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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은 Nov 09. 2019

공무원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2

사주팔자를 믿으십니까?

남편은 시험공부를 하고 나는 삼시세끼와 파트타임일로 한창 바쁠 때였다. 어찌 내 사정을 들었는지 후배 녀석 둘이 연락을 해왔다.

"언니! 우리가 고기 사 줄 테니 좋은 데서 만나요~고기 먹고 힘내야지 ~~"했다. 우리는 약속 날짜를 잡았다.

약속 날 오랜만에 조금 차려입고 나섰다. 후배들은 강남역 근처의 스테이크가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으로 장소를 잡았다. "안 어울리게 뭔 스테끼야?~갈빗집으로 잡지~"하며 나는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일부러 그렇게 자리를 마련해준 후배들이 고마웠다. 그날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가 있었다.

완벽한 앵글로색슨족으로 보인  외국인 직원이 우리에게 메뉴판을 들고 왔다.

나는  

"어머 외국인이 주문받으러 오네. 어머어머 야 영어로 말해야되잖아~어떡해" 나는 호들갑을 떨다가 울렁증이 있던 후배들 대신 내가 대충 손가락으로 메뉴를 집고 "오케이?"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떠듬떠듬 "위 원트.. 투 잍... 미디엄.. 앤드.."하고 있는데 그 파란 눈의 직원분이 웃으며

" 저  한국말 할 줄 알아요~^^"이러시는 거다. 우리는 빵 터져버렸다. 오랜만에 나는 정말 크게 웃었다. 그동안의 걱정과 고민들을 모두 빵 터뜨릴 정도로 참 많이 웃었다.

고기는 소문대로 맛이 좋았다. 한참 먹으면서 얘기를 하다가 후배 하나가

"언니, 형부 생년월일이랑 태어난 시간 말해봐요~나 요새 명리학 공부하는데 봐줄게요~"하고 말했다.  간단히 명리학을 공부하게 된 경위를 듣고 난 나는

"그래? 천기누설 한번 해볼 테야?" 하며 생년월일을 얘기해줬다. 후배는 심각하게 인터넷 만세력을 바라보았다.

"와~ 진짜 형부 대단하다 대단해. 이거 생년월일이랑 시간 정확한 거 맞죠, 언니?" 분석을 시작한 후배는

"형부는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니에요. 겉보기에는 부드럽지만 송곳으로 바위를 뚫을  있을 정도의 성격이에요. 그리고 엄꽁~~ 한 성격이네."

이 말에 또 한 번 다들 빵 터졌다.

나는 너 아무래도 돗자리 펴야겠다며 족집게도 이런 족집게가 있냐 하고 웃었다. 남편과 만나면 서로 인사만 했을 뿐 조용한 남편은 후배들과 말을 섞은 적이 없었다. 나는 후배의 분석에 사실 놀랐다.

"야! 그건 됐고, 형부 붙어, 안 붙어? 그거나 봐봐!  얘기하지 말고"

다른 후배가 독촉을 했다.

"음.... 올해 나쁘지 않아! 근데 내년이 더 좋아!"하고 후배가 말하자

"야! 내년까지 못 기다려~! 너 다시 제대로 봐봐! 나쁘지 않다가 뭐야~ 빨리 다시 봐!" 물어봤던 후배는 억지를 쓰면서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보게 했다. ^^

결국 총평은 '남편의 송곳같이 독한 성정이 공부를 하게 만들었고 올해 또는 내년에 결실을 맺을 것으로 추정된다'였다. 그런대로 괜찮은 총평과 훌륭했던 스테이크 그리고 기분 좋은 수다로 지금까지 기억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남편이 근무를 시작한 후 몇 달쯤 뒤에 저녁에 맥주를 나눠마시다가  갑자기 이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은정이 알지? 걔가 자기 공부할 때 당신 사주풀이해줬잖아. 명리학 공부해야 될 일이 생겨서 좀 배웠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완전 잘 맞았던 거 같아. 그때 걔가 당신 독종이라고 그랬어. 그리고 합격할 가능성 높은 해라고 그랬는데

거봐, 그것도 딱 맞췄잖아~

그래 맞아~ 사주도 빅데이터인 거야. 동양의 유산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니까."나는 모노드라마처럼 혼자 떠들어댔다. 그리고 남편을 쳐다봤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금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 거야"

남편은 아주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아니... 뭐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래? 당신 사주가 확률적으로 그렇다 이런 건데"

나도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어깨 빠지게 죽을힘 다해서 공부했는데 어디서 사주 때문에 붙었다는 말을 하냐고~"남편의 목소리도 조금씩 올라갔다.

"어머 진짜 별것도 아닌 거 지구 저렇게... 그래 당신 성격까지 다 나와서 은정이가 놀라더라. 엄청 꽁하다고"

기름을 부어버렸다. 남편은 한참 나를 노려보더니 담배를 들고 나가버렸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혼자 씩씩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화낼 일인가 했는데 한 십 분 정도 지나니 화낼 일인 것 같았다.

특히 공무원 생활 적응하느라 한참 에너지를 쓰는 남편한테 이왕이면 좋은 얘기나 할 걸 후회가 되었다.

담배를 피우고 들어온 남편에게

"기분 풀어, 내가 실수했어"하고 사과다.

남편은 "하여간 뭐든지 빠르다니까"하고 웃었다. 그리고 자기도 별거 아닌거에 예민하게 굴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조금 창피해하는 것도 같았다. 나는 앞으로 사주 얘기는 다시는 안 하겠다 약속했다.

이 일을 들은 후배는 펄쩍 뛰며 자기는 이제 형부 얼굴 보긴 틀렸다고 속상해했다.


언젠가 유명한 인강 강사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운명은 있다.

그러나 하늘도 감동할 정도로 노력하면 운명도 움직인다'

앞으로는 남편에게 하늘도 감동하게 만든 사람이라고 말해줘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사주가 아주 딱 들어맞았구먼 뭐~

사주는 빅데이터야, 과학이라구~'하며 혼자 웃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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