 멀어지게 되었고, 가까운 사람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관계로부터 고립되어있었다(그래도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하고 가깝게 지내고 있었기에 혼자 섬에 있지는 않았다).

남자친구와의 이별이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내가 겪은 상실이 더 컸기에, 그 상실의 슬픔을 겪어내느라 그와의 헤어짐이 덜 슬펐다. 그리고 이미 그와 나는 한번의 헤어짐을 겪었던 사이기에 두 번째로 맞이한 이별은 오히려 덤덤했고, 그의 부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직장에서의 퇴사는 공허를 일으켰다. 그곳에 가면 나의 상실을 함께 공유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있어, 나를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보살펴주며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동안은 온기 가득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음에 슬퍼했다.

오래된 친구와의 멀어지게 된 과정도 이제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분노도 함께 일어났다. 어쩜 나의 배려를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 할 수 있는지,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시절인연이란 이런건가 생각하며, 상대를 자책하는 듯하며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느끼지 않으려던 슬픔들이 여러가지의 모습들로 파도처럼 내게 밀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슬픔을 그냥 경험하려고 했던 것 같다. 더이상 슬픔을 방어할 힘도 없었기에..

그렇지만 혼란스러웠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말 슬픈게 맞는건지, 슬픔을 느껴도 되는건지, 나는 웃고 있는 순간에도 슬픔을 느끼는데 이런게 적절한건지, 알수 없는 마음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상담쌤과 자유에게 물어보면 그럴 수 있는 마음들이라고 했다.

자연스러운거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상실을 겪는 시기와 과정은 다르기에 충분히 그 마음을 잘 보살피라고 하셨다.

너가 먼저라고, 너를 먼저 챙기라고,

그래서 나를 먼저 챙겼다.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잠자고 싶을 땐 자고,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구에 일단 충실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욕구들도 나를 따라왔다.

그 덕에 나는 다시 슬픔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고, 나의 색깔을 선명하게 다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의 불행이 나를 더 다채롭게 만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불행은 내 삶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그렇게 나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나와 공존한다. 여전히.


나의 불행을 사랑해.

그래도 힘들땐 한없이 무너지자.

그리고 그렇게 무너져야만 다시 일어날 수 있어.


그리고 또다른 나의 불행은 나를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건 다음에 써야지)


데이식스의 '뚫고 지나가요'와 성시경의 '연연'이 듣고싶은 순간이다.

그리고 이후엔 원필의 '행운을 빌어요'로 마무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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