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면접은 슬리퍼만 안 신고 가면 다 붙는대~"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이참이다 싶어 "진짜야 내가.. 그러니까 누구더라... 누구한테 들었어... 큰일만 안 보면 붙는데.. 안 싸면.."
남편은 기가 막힌 듯 나를 보더니 이내 웃었다.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냐 으이그~~ 양복이나 찾아놔 줘~"하고는 웃으며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남편은 또 예전처럼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는 독서실로 향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각종 시사와 관련된 책들을 한아름 들고나갔다. 운동도 했다. 시험 준비를 하면서 살이 조금 쪘는데 면접에 그 부분이 마이너스가 되면 안 된다며 하루 두 시간씩 엄청 걸었다. 실제로 면접 볼 때까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약 2킬로 정도 감량을 했다. 살면 살수록 참 독한 남자다 싶었다. 저런 사람이 회사를 나올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마음 한편이 또 아려왔다. 열심히 일만 한 죄로 회사를 나온 것 같았다. 잠깐 잊어버렸던 거 같았던 마음의 상처가 ' 나 아직 안 아물었어요~'하고 자기 존재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심란하게 앉아있다가 문득 양복을 찾아놓으라는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미리미리 찾아놓고 드라이해놔야겠다'하며 나는 장롱을 열었다. '아차!'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예전 남편회사는 사복을 입는 회사였다.
몇 벌 있었던 양복들은 장롱에서 매일
'날 잡아 잡숴~'하고 대롱대롱 걸려있었다. 집에 있는 물건들을 주기적으로 정리 처분하던 나는 정말 그 양복들을'잡아 잡숴'버렸다.ㅠㅠ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기 몇 달 전 헌 옷 파는 데다가 집안의 온갖 안 입는 옷가지들을 다모아팔고 받은 돈 만 오천 원으로 삼겹살을 사 먹어버렸다.
나는 울고 싶었다.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장롱을 뒤졌는데
'심봤다!'양복이 한벌 있었다.
그런데 겨울 양복.... 게다가 남편이 가장 살이 많이 쪘을 때 샀던 양복...
열심히 살 빼고 있는 사람한테 찬물끼얹는양복이었다.
면접은 가을일텐데 이걸 입고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분명 남편에게 한소리 들을 것이다.
독서실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나는 반성문 써야 되는 학생처럼 눈을못 쳐다보며
"저 저기... 양복이... 겨울 양복하나 있네..."하고 말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을 거 같아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고해성사를 해버렸다.
고물상에 팔고삼겹살 사 먹었다는 말을 들은 남편은 어이없어했다.
그러다가 아주 남편도 팔아먹겠다고
자고일어나 보니 재활용장에 있는 거아니냐며 훈계인지 농담인지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겨울 양복을 입어보았다.유행도 지났지만 어벙벙하니 좀 이상했다.
"그냥.... 한 벌 사자.."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됐어!"하고 남편이 말했다.
이상태에서는 아무 말도 하면 안 되었다. 알뜰한 남편은 그냥 그 양복을 입기로 했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양복. 이 양복은 왜 팔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 양복이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면접날이 다가왔다.
남편은 양복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어벙벙하고 조금 더운듯한 겨울 양복을 입었다. 그리고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갔다 온다"하며 나를 봤다.
나는 차마 양복을 볼 수가 없어서 "응 갔다 와~"하며 미안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보았다.